허성배 주필
2022년은 대한민국의 명운이 갈리는 해다. 3월 대선은 여야 간 정권교체나 진영 간 세력교체를 넘어서는 시대사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6·10 민주항쟁으로 출현한 87년 체제는 수명을 다했다. 87년 체제는 권위주의 종식과 형식적 민주주의의 제도화에 기여했다. 동시에 제도정치권의 폐쇄적 협약을 통해 형성된 헌정구조로, 산업화 우파 보수와 민주화 좌파 보수 세력이 기득권을 연장하는 토대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 문재인 정부를 거치면서 좌우 보수세력은 한계를 드러냈다. 4·7 재·보궐 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고 국민의힘 대표경선에서 이준석이 압승한 것은 좌우 보수 세력의 조종(弔鐘)이다. 중앙정치 초년병 이재명과 정치신인 윤석열이 여야 대선후보로 당선됨으로써 장례식까지 마무리됐다. 3월 대선은 미래의 리더십을 선택하는 장이다.
국민이 지금 후보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완성된 리더십이 아니다. 국민은 미래 리더십을 구축할 잠재력을 평가한다. 첫째 기준은 국민통합 실천 가능성이다. 통합 차원에서 현재의 정치 지형은 최악이다. 과거와 단절하지 못한 좌파 보수의 정권 재창출은 진영 논리를 더 강화할 것이다. 혁신하지 못한 우파 보수로의 정권교체는 신임 대통령의 행정부와 구여권이 장악한 입법부·지방정부 간의 극단적 대립을 초래하게 된다. 어느 경우든 미래 비전은 실현될 수 없다. 통합을 위해 무엇보다 대한민국의 성과와 그 주체인 산업화·민주화 세력을 함께 인정하는 역사 인식을 가져야 한다. 뿌리를 부인하는 것은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상대와의 공존을 거부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유와 자율, 시장에 대한 확고한 신뢰다. 이미 세계는 AI, 빅데이터, 메타버스 등 디지털 무한 경쟁 시대로 돌입했다. 개인의 창의력과 기업의 자율, 시장의 효율적 시스템은 대체불가능한 경쟁력이다. 국가의 역할은 이를 보장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정책적 지원에 그쳐야 한다.
셋째는 급변하는 세계체제를 이해하는 국제감각이다. 세계는 안보와 경제의 융합시대에 진입했다. 디지털 시대의 경제적 패권은 안보와 직결된다. 동시에 세계는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체제에서 미국과 중국 중심의 동맹형 GVC(글로벌 가치 사슬)로 이동한다. 민족주의를 포함한 이념은 구시대 유물이 됐고 안미경중(安美經中 :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 프레임은 효용성을 상실하고 있다. 통일을 포함한 대북 정책도 새로운 세계체제를 전제로 재설계돼야 한다.
넷째는 미래지향적이고 지속 가능한 복지에 대한 이해다. 코로나19로 벼랑 끝에 몰린 민생의 회복은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다. 더구나 심화하는 경제적 양극화와 저출산·고령화로 대한민국은 존립 자체를 위협받고 있다. 그러나 포퓰리즘에 기초한 현금살포형 일자리·복지 정책은 실패했고, 재정 건전성 악화로 차기 정부의 선택 폭은 좁아졌다. 따라서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면서 복지 부담의 위험을 예방하는 선순환형 복지체제가 유일한 대안이다.
두 후보는 남은 기간 수많은 요구와 제언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두 후보가 믿어야 하는 것은 국민의 판단력이다. 제갈공명은 치밀한 화공(火攻) 전술을 성공적으로 펼쳐 사마의를 기산 골짜기에 몰아넣었지만 비가 내리자 한탄하며 말했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되 이루는 것은 하늘이다.” 하늘이 곧 민심이요, 국민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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