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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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이 문제다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2.03.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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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 방송·영화·문학평론가

제20대 대선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불과 24만여 표 차의 초박빙 승부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재명 후보에게 82.98%의 지지를 보낸 도민들의 상실감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도민 대선 후유증, TV도 싫고 뉴스도 안봐’(전북중앙, 2022.3.15.)라는 기사에 따르면 서신동 거주 한 시민은 “선거 이후 매일 접하던 뉴스 보기를 포기했다”고 말한다.
그는 이어 “뉴스를 볼 때마다 울화통이 치미는 느낌이다.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당분간은 현 상황이 계속될 것이다”고 밝혔다. 또 다른 시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결과다. 도민들의 소중한 한 표가 사라진 느낌이다”며 “TV 뿐 아니라 SNS 등에도 정치관련 글들을 삭제하고 있다. 앞으로 5년은 개인 일상이 무척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 말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군’(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한 후 정신적·신체적 고통으로 정상적 사회생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을 겪고 있는 셈이다. 개인적 소회를 잠깐 말하자면 민주당원이나 지지자가 아닌 나도 이명박·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에 각각 당선되었을 때보다 더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니 어찌 안그러겠는가!
어쨌든 이로써 우리는 최초로 검찰총장 출신에 국회의원 경험이 전무한 대통령을 맞게 되었다. 이명박·박근혜 후보 대통령 당선에서 보듯 우리 국민들은 ‘최초’를 매우 좋아하는 것 같다. 그들이 각각 대한민국 최초의 사업가 출신(이명박), 여성·미혼·부녀 대통령(박근혜)이라서다.
그나저나 5년 만에 정권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른바 10년 주기설이 깨진 것인데, 불쑥 국민이 문제라는 생각이 피어오른다. 역대 대선을 살펴보니 좀 더 그렇다. 예컨대 직선제 개헌과 함께 치른 1987년 대선에서 노태우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국민의 선택이 그것이다. 대선 결과는 노태우 36.64%, 김영삼 28.03%, 김대중 27.04%, 김종필 8.06%였다.
“양 김 씨의 후보 단일화 실패로 정권을 민정당에 헌납한 것입니다.”(한겨레, 2022.31.15)라는 등 김대중·김영삼 후보가 단일화하지 않은 탓이라 말들 하지만, 꼭 그렇게만 볼 건 아니다. 전두환에 이은 신군부 2인자였음을 알고도 민정당 노태우 후보를 찍어 당선에 이르게 한 건 36.64% 국민들이니까.
여하튼 노태우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는 바람에 그만큼 민주주의가 더딘 속도로 나아가는 등 대가(代價)를 치러야 했다. 무엇보다도 1990년 3당 합당으로 노태우-김영삼-김종필이 손을 잡은 정계개편은 여야 구분을 어렵게 하는 후유증을 낳았다. 1992년 민자당 후보의 대선 승리로 이어졌지만, 이전의 ‘야당투사’ 이미지를 벗어던진 김영삼 대통령 당선이어서다.
많은 국민이 먹고 살기가 조금이라도 나아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이것저것 안따지고 정권교체에 앞장섰던 제17대 대통령선거도 그렇다. 선거에서 경제를 앞세운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500만 표 넘는 차이로 이겼다. 그런데 취임 1년쯤 지나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25.3%(한국사회여론연구소 발표)에 그쳤다. 또 동서리서치가 2008년 12월 10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지지율은 36.0%에 불과했다.
대선 승리의 1년 전에 비해 국민의 마음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으로부터 떠났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발등을 찍고 후회해도 소용없게 되었다. IMF때보다 경제가 더 어렵다는 2008년 겨울 대한민국의 모습이 그랬다. 집권여당 한나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잃어버린 10년이라지만, 많은 국민이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역사의 시계를 30년 전쯤으로 돌려 놓고 말았다.
그것이 대다수 국민의 선택이라 떫어도 도리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어렵게 이뤄낸 민주주의가 얼마나 더 후퇴할지 이명박 대통령을 선택한 국민은 당해도 싸다는 탄식이 절로 나왔다. ‘전직 대통령 재수감을 보며’(전북연합신문, 2020.11.13.)에서 자세히 말한 바 있듯 결국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금 횡령·뇌물수수 범죄로 감옥에 가 있다.
그런 일을 겪고도 국민은 2012년 제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또 대통령으로 뽑았다. ‘참 이상한 나라’(전북매일신문, 2013.1.7.)라는 칼럼을 통해 탄식하며 한숨을 삼켰지만, 박근혜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대가는 크고 아팠다. 이른바 국정농단사건 등 탄핵·파면으로 강제 퇴임, 구속·수감되는 걸 지켜봐야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해단식에서 “여러분은 최선을 다했고 또 성과를 냈지만 이재명이 부족한 0.7%를 못 채워서 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저는 우리 국민들의 위대함을 언제나 믿는다. 지금의 이 선택도 우리 국민들의 집단지성의 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 국민들의 판단은 언제나 옳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선뜻 동의할 수 없는 덕담 수준 인사말이다. 박근혜·이명박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은 걸 정녕 국민들의 옳은 판단이라 말할 수 있는가 해서다. 나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 누워서 침뱉기가 될지 모르겠지만, 무릇 유권자들은 때로 대통령을 잘못 뽑기도 한다. 윤석열 제20대 대통령은 부디 그런 국민의 선택이 아니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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