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온 경제위기, 한국이 살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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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온 경제위기, 한국이 살길은
  • 허성배
  • 승인 2022.05.1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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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2007년 8월 9일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몇 년 만의 여름 휴가를 느긋하게 보낼 생각이었다. 머빈 킹 영란은행 총재도 영국 크리켓 국가대표팀과 인도의 시합을 보려고 런던 남부로 이동해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계획은 전화 한 통으로 산산조각이 났다. 프랑스 대형 은행 BNP파리바가 운용하던 3개 투자 펀드의 환매가 중단됐다는 보고가 올라왔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 경제 전문기자 닐 어윈이 지은 책 ‘연금술사들’의 서문은 이런 일화로 시작된다. 신용경색 공포와 함께 금융권에 현금 공급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자 트리셰 총재는 950억유로를 전격 투입하면서 시장에 개입했다. 전례 없는 유동성 지원 조치였다. 유럽으로 불길이 번졌지만 위기의 진원지는 월가의 탐욕과 부동산 거품이 혼재된 미국이었다. 미국 경제는 2007년 12월 공식적인 경기 하강 국면에 접어들었고 2008년 들어 베어스턴스와 리먼브러더스, AIG가 휘청이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산됐다.

대형 경제위기는 예고 없이 한순간에 찾아온다지만 최근 세계 경제에 암운을 드리운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물가 급등이 겹친 현상)에는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대기업 A사장은 정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글로벌 공급망 문제를 비롯해 미국발 긴축과 고금리,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급등, 중국 코로나 봉쇄 충격 등 대응하기 힘든 대외 악재가 줄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원화값 급락이 수출기업들에 마냥 좋은 것도 아니다. 원자재·설비 수입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지구촌 관점에서 보면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금융위기 때는 어느 경제블록의 성장엔진이 망가져도 다른 쪽에서 복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경제위기가 본격화한다면 다른 차원이 될 것이다. 전 세계를 강타하는 악재인 데다 수십 년간 전 세계에 쌓인 부채의 부작용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다면 지구인들이 피할 안식처는 없을지 모른다. 경제부처 장관을 지낸 B씨는 “단군 이래 최대의 경제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지난해만 해도 2022년은 경제 리바운드의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았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짓눌렸던 소비와 교역이 강하게 되살아날 시점이라고 본 것이다. 하지만 상황은 확 달라졌다. 매일경제가 한국경제연구원과 분석한 결과 한국에서 연내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확률은 68%로 ‘위기경보’ 단계에 진입했다. 세계은행도 세계 경제가 1970년대 겪었던 스태그플레이션에 다시 직면할 위험이 있다고 전망했다. 골디락스 경제(물가 상승 부담 없는 적당한 경제 상태)가 무대 뒤로 퇴장하게 생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고물가와 경기 침체를 처방할 거시 정책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B씨는 “정부가 대응할 카드가 없으니 진정성을 담아 위기 상황을 알리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거시금융점검회의는 그런 점에서 눈길을 끌었다. 
대통령과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경제수석이 한자리에 모여 민간 경제전문가 7인의 브리핑을 경청했다. 전문가들은 경기 위축 충격이 올 연말 이후 본격적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부가 위기 대응 체제를 본격 가동할 시점임은 분명하다. 이 말은 ‘인사’에도 적용돼야 한다. 경제 전시 체제에 위기 대응 능력과 경험, 전문성을 지닌 사람을 중용해야 한다는 얘기다. 윤석열정부의 새 경제팀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크다.
미국에선 대공황 전문가인 벤 버냉키 연준 의장, 기민한 판단력을 지닌 티머시 가이트너, 노련한 월가 출신의 케빈 워시 등 실력자들이 2008년 금융위기에 맞설 수 있었다. 
우리도 최고의 경제팀으로 전 국민의 역량을 모아 통제 불능의 경제위기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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