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3건씩 '장벽' 쌓는 국회… 입법권 행사인가 규제 메이커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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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건씩 '장벽' 쌓는 국회… 입법권 행사인가 규제 메이커인가(1)
  • 허성배
  • 승인 2022.06.06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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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재계가 움직였다. 5월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시 적극적인 대미 투자를 발표한 삼성과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곧이어 대규모 국내 투자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롯데·한화그룹도 동참하면서 이들의 투자 규모를 합치면 1000조 원에 이른다고 한다. 최장 5년에 이르는 투자 계획이라고 하더라도 모처럼 재계가 ‘통 큰’ 행보에 나선 것이다. 그만큼 재계가 윤석열 정부 출범에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하겠다
기실 문재인 정부 5년 동안 재계는 홀대받아왔다. 재계가 반길 만했던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혁신 성장’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혁신의 동력을 스타트업이나 중소·중견기업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내세웠다. 그동안 이들이 가진 혁신 동력이 대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때문에 가로막혀 있었다는 인식이 컸기 때문이다. 어쩌면 박근혜 정부의 중도 하차를 불러온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대기업과 정부의 밀착 관계였다는 사실을 감안했을지 모르지만 이는 큰 잘못이었다. 우리가 벤치마킹하려는 실리콘밸리의 혁신 생태계를 제대로 살펴보면 스타트업에서 일어나는 혁신이 실제로 신산업으로 커가기 위해서는 기술력, 마케팅 능력을 두루 갖춘 GAFA를 필두로 한 플랫폼 자이언츠들과의 협업을 거치는 것이 거의 필수적인 과정이다. 신산업 태동을 이끄는 미국 플랫폼 자이언츠들의 역할을 우리 산업 생태계에서 해낼 수 있는 주체는 역시 성공한 대기업이라는 점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대기업의 역할을 철저히 무시한 것은 혁신을 이끄는 산업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한 소치였던 것이다.

이번에 재계가 투자하려는 분야들을 보면 미래 유망 신산업에 집중돼 있다.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신성장 정보기술(IT)(삼성), 모빌리티 신기술(현대차), 바이오(롯데), 항공우주(한화) 등의 산업 및 기술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이들 분야에서도 많은 스타트업과 중소·중견기업, 나아가 해외 스타트업의 창의적 에너지가 필요할 것임은 분명하지만, 그런 창의적 에너지를 성공적인 산업으로 키워낼 역할은 이들 대기업이 담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창의적 에너지가 플랫폼을 활용해서 제대로 커가는 것이 산업 생태계의 핵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의 산업 생태계가 신산업을 탄생시키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필자에게는 재계의 ‘통 큰’ 투자 계획이 더욱 반갑다.
그렇지만 김칫국부터 마시기는 이르다. 이런 산업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매우 큰 장벽들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산업에 투자하고자 했던 대기업들은 각종 규제들에 막혀버린 쓰라린 경험을 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제시한 산업 및 기술 분야는 대기업들이 계속 사업을 영위해온 분야이므로 연구 개발과 시설 투자에 집중하면 되겠지만 향후 그 결과가 신산업으로 이어지게 될 때는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들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융합이 이뤄져야 하고 때로는 전통 서비스와 충돌이 일어나기도 할 것이다. 그러므로 연구개발에서부터 (혹은 창의적 아이디어 형성으로부터) 제품 개발, 사업화의 전 과정에서 혁신 활동을 가로막는 규제들을 개혁하는 것이 필수적일 것이다.
그런 인식하에 윤석열 대통령과 한덕수 국무총리 모두 규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나선 점도 환영할 만하다. 한 총리가 부처마다 규제 개혁과 융합을 가능하게 할 전담 조직을 만들어달라고 당부한 것도 부처 간 이해관계로 나타났던 칸막이 규제 때문에 더 이상 혁신 생태계의 작동이 가로막혀서는 곤란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라면 정부는 규제 개혁을 통해 신산업을 태어나게 할 의욕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더 높은 장벽이 있다. 국회가 이런 재계와 정부의 의지를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되기 때문이다. 국회라고 ‘혁신’을 가로막는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불행하게도 결과를 보면 그런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국회에서의 규제 개혁 저지, 심지어는 새로운 규제를 담은 법 제정 때문에 가로막힌 창의적 신산업들의 리스트는 길기만 하다. 코로나 시기에 그토록 잘 작동한 원격의료, 타다로 상징되는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 줄기세포 기술이나 인공지능(AI)의 다양한 활용 등등. 사회적 관심을 일으켜서 잘 알려진 사례 외에도 국내에서 불가능해져 해외로 나선 신산업들도 부지기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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