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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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2.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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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우신예찬(愚神禮讚)’은, 한바탕 웃을 수 있는 풍자의 형식을 빌려 사람들의 풍속을 비판함으로써 악습과 폐단을 교화하고 충고하고자 한 에라스뮈스의 역작이다. 
바보들의 신(神), 바로 우신(愚神) 모리아가 군중들 앞에서, 자신을 칭송하고 어리석음을 찬양하며, 현자를 자처하는 시대의 학자들과 성직자들이 진짜 어리석은 바보들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의 세상에는 어리석음(痴愚)이 충만하며, 더욱이 어리석음에 의하여 사람은 도리어 행복해진다고 연설을 한다. 치우(痴愚)는 생명의 근원이며 청춘과 쾌락을 약속한다. 학식은 노쇠의 상징이다. 학자나 현인은 책 이외의 인생에서는 무능하다. 어리석은 자는 현실 경험을 통하여 오히려 진정한 사려 분별을 터득하게 된다. 소박한 사람들과 같이 아무런 학예도 없고 자연에만 이끌려 사는 인간이 가장 행복하다. 왕후장상·부자·기예가·학자·성직자 등 귀한 신분 계층의 사람들이 현명하다고 자화자찬하는 것, 그것이 진짜 바보라고 조소한다.
인생은 치우신(痴愚神)을 방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행복이란 일종의 착란 광기다. 남자가 여자에 대해 착각하고, 여자가 남자에 대해 착각하기 때문에 결혼한다. 걱정에 대한 망각이 있기에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일들이 모두 우신(愚神)의 영역에 속한다고 말한다. 현자가 세상을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바보들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하찮은 일을 심각하게 다루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이 없고, 하찮은 일을 진지한 일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보다 재치 있는 일이 없다면서도 자신을 판단하는 일은 남들의 몫이고, 자신은 떳떳하고 부끄럽지 않다고 말한다.
“남들이 모르는 어려운 말을 할수록 더욱 큰 존경을 받는다. 이는 분명 어리석은 자들의 커다란 즐거움이다. 이렇게 무모한 사람들은 남들에게 어려운 말도 자신은 거뜬히 이해한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생각에 짐짓 못 알아들으면서도 맞장구치며 큰소리로 웃기도 한다. 다들 아는 척 넘어가고 있으므로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고, 이해하지 못한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말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하고 있다.
바보, 멍청이, 얼간이 등은 무척 아름다운 호칭이다. 이들은 무엇보다 행복한 존재들이다. 무엇보다 진리에 가까운 존재들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고통에서 해방된 사람들이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자유롭고 두려워하지 않는다. 창피한 줄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행복이다.
잘난 체하는 왕과, 신(神)을 잊어버린 종교인, 정의가 뭔지도 모르는 법조인, 자신들이 누굴 위해 종사하는지 모르는 정치인, 가난한 자들의 비참한 삶에 전혀 감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부자와 귀족들, 정말 가난한 것은 자기 자신들이면서 허구한 날 학문, 진리 타령이나 하는 지식인들, 환자들의 등골을 빼먹는 파렴치한 의사.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고통으로 가득한 민중들이 함께 시시덕거릴 수 있는 것은 모두 우신 때문이라 한다. 지도자가 백성들을 위해 밤낮으로 봉사해야 한다는 사실을 안다면 어느 누가 그 고단한 지도자의 길을 걷겠나? 사람이 고통 속에서 지혜를 얻는다고 하지만, 지혜롭지 않아도 좋으니 덜 고통스럽기를 바라는 마음이 되기도 한다. 바보가 오히려 행복해 보인다. 우신은 주책없는 행동들을 들이대며 “실성이야말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며 스스로 자기 자랑을 한다. 서로 물고 뜯는 것이 발전이란다.
작금에 돌아가는 세상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이다. 서로 물고 뜯기를 좋아하는 세상이다. 죄를 짓고도 “나는 떳떳하다, 들통나지 않을 수도 있었는데”라고 몰염치한 말을 서슴치 않고 하는 일부 정치인도 있어서 보기가 민망하고 안타깝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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