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곯았던 시절 생각에 30여년 쌀 기부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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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곯았던 시절 생각에 30여년 쌀 기부 ‘감동’
  • 성영열 기자
  • 승인 2023.05.22 18: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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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주 비봉면 70대 박승희 농부, 1600평 논농사 지어 백미 전액 기탁

관내 경로당 돌며 직접 재배한
500만원 상당 백미 전달 귀감

끼니 걱정 벗은 40대 초반부터
밥맛 좋은 신동진 벼만 기탁

“남에게 주는 것은 좋은 것 줘야”
익명 유지하며 빵 나눔도 이어와

 

지독한 가난으로 끼니를 걸렀던 어린 시절의 배고픔을 잊지 못해 1600평의 논에서 수확한 전량의 쌀을 30여년 동안 남몰래 기부해온 고령의 농부가 화제이다.
주인공은 완주군 비봉면 원이전마을에 사는 박승희 농부(76)로, 최근 비봉면에 있는 경로당을 돌며 500만원 상당의 백미를 기부했다.

비봉면에서 나고 자란 박 씨의 기부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조그만 논밭을 사들이는 등 끼니 걱정에서 벗어난 40대 초반인 199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그는 1600평의 논을 별도로 떼어내 밥맛이 좋은 신동진 벼만 재배해 한해 수확량 전량을 가난한 이웃을 위해 기부하기로 마음먹었다.
“가난한 농부의 집에서 태어나 다섯 살에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못 먹고 못 입고 살았어요. 어린 나이에 주린 배를 시냇물로 채우고 지천의 쑥을 뜯어 먹어도 너무 배가 고파 가만히 움직이지 않았지요. 하늘을 바라보면 빙빙 돌아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요. 그 배고픈 설움이 어찌 컸던지….”
고령의 농부는 어린 시절의 배고픔을 회상하며 중간 중간에 말을 잇지 못한 채 서글픈 감정에 빠졌다. 두메산골 외딴집에서 굶기를 밥 먹듯 하면 자란 그는 20대 초반 군 입대 시 앙상한 뼈만 남아 살이 축축 늘어날 정도였다고 말했다.  
“설움 중에 배고픈 설움이 가장 참기 힘들어요. 그래서 나이가 들며 악착같이 품을 팔고 일을 해 논밭퇴기를 모았지요.”
천호산과 비봉산, 봉실산 등으로 둘러싸인 비봉면은 1966년 한때 인구 8000명을 자랑했지만 당시 상점은 5개에 불과할 정도로 농업에 전적으로 의존했다.

 

농부는 마흔 살 나이를 넘긴 후 배를 곯았던 어린 시절의 한을 풀어야 하겠다며 자신의 논밭 중에서 입지가 좋은 곳을 정해 정성껏 농사를 지었고, 이곳에서 수확한 쌀은 경로당이나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노인들을 위해 전량 기부하기 시작했다.
물이 마르지 않아야 좋은 쌀을 생산할 수 있어 갈수기에는 애가 탔지만 1600평의 논부터 물을 댈 정도로 정성을 쏟았다. 이렇게 생산한 쌀은 전량 보관한 후 무작정 기부하기 때문에 그 규모가 얼마나 되는지, 돈으로 따지면 어느 정도인지 단 한 번도 계산해본 적이 없다.

기부는 가정의달이 낀 매년 5월과 혹서기의 7월, 크리스마스 직전인 12월 하순에 각각 이뤄지는 등 매년 3차례씩 단 한해도 거르지 않고 이어졌다. 남은 쌀은 도내 한 대학교 앞에서 청년들에게 저렴하게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곳에 기부하고 있다.
“좋은 품종을 쓰다 보니 간혹 쌀을 탐내며 팔라고 권유하는 사람이 있어요. 남에게 주는 것은 좋은 것을 줘야 한다는 생각에 단 한 톨도 안 팔았어요. 좋은 쌀은 기부해야 허니까(하니까)….”
2남1녀의 자녀를 모두 결혼시켰다는 고령의 농부는 동갑인 아내 임남순 씨와 함께 고산시장이나 전주 모래내시장에서 채소를 팔아 번 돈도 빵이나 과일을 사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눠준다.
이름을 알려달라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이름이 없는 사람”이라며 익명을 유지, 시장 주변에서는 ‘빵 아저씨’로 알려져 있다.
농부는 “어려운 사람을 보면 가진 것을 주지 못해 되레 미안한 마음”이라며 “폐지를 주워 어렵게 생계를 잇는 사람들도 있다. 일을 할 수 있는 한 농사를 정성껏 지어 모두 기부하고 싶다”고 말했다.
안형숙 비봉면장은 “자신이 겪은 어려움을 잊지 않고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삶을 사시는 고령 농부의 선행이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며 “어르신의 따뜻한 마음을 본받아 독거노인을 비롯한 소외계층이 어려움을 겪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기부를) 허고 잡픈 디 힘이 딸려서 못 헐 수도 있어요. 그때까지는 농사를 허야죠.”
허허허 웃는 농부의 얼굴에서 기부의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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