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걸려보니> "불감증이 키웠다, '얼렁뚱땅' 검역도 확산방지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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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걸려보니> "불감증이 키웠다, '얼렁뚱땅' 검역도 확산방지 못해"
  • 투데이안
  • 승인 2009.09.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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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남씨는 신종플루 검사결과 양성반응을 보이셨습니다."
"네? 그럼 확진인가요?"
"네 맞습니다. 김정남씨는 신종플루 확진환자이십니다."

지난 8일 오후 11시50분께. 전화선 넘어 들리는 인천공항검역소 관계자의 목소리는 한없이 냉정했다. 출장의 여독을 채 풀기도 전에, 가깝고도 먼 친구를 만나게 됐다. '신종플루'. 그 단어가 가진 무게는 참으로 오묘했다.

기자에게 찾아왔다는 신기함과 함께 '죽을병은 아니겠지'라는 불안감이 공존했다. 검역소 관계자의 건조한 목소리는 이어졌다. "앞으로 일주일은 격리되셔야 합니다. 항바이러스제(타미플루)를 복용하면서 충분히 쉬셔야 하고요."

◇몸살감기 가장해 찾아온 녀석

우리나라로 들어오기 하루 전인 지난 6일(캐나다 현지시간). 신종플루는 먼저 몸살감기로 가장해 나타났다. 기자 또한 지나가는 몸살감기쯤으로 여겼다. 쌀쌀한 늦가을 날씨였는데도, 반팔차림으로 돌아다녔던 까닭이었다.

그날 저녁식사 후 일행보다 조금 일찍 자리를 떴다. 몸살 기운이 온몸을 덮쳐왔기 때문. 그 때가 오후 8시였다. 그날 새벽 기자는 오한을 느끼며 종일 침대에서 사투를 벌였다. 그때까지도 '몸살 심하게 걸렸네'라고 여겼다.

돌아오는 기내에서도 힘든 상황은 계속됐다. 전날 새벽부터 몸살약을 복용한 후 1시간은 괜찮아졌다가, 나머지 6~7시간은 힘든 상황이 이어졌다. 몸은 더욱 으스스해지고, 목이 계속 아픈 가운데 끊임없이 가래가 끓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공항검역소로 향했다. 당시 체온은 37.5~6도 가량. 내리기 직전 복용한 약 때문에 약간은 좋아진 상태였지만, 하얗게 질린 얼굴 때문이었는지 "괜찮냐"는 출장 일행들의 걱정이 이어졌다.

"아~ 해보세요." 긴 막대를 목구멍 안으로 밀어 넣는 역겨운 검사가 끝난 후, 마스크를 착용할 때까지도 잘 몰랐다. '설마 신종플루겠어.' 약간의 불안감은 숨길 수 없었다. 그제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마스크 쓴 이들이 보이지 않았다.

◇설마 내가? "왜 걸렸는지 아무도 몰라"

"김정남씨 신종플루 확진환자 맞으십니다." 약 6시간 후인 오후 11시50분께 검역소 관계자는 기자가 확진환자임을 알려줬다. 부랴부랴 신종플루 기사를 보기위해 컴퓨터를 켰다. 느낌이 참 묘했다.

기자는 물었다. "도대체 왜 걸린거죠? 걸릴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는데요." 흥분한 기자를 향해 그 관계자는 나지막하게 말했다.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네요. 신종플루 환자가 발생했던 국가인 미국을 방문해서겠죠."

이어 "건장한 청년이 초기부터 치료하면 거의 100% 완치됩니다. 최근의 사망사례는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는 분들을 위주로 발생했죠"라고 말했다. 살아 움직이며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신종플루'라는 단어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하는 듯 보였다.

이튿날 지역보건소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는 먼저 물었다. "도대체 왜 걸린거죠?" 뚜렷한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손을 자주 씻고, 외출을 삼가라는 말밖에. 그렇게 일주일간의 격리생활은 시작됐다.

◇재밌었던 주위 반응

신종플루에 감염됐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졌다. 기자들 사이에서나, 기자의 출입처(나와바리) 안에서나, 개인적인 친분이 있던 이들 사이에서나 이는 재미있는 뉴스인 듯 했다. 그들의 반응들이 하나같이 그랬다.

아울러 신종플루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는 '뉴스'와 실제 주변에서 확진환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다. 대부분은 "내 주위에서 처음이야", "신기하네"라는 반응 일색이었다.

연일 사회면 톱을 장식하는 신종플루는 그들에게 먼 것처럼 보였다. 심지어 기자들마저도. 그것도 사회부 기자들마저도. 뼈저리게 느낀 '불감증'의 도드라진 단면이었다.

비슷한 기억은 기자도 있다. 몇 달 전 분산서비스거부(DDoS) 공격이 활개를 치던 때였다. 민간 정보보안업체들과 방송통신위원회 등에는 일대 대소란이 일었다. 기자는 한발 물러서봤다. 일반인에 물었다. "DDoS 불안해?" 돌아오는 대답은 비슷했다. "왜 그리 호들갑이야?"

◇미국이나 한국이나 마스크 쓴 이들이 없더라

격리되어 있는 중 왜 신종플루를 만나게 됐는지에 대해 복기해봤다. 일단 미국으로 떠난 이후에 걸린 것은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뚜렷한 원인은 생각나지 않았다. 숙고해보니, 그게 가장 무서운 것이었다.

왜 걸렸는지 모른다는 것.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한다는 것. 생각해보니, 인천공항에서부터 환자발생국인 미국에서까지 마스크를 쓴 사람을 본 기억이 없다. 물론 기자도 마찬가지다. 복수의 의료기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손만 잘 씻고 마스크를 쓰면 신종플루에 걸릴 위험이 현저히 떨어진다.

먼저, 인천공항.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래도 몇몇은 조심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출국장의 검색도 평소보다 철저했다. 하지만, 불감증이 만연됐다는 인상은 지울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종플루로 500명이 넘는 사망자를 낸 미국의 시애틀 타코마공항의 모습이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은 당연히 없었거니와, 착용을 권유하는 공항 관계자들도 만나볼 수 없었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국가여서 다르겠거니 했지만, 이는 기자의 착각이었다. 미국의 시애틀과 캐나다의 밴쿠버를 방문하는 동안 마스크를 착용한 이들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기자와 함께했던 일행 역시 이런 분위기에 녹아든 듯했다.

◇신종플루는 '전염병'···항상 조심해야

기자가 일주일간 겪어본 바에 의하면, 신종플루는 약간 심한 독감 수준이다. 타미플루를 복용하면, 대부분은 낫는다. 한 의료기관 관계자 역시 "신종플루는 대부분 가벼운 병을 유발한다"고 확인해줬다.

문제는 신종플루가 전염병이라는 점. '곧 회복될' 신종플루 환자가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나 임산부 혹은 노인 등 고위험군에 옮기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들이 신종플루에 걸리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망한 이들 모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던 것으로 알려지지 않았는가. 그들이 신종플루를 앓게 된 것도 누군가에게 옮아와서 그랬을 게다.

그런 점에서 인천공항검역소에는 약간의 아쉬운 점이 있다. 확진을 통보하기 2시간 전인 지난 8일 오후 10시께. "일행이 30명 가량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한 방을 쓴 사람은 없나요? 없으면 다들 별 문제는 없겠네요."

검역소 관계자의 이 같은 물음에 기자는 "그런 것 같다"고 넘겨버렸다. 일행 중 고위험군이 없다는 점을 이미 확인했을지도 모르나, 통보 전 그런 식의 '얼렁뚱땅' 물음은 신종플루에 '무지한' 기자를 당황시켰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식사하거나 술을 마시면서도 옮길 수 있는 것 아닌가.

요컨대, 그 정도로 사소한 일에도 확실하게 대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단 검역소뿐 아니라 기자를 포함한 모든 이들이 그렇다. 밖에서 활동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15일, 지역보건소 관계자는 "자기가 걸린 게 문제가 아니라 옮길 수 있다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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