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스만 감독 경질은 잘한 일  
상태바
클린스만 감독 경질은 잘한 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4.02.27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하는 게 축구 경기이긴 하지만, 이번 아시안컵 4강 탈락은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다. 분명 2019년 아랍에미리트(UAE)에서 열린 아시안컵 8강보다 나은 4강에 올랐는데도 그렇다. 역대 최고의 전력을 갖춘 클린스만 감독이 지난해 2월말 부임 이래 틈만 나면 아시안컵 우승을 입버릇처럼 말해와서 그런 지도 모른다.
응당 64년 만의 우승컵을 놓친 것에 실망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클린스만호가 귀국한 2월 8일 공항에서 ‘엿 세례’와 함께 “집에 가”, “고 홈”(Go home)이라는 고함이 쏟아졌다. 그런데도 클린스만 감독은 “아시안컵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실패라고 말할 수 없다”며 “여론이 좋지 않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미소로 말해 분통을 터트리게 했다.

그뿐이 아니다. “역대급 황금세대로 구성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뻥’ 축구, ‘해줘’ 축구, ‘방관’ 축구로 아시아를 놀라게 한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청원서가 2월 9일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 작성자는 자신을 ‘붉은악마’ 회원이며 대한축구협회 소속 심판이라고 밝혔다.
그는 청원 취지에서 한국이 이번 아시안컵 6경기에서 11득점 10실점 한 기록을 언급하며 “최악의 경기력으로 아시아 국가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게 만든 장본인인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강력히 청원한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황금 세대’, ‘역대급 스쿼드’로 꼽힌 한국 대표팀이 “이렇게 허망하게 한참 아래 수준의 국가들과 졸전을 거듭하며 탈락하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 했다”라며 허탈해했다.
그런데 그 다음날인 2월 10일 클린스만 감독은 자택이 있는 미국으로 야반도주하듯 극비 출국해버렸다. 귀국 당시 말했던 다음 주 출국을 앞당겨 한국을 떠나가버린 것이다. 여론이 들끓었다. 비판이 봇물을 이뤘다. 일반 팬들만 그런 게 아니다. 정치인ㆍ배우 등 클린스만 감독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2월 9일 CBS라디오 ‘박재홍의 한판 승부’에 출연해 “화가 나는 게 대한민국을 얼마나 깔보면 감독이라는 사람이 밖에서(해외) 놀다가 아르바이트 삼아 한국에 들어오는 것 같다”며 “감독으로서는 전혀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을 데리고 왔다”고 말했다. 또한 “이면 약정이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지만 위약금이 있다면 축구협회 돈이 아니라 (정몽규)축구협회장이 사비로 물어내야 한다”고 했다.
클린스만 감독의 미국 출국을 두고 홍준표 대구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거주 조건을 위반했으니 위약금 달라고 하지도 못하겠다”며 “위약금 문제는 정몽규 축구협회 회장이 책임지고 이참에 화상전화로 해임 통보하라”고 거듭 주장했다. 그러면서 “감독 자질도 안 되면서 한국 축구만 골병 들게 하지말고 미국 간 김에 제발 돌아오지 말라”고 일갈했다.
배우 박준금은 인스타그램에 “쏘니(손흥민)의 행복축구를 응원하면서”라며 “오천만 국민의 마음을 단 한 명의 외국 감독이 상처를 줬다”고 적었다. 이어 “문화를 짓밟은 것 같아 가슴 아프고, 경기에서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지만 정서와 열정이 없는 공감 능력이 떨어져 얼마큼 아픈지를 모르는 국가대표 감독을 우리는 언제까지 참아줘야 하는가”라고 분개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아시안컵에서 졸전을 거듭하며 감독으로서 무척 아쉬웠다”며 “오죽하면 ‘무색 무취의 전술’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애초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임명할 때부터 많은 우려가 있었다”며 “이번 아시안컵은 우려를 현실로 만들었다”고 했다. 권 의원은 대한축구협회가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권 의원은 “계약서에 명시된 ‘한국 상주 조건’이 무색할 정도로 원격 지휘와 잦은 외유도 비판을 받아왔다”면서 “그토록 열심히 일한 결과가 이런 수준이라면 오히려 감독으로서 능력을 더욱 의심받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 클린스만 감독에 대한 국민적 비판은 승패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질에 대한 의구심, 안일한 태도에 대한 질타”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사필귀정이라 할까. 마침내 2월 16일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발표했다. 정 협회장은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의 경쟁력을 이끌어내는 경기 운영, 현지 관리, 근무 태도 등 우리가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에게 기대하는 지도 능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논의와 의견을 종합한 결과 클린스만 감독은 감독으로서의 지도자 경쟁력과 태도가 국민의 기대치와 정서에 미치지 못했고, 앞으로 개선되기 힘들다는 판단으로 2026년 북중미 월드컵 2차 예선에서 사령탑을 교체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클린스만 감독은 임기 1년을 채우지 못하고 한국 대표팀을 떠나게 됐다.
위약금 등 ‘쌩돈’이 들어가는 손실을 입게 됐지만, 클린스만 경질은 잘한 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국민감정에 부응한 결정이라서다. 호언장담하던 우승을 놓친 채 치욕적인 졸전끝에 4강에서 탈락해놓고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시종 싱글벙글 웃는 모습이던 클린스만 감독에게 열받았던 분노가 지금까지도 남아있는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