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기·준비
안녕하세요. 임실 오수에서 온 윤선민입니다.
저는 2015년 1월, 결혼하자마자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민을 가서 큰아이를 낳았습니다. 아이는 돌 이후 자폐성장애 진단을 받았고, 그곳에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치료 선생님과 이야기할 때마다 외국어의 벽이 너무 높았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에 제가 정확히 이해하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코로나 직전인 2019년 3월, 한국으로 재이민을 왔습니다.
남편의 직장이 있는 군산에서 살았고, 저는 차 교육과 유통, 홍차 가게를 운영하는 회사에서 일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자폐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아파트 1층에 살던 어느 날, 아이가 주방 창문으로 나가 잃어버릴 뻔했습니다. 또 한 번은 비상구 창문으로 나가서 한참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날 결심했습니다. 아이가 안전하게 뛸 수 있는 주택으로 가자고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갈 무렵인 2023년 1월, 임실 지사면에 월세를 얻어 귀촌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아이의 학교였습니다. 지사초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직접 전화를 주셨습니다. “꼭 우리 학교로 보내 주세요” 그 말이 큰 힘이 됐습니다. 입학 전까지 부설유치원에 다니며 기다렸는데, 안타깝게도 특수교사가 배치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아이는 남원 한울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임실을 떠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이곳에서 살 이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귀촌에서 가장 걱정되는 건 직장이었습니다. 저희는 임실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연고가 없으면 농지를 사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서를 바꿨습니다. 먼저 취업해서 지역을 배우고, 천천히 집과 땅을 찾자 저와 남편은 지사면의 장류 제조회사 영산식품에 들어가 3년간 일했습니다. 발효식품에 관심이 많았던 저에게 이때 배운 장 만드는 기술은 나중에 큰 자산이 됐습니다.
■어려움과 극복
처음에는 마을 어르신이 100평쯤 되는 밭을 내주시며 ”하고 싶은 거 다 심어 봐” 하셨습니다. 고구마, 초당옥수수, 사탕수수, 해바라기까지 심고 싶은 걸 다 심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멧돼지가 다 먹었습니다. 나머지 작물도 성과를 보지 못했습니다. 첫 번째 실패였습니다.
두 번째는 농지은행에서 300여평 밭을 빌려 콩을 심었습니다. 찔레꽃이 무성하게 방치된 땅이었고 무덤 옆이었습니다. 잡초와 잡목 때문에 수확이 신통치 않았습니다. 더 큰 문제는 면적이 300평에 조금 모자라서 농업경영체 등록이 안 된다는 통보를 받은 것입니다. 농사를 짓는데도 농업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그때 생각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 농사지을 땅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제일 잘 아는 것으로 돌아갔습니다. 저희 부부는 원광디지털대학교 차문화경영학과에 다시 들어가 졸업할 만큼 차를 좋아했고, 저는 차 가공 기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오수면 한암마을의 300평 녹차밭을 구입했습니다. 300평이 넘어서 드디어 농업경영체를 등록할 수 있었습니다. 녹차는 심는 과정을 건너뛰고 수확 전에 잡초만 관리하면 되니, 농사가 서툰 저희도 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은 집이었습니다. 시골에 빈집은 많은데 외지인에게는 팔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때 딸의 미술학원 원장님이 오수 남신마을 토박이셨고, 집을 내놓은 분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1941년에 지은 집이었지만 정남향에 튼튼했고, 오수역과 터미널이 가깝고, 남원 아이 학교까지 15분이었습니다. 아이를 위한 최적의 위치였습니다.
세 번의 시행착오가 저희에게 가르쳐 준 게 있습니다. 귀농은 땅부터 사는 게 아니라, 사람을 만나는 것부터라는 것입니다.
■영농·창업 성과와 노하우
농업경영체를 등록하고 나서 바로 농업회사법인을 만들었습니다. 콩과 잡곡 같은 농산물로 제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주택 리모델링이 끝나자 영산식품을 그만두고 2026년 4월, 오수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오수에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갑상선 환자가 먹을 수 있는 된장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3년간 장류 제조를 했으니 장 만드는 데는 자신이 있었습니다. 그런 중에 제게 갑상선 문제가 생겼습니다. 환자가 돼 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너무 없다는 걸 알았고, 케어푸드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그래서 바른케어푸드라는 농업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성과는 이렇습니다.
올해 10월 1일, 갑상선 환자를 위한 ‘저요오드 된장 개발’ 특허를 출원했습니다.
신장투석 환자를 위한 야채수 연구는 KCI 등재 학술지 ‘차문화산업학’에 논문으로 실렸습니다.
임실치즈축제, 장미축제, 벚꽃축제에서 제품을 판매했습니다.
오수 시장 근처에 작은 식품제조시설을 리모델링 중입니다.
예비 귀농인께 드리는 순서 팁입니다.
▲먼저 취업이나 임대로 지역을 경험한다.
▲농지는 300평 기준(농업경영체 등록)을 확인하고 산다.
▲농업경영체 등록 후 법인을 설립한다.
▲내가 잘하는 것과 내 삶의 문제에서 아이템을 찾는다.
■지역 기여·공동체
이 모든 것을 저 혼자 한 건 아닙니다.
처음 연습하던 밭은 마을 주민이 무상으로 빌려주셨습니다. 집은 오수의 미술학원 원장님이 찾아 주셨습니다. 지사면 귀농귀촌 회장님은 안 좋은 땅과 매물로 나온 땅을 알려 주셔서 실수를 막아 주셨고, 집을 고치기 전에는 점검도 해 주셨습니다. 남신마을로 이사하자 마을회관에서는 “아이들 소리 들려줘서 고맙다”며 입주 축하금까지 주셨습니다.
식당에 아이들을 데려가면 사장님이 “애들 건 시키지 마, 어른 것만 시켜” 하시고 아이들 몫으로 안 매운 국과 계란후라이를 따로 내주십니다. 다른 아이와 조금 다른 우리 아이를, 이곳은 자연스럽게 품어 주었습니다. 블루베리, 딸기, 밤 따기 체험도 임실에서는 마음껏 누립니다. 봄에는 두릅과 쑥, 여름에는 마당 물놀이, 가을에는 밤줍기, 겨울에는 뒷동산 썰매까지 사시사철 아이들이 행복합니다.
저는 임실에서 정말 많은 사람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받은 것을 돌려드리고 있습니다.
먼저 2024년 8월, 예비 농촌돌봄농장 활동입니다. 지역 장애아 7가정 15명을 초청해 옥수수와 고구마 캐기 체험, 물놀이를 했습니다. 저희 아이가 이곳에서 받은 배려를, 이번에는 저희가 다른 장애 가정에 드리고 싶었습니다. 장애아 부모님은 외출 자체가 부담입니다. 이곳에서는 눈치 보지 않고 아이와 하루를 보내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올해, 2026년에는 두 가지를 더 시작했습니다.
첫째, 귀농귀촌 멘토입니다. 임실군 귀농귀촌 멘토로 선발돼 귀농박람회에서 예비 귀농인을 상담했고, 멘티 3명과도 상담했습니다. 저는 길을 몰라 헤맸기 때문에, 다른 분들은 덜 헤매셨으면 좋겠습니다.
둘째, 마을과 함께하는 가공입니다. 마을 분들이 수확한 콩으로 가공식품을 만듭니다. 농가는 판로가 생기고, 저희는 좋은 원료가 생깁니다.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구조입니다.
식당 사장님이 아이에게 내어주신 계란후라이 한 접시가, 이제는 다른 가정에 드리는 하루가 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예비 정착자에게
저의 목표는 분명합니다. 임실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로 환자식, 케어푸드를 만들어 판매하는 것입니다. 임실 농가에는 판로가 되고, 환자와 가족에게는 안심하고 먹을 음식이 됩니다. 지역 농업과 건강을 잇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 올해 많은 것을 이뤄 냈습니다. 시군예비청년혁신가로 활동하고, 모두의 창업 2라운드를 통과했으며, 전북대학교 JB연구센터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농촌돌봄농장과 멘토 활동도 계속 키워 가겠습니다.
예비 귀농귀촌인께 말씀드립니다. 저희는 연고도, 땅도 없이 시작했고 세 번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을 만나고, 내가 잘하는 것을 찾고, 천천히 걸었더니 길이 열렸습니다.
여러분도 내 삶을 한땀한땀 아름답게 수놓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