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단 하나뿐인 책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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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단 하나뿐인 책을 만들었어요”
  • 문공주 기자
  • 승인 2012.11.01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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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문해교실 함열반 아홉 할머니, 구구절절 삶 담은 자서전 펴내

익산 평생학습축제가 열린 지난달 26일 익산 중앙체육공원. 익산행복학교 성인문해교실 함열반 할머니들은 지인들의 인사를 받다 눈시울을 붉혔다.
이날 익산중앙체육공원 내 평생학습 작품전시관에는 함열 문해교실 고급반(4학년) 아홉 할머니들의 자서전이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평균연령 75세. 2010년부터 성인문해교실 함열반에서 한글을 배워온 고급반 9명 할머니들은 지난 8월부터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사진으로 엮은 자서전을 만들었다. 읽기에 비해 쓰기는 속도도 느리고 서툴러 2명의 할머니만 직접 글을 썼고 나머지는 선생님들이 녹음을 통해 이야기를 정리하였다.

아홉 할머니의 세상 단 하나뿐인 책에는 구절구절마다 그간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제목도 표지도, 글씨체마저도 각양각색이지만 배움에 대한 열정만은 같은 빛으로 묘하게 닮았다.
“행복학교에 가려고 하니 이제 공부해서 면장이 될래? 대통령 될래? 하던 남편은 이제 시간되면 먼저 서둘러준다” (이영순, 77)
“얼마나 배우고 싶었던 한글공부였는지 다송리에서 와리까지 전동차로 먼 거리를 통학했다. 가끔 집에 가다가 전동차가 고장이 나서 애를 먹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자 남편이 백만원을 내놓으며 오토바이를 사라고 했다.” (이정순, 77)
“열일곱에 결혼하고 아저씨 살아있을 때는 그냥 살았는데 돌아가시고 나니 세금을 어떻게 내는지 모르겠더라. 그래서 높은 양반들 만날 때마다 한글 좀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었다.” (송현숙, 81)
성인문해교실이 함열에 들어선 것은 3년 전, 반장 송현숙(81) 씨는 글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함열 출신 김영배 의원을 찾아가 하소연을 했단다. 학생 10명은 모아야 열 수 있다는 말에 노트 사주고, 연필 사주고 지금 10여 명을 모으게 됐다고.

그래서일까, 자서전을 낸 친구들에게 축하메시지를 적으면서도 그간의 한과 설움을 누르려는 듯 자음과 모음 한 획마다 꾹꾹 정성을 다한다.
사진으로 엮은 자서전에는 할머니들의 젊었을 적 묵은 이야기도 주렁주렁 딸려 나온다. 유머와 해학, 순수한 인생철학이 담긴 글은 오래된 장맛처럼 깊지만 달착지근한 것이 눈과 귀에 착착 감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여섯 식구의 식사와 빨래를 내가 책임져야 했다. 거기다 밭일까지 해야 했다. 겨울에는 솜바지, 저고리를 뜯어 빨고 삶고, 여름에는 뙤약볕에서 밭일을 해야 했다” (한영순, 70)
“노래가 없으면 못 살았을 것이다. 살면서 어디다 말 못할 힘든 일이 있을 때 노래를 부르면서 살아왔다. 한글을 배우니 가사를 적을 수 있어 새 노래를 배울 때 재미있더라” (류순자, 78)
이름으로 지은 삼행시도 눈에 띈다. 김잉례(75) 씨는 어려운 자신의 이름으로 멋들어진 삼행시를 선보였다.“김- 김장이 힘듭니다. 잉- 잉잉잉 이제 못하겄다. 례- 내일은 너희들이 담궈 먹어라.”
성인문해교실 함열반 최영이 교사는 “어르신들은 지난 세월동안 남성중심 사회에서, 또 못 배웠다는 생각에 오래도록 천대받고 소외돼 왔다. 글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글자를 알게 된다는 것이 아니라 소외된 과거에서 스스로 해방된다는 그런 느낌일 것이다.”고 말했다.
아홉 할머니가 펴낸 자서전은 3일 익산공공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리는 ‘사진책으로 엮는 행복학교 이야기’ 출판기념 낭독회에서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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