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자면 별의 별사람을 다 만난다.
흔히 말하기를 그 사람을 알려면 바둑을 두거나 노름을 해보면 쉽게 알 수 있다고 한다.
문제는 아무리 승부를 건사이지만 신사도(紳士道)를 누가 얼마나 지키느냐 하는 것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아첨 잘하고 이해타산(利害打算)에만 급급해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험담만을 장기로 하는 사람도 있다.
웬만한 일쯤 가지고는 표정을 짓지 않는 이해심 많은 사람도 있는가 하면, 자기 아쉬운 일이 있으면 문턱이 닳도록 쫓아다녀도 그 일만 끝나면 내가 너를 언제 봤더냐(?) 하는 식으로 담을 쌓고 지내는 사람도 있다.
항시 냉정함을 잃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걸핏하면 눈물을 흘리는 너무 정적(情的)인 사람도 있고, 명예욕이 지독히도 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돈은 많아도 자기 돈이라면 천 원짜리 한 장 쓰지 않는 『샤이록』(Shylock) 같은 사람도 덜어는 볼 수 있다.
남의 일이라면 언제든지 발 벗고 나서 도우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는데 남이 잘못되기만을 바라며 욕하고 다니는 그런 사람도 간혹 있다.
남을 둘러 먹기를 식은 죽 먹기보다 쉽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너무 정직해서 손해를 보기만 하는 그런 사람도 있다.
사람이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상대성 원리(相對性 原理)에 입각한 꼭 알아둬야 할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그중 청이(請而) 불래(不來) 가 있는가 하면, 불청(不聽)이 자래(自來)가 있고. 또는 좌 이불 거(坐而不去)가 있다.
모름지기 사람은 스스로 접근욕(接近 欲)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매력(魅力)을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연의 자세나 마음은 항상 선한 데서 우러나오는 것이 아닐까? 갓 태어난 갓난아기의 울음이나 재롱 섞인 웃음 속에서 악의적인 그런 표정을 결코 읽을 수 없는 것은 인간은 태초(太初)부터 선한 상태에서 출발한 때문일 것이다.
잘못된 성격을 하루아침에 고치거나 덜된 사고방식을 일조일석에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선한 인간적인 태도를 가지려는 도덕적 윤리관 많은 반드시 갖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허성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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