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왜 말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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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왜 말하지 않을까
  • 투데이안
  • 승인 2011.02.16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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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는 쉽사리 말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정치인들이 특정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쏟아낼 때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언론·정치권·국민들이 목을 빼고 자신의 입만 주시할 때쯤에야 단답형의 짧은 말을 통해 의견을 밝힌다.

박근혜 전 대표는 개헌, 국제과학기술비즈니스벨트, 신공항 등 최근의 민감한 정치 이슈에 대해서도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일부 정치권 인사들은 박 전 대표가 자신의 지지율을 의식해 민감한 현안에 대해 발언하지 않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내고 있다. 현실 정치를 외면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친이(친이명박)계인 이재오 특임장관은 박 전 대표가 동료의원 123명의 서명을 받아 사회보장기본법을 발의한 지난 11일 "대통령 선거가 2년 남았는데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일하는 것은 국민을 피곤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 발언이 박 전 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이 발언은 박 전 대표가 개헌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세몰이에만 정신을 쏟는다는 비판으로 해석됐다.

한나라당 홍준표 최고위원도 15일 박 전 대표가 논란이 되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와 동남권 신공항 입지 문제에 대해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말했고 빈민운동가 출신의 비례대표 강명순 의원은 지난 9일 "유신헌법으로 고생한 사람들에게 사과하는 의미에서라도 유신시절 호의호식한 박 전 대표가 개헌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근혜는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정치 이슈에 대한 발언을 아끼는 와중에 사회보장기본법 등의 법안을 국회에 발의하는 등 정책에 몰두하는 모습은 정치권의 진흙탕 싸움에 빠지지 않겠다는 고집으로까지 읽힌다.

◇진정성과 포퓰리즘의 절묘한 조화…"마치 한 편의 하이쿠"

돌이켜보면 박 전 대표는 원래부터 말을 아끼기로 유명했다. 2006년 지방선거 유세 당시의 "대전은요?" 발언과 2007년 노무현 대통령 개헌 추진 당시의 "참 나쁜 대통령" 발언은 박 전 대표의 발언 스타일을 나타내는 대표적 사례다.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등 진보 논객 5명은 최근 공동 발간한 '박근혜 현상'이라는 책에서 "박 전 대표의 발언은 마치 한 편의 하이쿠를 보는 것 같다"며 "진정성의 정치와 포퓰리즘을 잘 융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이쿠는 일본 고유의 짧은 시로, 해학적이고 응축된 어휘로 인정(人情)과 사물의 기미(機微)를 재치 있게 표현하는 시가문학의 한 장르다.

역설적이게도 박 전 대표의 이런 발언 스타일은 박 전 대표의 발언에 더욱 큰 파괴력을 부여했다. 국민들은 박 전 대표의 짧은 한 마디 말에 열광한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박 전 대표를 놓고 '침묵계의 마이더스', '숨만 쉬어도 대권 행보'라는 우스개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 평론가들은 박 전 대표의 발언 스타일이 '정치인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고 믿는 정치 혐오 풍조 속에서 그가 신뢰의 정치인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반이 됐다고 분석한다.

박 전 대표의 지지자들 역시 "박 전 대표의 말에는 군더더기가 없고 말바꿈의 여지도 없다", "박근혜의 신중함은 미래의 불확실성으로 불안감에 젖어있는 국민에게 위로와 신뢰를 준다"고 평가하고 있다.

박 전 대표는 과거 당 대표 시절 '약속수첩'을 들고 다니며 자신이 유권자에게 한 약속을 하나하나 기록했다. 이 때문에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는 이와 관련, 2007년 발간한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수첩공주라는 별명을 기분좋게 웃어넘기는 가장 큰 이유는 내 수첩의 주된 용도가 자랑스럽기 때문"이라며 "내가 현장에서 도움을 드리겠다고 약속한 내용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어도 반드시 내 약속수첩에 적고 두고두고 진척 상황을 점검했다"고 회고했다.

◇박근혜 "입에 발린 말 삼가고 한 말에는 최선 다해야"

박 전 대표가 '단답형', '침묵형'의 발언 스타일을 고수하는 배경에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애로 청와대에서 성장하고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 '퍼스트레이디 대리'를 맡아야 했던 독특한 성장 환경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밖에 없고 자신의 한 마디 말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환경에서 성장하면서 신중하게 행동하고 말 조심을 하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는 것이다.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로서 자신이 각종 이슈에 대한 발언을 하기 시작하면 대선레이스가 조기 과열될 수 있다는 우려도 그의 발언 스타일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박 전 대표는 1999년 발행한 '나의 어머니 육영수'라는 책에서 "어머니는 예절에 관해 매우 엄격했다. 우리나라의 존칭어가 좀 복잡하지만 이를 바르게 알고 쓰라며 일일이 가르쳐줬고 대화 중에 존칭어를 틀리게 사용하면 그 자리에서 고쳐줬다"고 회고했다.

그는 1995년 집필한 에세이집 '내 마음의 여정'에서는 "나의 가장 근본적인 소망은 이 마음을 어찌하여 깨끗하고 바르게 간직하고 언행을 그에 걸맞게 갖추는가 하는 것이다", "입에 발린 말들을 삼가하고 한 말은 진정한 뜻이 담기도록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 할 것"이라고 기술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침묵은 보여줄만큼 보여줬으니 주요 이슈에 대한 목소리를 내달라는 요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가운데 박 전 대표가 어떤 행보를 보일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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