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슬한 초가을엔 가람 이병기 선생을 만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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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슬한 초가을엔 가람 이병기 선생을 만나세요!
  • 문공주 기자
  • 승인 2012.08.30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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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는 민족의 기본이고, 문화의 중심은 말과 글일세”

소슬한 초가을, 가람 이병기 선생을 통해 우리말과 글의 향기를 느껴 봄은 어떨까?
가람 이병기 선생을 모른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바람이 소슬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라는 ‘별’을 노래한 익산 여산 출신의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시조시인, 국문학자이다.

익산에서 9월 초순 2012 가람시조문학제가 열리고, 6월 9일부터 10월 28일까지 매주 토요일 가람 선생의 생가 수우재에서 ‘백세지사 가람 이병기’ 악극 공연과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가람 이병기 선생, 타임 캡슐을 열다.
- 9월 7일~8일, 2012 가람시조문학제

『 한 손에 책(冊)을 들고 조오다 선뜻 깨니
드는 볕 비껴가고 서늘바람 일어오고
난초(蘭草)는 두어 봉오리 바야흐로 벌어라 』

시조부흥을 이끌어낸 가람 이병기(1891∼1968)선생을 기리는 ‘2012년 가람시조문학제’가 9월 7일부터 8일까지 2일간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과 가람 이병기 생가 수우재에서 열린다.

2012가람시조문학제추진위원회가 주최·주관하고 익산시가 후원하는 이 문학제는 선생의 고결한 정신세계와 우리나라 문학사에 끼친 영향력과 가치를 재조명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첫째 날인 9월 7일에는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에서 ‘가람 이병기 전국 학술대회’가 ‘호남학 기틀 마련을 위한 가람학의 정립’을 주제로 개최된다. 이날 원광대학교 하정일 박태건 교수의 ‘가람 전집 발간의 의의와 방법’ 발제를 시작으로 ‘가람 이병기의의 국문학사 소고’, ‘이병기 시조론의 몇 가지 원칙’, ‘한국 근대시에 나타난 ‘격조론’의 의미 연구- 이병기 중심으로-’ 등을 통해 가람 선생에 대해 깊이 있는 논의가 펼쳐진다.

둘째 날인 9월 8일, 가람 이병기 생가 수우제에서 오세영 씨의 ‘가람 이병기의 시조’ 주제발표, 가람시조낭송회, 가람시조문학상 시상식이 열린다. 또한 초중고대학 및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전국가람시조백일장과 익산문화체험이 진행된다.

특히, ‘백제지사 가람 이병기’ 악극 공연을 통해 술복·문복·제자복이 있는 ‘삼복지인(三福之人)’이라고 자처할 만큼 술과 시와 제자를 사랑한 훈훈한 인간미 넘치는 가람 이병기 선생을 만날 수 있다.

# 가람 이병기 선생을 말한다.

“1921. 7. 23(토) 맑다. 불교회로 가서 ‘훈민정음’을 베꼈다”

한 줄도 좋다! 가람 이병기 선생은 40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자신의 생활의 흔적을 남기려고 노력했다.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실린 이 ‘가람일기’는 평생 동안 국문학 연구에 열정을 쏟은 가람 이병기 선생의 담백한 삶을 그대로 보는 듯 하다.

1891년 여산 원수리 진동마을에서 태어난 가람 이병기 선생은 국문학자이며 시조시인으로 한국 현대시조 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긴 분이다.

가람 선생은 1921년에는 권덕규·임경재·최두선 등과 함께 조선어 연구회를 조직하여 활약했고, 1922년부터 동광·휘문고등보통학교 교원, 1926년부터 시조에 대한 논문과 시조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942년 조선어학회사건으로 홍원형무소에서 1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가람 선생은 전북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다 1956년 정년퇴임한 후 이듬해 뇌일혈로 쓰러져 앓다가 1968년 여산 고향에서 생을 마감했다.

선생은 가고 없지만 고향 여산에는 고인의 생가, 가람시조문학상, 천향 호산춘 등 그의 살아있는 향기를 느낄 수 있다.

특히, 가람 이병기 생가 수우재는 안채와 일자형 사랑채, 그리고 연못가에 모정까지 있어 운치를 간직하고 있다. 전국의 문인 및 탐방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익산=문공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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