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너무나 피곤했지만 이제야 비로소 후손의 도리를 다하는 것 같아 마음만은 새털처럼 가벼웠습니다. 정말로 조상의 영(靈)이 실렸는지는 모르지만 무속인의 몸을 통해 받은 메시지는 제 눈물샘을 다시 한번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전쟁이 나는 통에 내 아까운 생을 마감해야 해서 외롭고 슬펐는데 네가 이제라도 알아주니 여한이 없다. 이제 좋은 곳으로 갈 테니 걱정 없이 잘 살아가려무나.”
어찌 제 고모, 고모부뿐이었겠습니까? 국가를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한 이름도 남기지 못한 무명용사는 얼마나 많으며 남편을 전장에서 잃고 시신도 찾지 못하여 평생 가슴에 한을 안고 살아간 미망인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데 정작 그분들의 희생을 기리고 넋을 위로하는 데 우리는 너무나 소홀히 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숱한 외침이 있을 때마다 초개(草芥)와 같이 목숨을 버리고 산화하여 조국을 지켜낸 선조들의 희생과 나라사랑 정신을 잊지 말고 더 강한 대한민국, 더 아름다운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같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 지어 넘어진 내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주고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을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작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가도
나는 유쾌히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짜기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하노라.
안상현 법무부 광주교정청 전주교도소 교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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