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용명씨가 본 김연아와 4대륙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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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용명씨가 본 김연아와 4대륙대회
  • 투데이안
  • 승인 2010.01.28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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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겨계 원로 홍용명씨(여·79)에게 '2010 ISU(국제빙상경기연맹)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는 의미가 남다르다.

홍씨는 광복 이후 우리나라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피겨와 인연을 맺었고, 그 인연을 발판으로 최초로 후배 선수들을 국제대회에 출전시킨 장본인이기 때문이다.

평안남도 안주가 고향인 홍씨는 일제치하 때 부친을 따라 중국 베이징으로 거처를 옮겼고, 그 곳에서 처음으로 스케이트라는 것을 접하게 됐다.

베이징의 학교에서는 겨울이면 체육시간에 의무적으로 스케이트를 타게 했고, 그것이 홍씨와 평생을 함께하는 끈이 됐다.

광복 후 그는 우리나라에 돌아왔고 중국에서 스케이트를 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화여자중학교에 피겨 특기 선수로 입학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홍씨가 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 6·25 전쟁이 터져 소중했던 피겨와의 인연은 멀어졌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몇 명 되지 않던 피겨선수들은 생사도 모른 채 뿔뿔이 흩어졌고, 홍씨는 주변의 권유로 대학에서 피겨를 계속하게 됐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 힘겨웠던 그 때. 홍씨의 집안 사정도 넉넉한 편은 못됐지만 피겨에 대한 애착과 사랑으로 매년 겨울이면 한강과 덕수궁 등에서 연습에 몰두했다.

기온이 올라가 서울에서 피겨를 탈 수 없을 때면 멀리 강원도 철원과 화천까지 가서 피겨를 탔다. 그래봐야 1년에 3개월 정도가 연습 시간이다.

장비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웠다.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부족했을 시대에 제대로 된 스케이트를 구한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고, 구한다고 해도 너무 고가(高價) 였다.

그래서 홍씨는 가끔 고물상을 찾아 남자 선수들이 버리고 간 것을 구해 약간 수선을 해 사용하거나, 축구화의 창을 두껍게 하고 발목 부분을 길게 해 스케이트로 만들어 탔다.

그래도 홍씨가 열심히 훈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가끔 열리는 전국대회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대회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였죠. 얼음이 얼면 한강에서 선수 몇 명이 대회를 치렀으니까요. 다행히 이승만 대통령이 피겨를 좋아해 많은 사람들이 구경을 왔고, 코치도 없이 잡지책 보고 포즈 몇 번 잡아보면서 익힌 기술을 대단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박수쳐주던 사람들이 고마웠을 따름이었어요."

1955~1957년까지 열린 대회에 열심히 참가했던 홍씨는 피겨에 대한 사랑을 뒤로 한 채 은퇴를 하게 됐다.

은퇴 후 그는 협회에서 일을 하게 됐다. 지원도 없고 관심도 없는 종목이었지만 피겨에 대한 사랑, 그 것 하나만으로 후배들을 양성하는데 몰두해왔다.

그리고 10년 후인 1967년. 그는 어린 후배들과 함께 첫 세계선수권대회를 위해 오스트리아 비엔나로 떠났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알아주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욱이 당시 여자 선수로 데리고 갔던 장명수씨(1972년 삿포로 올림픽 출전)가 너무 어린 나이 때문에 출전을 할 수 없게 돼 홍씨 일행은 그대로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하지만 머나먼 동양에서 온 홍씨 일행을 안타깝게 생각했던 국제빙상연맹은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시범경기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줬다.

당시 장명수씨에게는 오색 색동저고리가 입혀졌고, 이 어린 아이가 피겨를 하는 모습은 방송을 타고 유럽에 소개됐다.

대한민국 피겨 역사상 처음으로 태극기가 국제대회 경기장에서 펄럭이던 순간이었다. 당시 태극기를 모르던 주최 측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가슴에 붙이고 있던 태극기를 그대로 그려 대회장 앞에 걸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4년 전. 세계 피겨를 대표하게 된 우리나라의 김연아가 토리노 동계올릭픽의 성화를 봉송했고, 그 모습을 지켜본 그는 가슴 벅차오르는 감격에 한참 동안이나 눈물을 흘려야 했다.

그는 살고 있는 강원도 삼척을 떠나 지난 27일 원로 자격으로 전주에 왔다. 4대륙 피겨 선수권대회 때문이다. 그에게 있어 이번 대회는 대한민국의 국력과 피겨의 발전, 그 자체다.

"김연아가 참 대단하죠. 하지만 김연아 한 명으로 그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제2, 제3의 김연아가 대한민국을 빛내고 우리나라 피겨의 앞날을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 너무도 중요합니다. 이번 대회가 우리나라 피겨의 앞날을 위해 소중한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국제대회인 이번 대회가 끝나면 김연아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선수들은 홍씨의 꿈을 가슴에 담고 캐나다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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