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박건형·송창의, 그렇게 클래식은 영원해졌다
상태바
슬픈 박건형·송창의, 그렇게 클래식은 영원해졌다
  • 투데이안
  • 승인 2010.11.15 09: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해본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안다. 사랑은 감성적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높고 낮아지는 기분 또는 감정의 파고를 주체할 수 없다. 봄눈처럼 수줍으면서 겨울 폭풍우처럼 맹목적적이다. 2중적인 것을 용인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치다.

이러한 점에서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의 주인공 ‘베르테르’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자 표상이다. 그는 수줍게 사랑을 시작하지만 맹목으로 사랑을 가지려 한다. 그리고 결국 파국으로 사랑을 매듭짓는다. 사랑의 찬란한 순간과 절멸의 순간을 불 같이 껴안으며 만끽한다.

뮤지컬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줄거리는 괴테의 소설과 다르지 않다. 시집을 들고 다닐 정도로 감성적인 문학청년 베르테르는 천사의 미소를 간직한 롯데를 보고 첫눈에 반한다. 하지만, 롯데가 정혼자인 알베르트와 결혼하자 절망한다. 그리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뮤지컬은 이 베르테르에게 더욱 진해진 농도의 감성을 덧댄다. 아메리카노에 에스프레소 샷을 추가하고 크림까지 녹여낸 격이다. 베르테르를 번갈아 연기하는 박건형(33)과 송창의(31)의 우는 모습을 강조하는 면에서도 작품의 지향성을 알 수 있다.

대형 뮤지컬이지만 여타의 다른 대형 작품처럼 화려함과 스펙터클을 자랑하지 않는다. 물론 창작뮤지컬로서 주로 중극장 규모에서 공연한 이력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뮤지컬은 관객의 눈이나 귀를 현혹시키기보다 마음을 사로잡는 데 중점을 둔다.

그 중심에는 배우들의 연기가 있다. 특히, 베르테르를 맡은 박건형과 송창의 밀도 높은 감정 연기다. 연습 내내 눈물을 쏟아냈다는 이들은 무대 위에서도 억지로 눈물을 짜내지 않는다. 실제 베르테르가 된 듯 아파하며 눈물 흘린다.

뮤지컬 무대에서 연기 경력을 다진 박건형은 노련하며 평소 수줍은 듯 유한 이미지의 송창의는 자신의 캐릭터를 무대 위에 오롯하게 펼쳐낸다.

11인 오케스트라 편성이 빚어내는 음악은 감미롭다. 베르테르의 테마곡인 ‘발길을 뗄 수 없으면’을 위시해 이미 만들어둔 70곡 중 옥석을 가려낸 30곡이 감성을 촉촉이 적신다. 무대 장치와 조명은 감성을 극대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로맨틱하면서도 고전적인 무대는 큰배가 절단이 난 것 같은 형상의 대형 장치 중심이다. 조명의 명암과 여러 소품 등을 이용해 건물의 벽과 언덕 등으로 시시각각 변한다.

김민정 연출이 “지난 7월 미국의 쌍둥이 빌딩에서 발견된 큰 항선의 파편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밝힌 이 무대 장치는 산산조각 난 모습이 베르테르의 파편화된 사랑과 닮아있다. 베르테르가 권총으로 자살하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도 감각적이다. 그림자로 대체하는 대신 하늘이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장면으로 베르테르의 피로 승화된 사랑의 종결을 전한다.

극은 자칫 느끼해질 수 있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뜨거운 불길이 환희를 가져왔다” 등 너무 문어체라 아름답지만 동시에 간질간질해질 수 여지가 있는 대사, 유머를 유발하는 장면이 없다는 점 등 때문이다. 그러나, 언급했듯 과잉되지 않은 음악과 이미지의 절제는 느끼함을 휘발시킨다.

다만 500~600석 규모에서 공연하며 주로 그 공간에서 감정의 섬세함을 표현해온 만큼 1000석 규모의 공연장에서는 다소 허함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가슴 시림의 여백을 터줬다는 점에서 대공연장 선택이 일면 적절했다고 생각할 여지는 있다.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말이 어느 때보다 그리워지는 늦가을과 초가을에 공연한다는 것이 큰 장점이다.

롯데 역의 임혜영은 특유의 맑으면서 낭창낭창한 목소리와 하늘하늘하면서도 가녀린 몸짓으로 제 캐릭터를 무리 없이 소화해낸다. 중저음이 매력인 이상윤은 롯데의 정혼자인 알베르트를 맡아 극에 무게감을 싣는다.

극단 갖가지가 소설을 각색, 2000년 초연한 창작 뮤지컬이다. 이번이 10번째 공연이다. 원작자 고선웅씨가 이번 공연에서도 극작과 작사를 맡았다. 30일까지 서울 능동 유니버설 아트센터에서 볼 수 있다. 4만∼10만원. 02-501-7888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