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10주기]⑤중단된 대북사업, 현정은 회장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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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10주기]⑤중단된 대북사업, 현정은 회장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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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3.16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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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정주영 회장하면 대북사업을 빼놓을 수 없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지난 1998년 6월 고인이 500마리의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지나 북녘땅으로 가는 모습을 기억한다.

고인이 생전 평생의 한이자 업으로 삼고 추진한 것이 대북사업이다.

안타깝게도 고인이 모든 것으로 쏟아부어 추진했던 대북사업은 현재 멈춘 상태다. 고인의 5남인 정몽헌 회장, 그를 이어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대북사업을 맡아 추진했지만 악화된 남북 관계 등으로 인해 대북사업은 중단됐다.

고인은 날로 치열해지고 있는 글로벌 경제사회에서 경쟁력을 강화하가 위해서는 민족사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신념을 품고 대북사업을 추진했다.

금강산 관광사업 및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실현하기 위해 그동안 북한을 8차례나 방문한 끝에 북측으로부터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금강산 관광은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의정서를 체결한 지 9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난 1998년 6월 소떼몰이 방북 이후 본격화됐다. 이어 10월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금강산 관광사업에 대한 최종 합의를 마쳤다.

정 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은 빠르게 진행돼 같은 해 11월18일 금강산 관광선이 첫 출항을 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반세기 만에 남측의 국민들이 북녘 땅을 밟게 되었다는 상징적인 의미 외에도 본격적인 남북교류 협력시대를 열었다는 점에서 남북교류사에 큰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강산 관광사업은 지난 1998년 12월 정회장의 4차 방북 당시 금강산 종합관광개발사업으로 확대됐고, 현대그룹은 30년 사업 보장 각서를 받아내기에 이른다.

금강산 종합개발사업이 본격화되면서 현대의 남북경협사업도 가속도가 붙었다. 정 회장은 1999년 2월 5차 방북 당시 ▲남북공동영농사업 ▲평양체육관 건립 ▲남북통일농구대회에 대해 합의했고, 이어 3월 6차 방북 시에는 공단개발사업을 논의하는 등 다양한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고인이 태동시키고 일궈놓은 대북사업은 그 후로 진행이 원만하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남북화해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궤도에 오른 대북사업은 노무현 정권에 들어서 '대북성금' 논란으로 어려움을 겪다 정 회장에 이어 대북사업을 총괄하던 정몽헌 회장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서 위기에 봉착했다.

이에 더해 외적으로도 남북관계가 악화되면서 금강산 관광사업 등은 현재 완전히 멈춘 상태다. 이에 따라 대북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현대아산도 자본잠식 등 심한 부침을 겪고 있다.

또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에 실패하면서 현대건설과 함께 향후 대북 인프라 사업에 시너지를 내려던 계획과 기회도 무산됐다.

향후 대북사업의 원만한 재개와 현대아산 회생을 위한 먹거리 창출이 현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숙제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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