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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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없어요
  • 엄범희 기자
  • 승인 2011.04.14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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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나의 아침 일과 중 하나는 거실에 둔 대나무의 새순이 밤새 얼마나 자랐는지 손으로 만져보며 감상하는 일이다. 지난겨울 나는 꽃집에서 30센티미터 정도 길이의 대나무 여덟 개를 구입했다.

거실 한구석에 천덕꾸러기처럼 놓여 있던 나팔꽃모양의 투명한 꽃병에 밑동이 잠길 만큼 물을 붓고 꽂아 두었더니 언제부턴가 대나무 마디마디마다 신기하게도 새순이 옹알거리며 올라왔다. 이제는 제법 푸른 이파리들이 자태를 뽐내고 있는 대나무들은 난처럼 쭉쭉 뻗은 모양이 꼭 하늘을 금방이라도 뚫을 듯 힘찬 기백을 자랑하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쭉쭉 뻗어 있는 그 왕성한 생명력에 아침마다 나는 감탄하곤 한다. 그들에게 내가 해주는 일은 잎들이 서로 얽히지 않고 각자 자기 길을 뻗어 나갈 수 있도록 보살피는 일이다.

식물도 귀와 눈이 있는지 두런두런 일러 주는 내 말을 알아듣고 제 갈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이따금 분무기로 잎을 닦아 주며 나는 지극정성을 다한다.

이렇게 식물을 보살피는 요즘 나는 식물과 동물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식물과 동물이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함께 살아갈 때 이 지구의 생태계는 건강하다.

그러나 공생의 균형이 깨지면 생태계는 병들고 만다. 오늘날 지구의 생태계가 위기에 직면한 것도 동물인 사람이 식물을 무자비하게 남벌하고 학대한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 지구의 주인이라고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

인간 말고도 이 지구상에는 온갖 동물과 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한순간도 없어서는 안 될 산소는 누가 만들어 주는가.

얼마 전, 나는 한 청년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저는 요즘 도서관에서 취업공부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고 정진이 잘 안 됩니다. 어떻게 해야 되는지요?”

나는 이 뚱딴지같은 질문을 받고 쓴웃음이 나왔다. 나는 이렇게 답장을 해주었다.
“잘 들어보세요. 삶에는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마다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그 자신의 삶이 있을 뿐입니다. 정진이 잘 안 된다고 했는데, 정진이란 무엇이며, 왜 정진을 하려 하는지 그것부터 밝혀야 할 것입니다.”

나의 조언을 얼마나 새겨들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후 좋은 직장에 취업한 그 청년과 나는 지금도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는다.

나도 한때 고난의 시절이 있었다. 그때 나는 법정스님을 찾아가 조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산사에서의 대화가 문득 생각났다.

“큰 스님, 정진이 잘 안 됩니다. 왜 저는 남들이 겪지 않은 형극의 길을 가야합니까?”
“정진이란 한결 같이 꾸준히 나가는 것을 뜻하는 말이지. 날씨처럼 갠 날도 있고 흐린 날도 있듯이 정진 또한 그럴 걸세. 잘 안 되면 안 되는대로 잘 되면 되는대로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지속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올 걸세. 인내하고 참는 것이 곧 정진이라네.”

“큰 스님, 저에겐 너무 어려운 말씀인데요?”
“우리가 정진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라네. 그러나 그 무엇인가에 집착하면 그것은 정진이 아니지. 우리가 정진을 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그 무엇인가를 드러내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네. 그 무엇인가와 그 무엇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이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해. 이와 같이 한다면 그대의 삶 자체가 곧 행복할 걸세”

“큰 스님 그럼 저는 어떻게 해야 됩니까?”
“투철한 자기 결단도 없이 남의 흉내나 내는 원숭이 짓 하지 말고 그대 자신의 길을 그대답게 가게. 그 누구의 복제품이 되려고 하지 말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놓치지 말게, ‘나는 지금 이렇게 살고 있다’고 순간순간 자각하란 말일세.”
“예, 큰 스님.”

“한눈팔지 말고, 딴 생각하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말고, 스스로 살피란 말일세. 이와 같이 하는 내 말에도 얽매이지 말고 그대의 길을 가란 말일세. 이 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게. 이런 순간들이 쌓여 한 생애를 이룬다네.”

나는 고난과 시련이 닥쳐올 때마다 큰 스님이 들려주신 주옥같은 말씀들을 회상하곤 한다. 복제품이 아닌 나의 길을 가기 위해서 말이다.

자고 나면 위를 향해 뻗어가는 대나무 이파리처럼 당신의 삶도 그래야 합니다. 정진은 시작은 있어도 그 끝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십시오. 묵은 수렁에서 거듭거듭 털고 일어서십시오.

/달리는 희망제조기 송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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