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당보리&꽁당보리축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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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당보리&꽁당보리축제이야기
  • 투데이안
  • 승인 2011.04.25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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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민족은 고대로부터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리‘를 주식으로 살아왔습니다.

 

'꽁당보리'라는 말은 쌀을 전혀 섞지 않고 보리만으로 지은 ’꽁보리밥’에서 나온 말입니다.

한국전쟁 전후 등 쌀이 귀하던 시절에 보리만으로 밥을 지어 먹어야만 했던 우리네 할아버지,할머니, 아버지,어머니.....끼니조차 고달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 우리에게 보리는 생명이고 희망이었습니다.

여북하면 “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라는 노래가 그 시절 어린이들에게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어려울 때 우리들에게 “꽁당보리”는 희망의 언어였던 셈입니다.

 

이러했던 보리가 2000년 이후 소비가 급감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보리농사도 이대로 끝나는 건가? 조선시대부터 옥구현 보리하면 임금님 진상품(- 한국지리지총서 읍지편)이었고, 대대로 간척지의 땅인 군산은 최근까지 우리나라 보리의 명산지인데......” - 군산농업인

마치 운명적으로 군산은 1995년 “흰찰쌀보리”를 전국에서 처음 재배하면서 메보리가 처한 위기를 찰보리로 바꾸는 외로운 선택하였습니다. 이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었고 결국 대한민국 찰보리시장을 이끌게 되었습니다.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 “웰빙”이 “군산보리”의 재출발점이 된 것이고지요.....

 

군산농업인들에게 새로운 꿈이 생겼습니다.

그 꿈은 급기야 “꽁당보리축제”라는 자생축제를 태어나게 했습니다.

꽁당보리축제는 2006년 미성동 농업인들이 천만줄기 땀방울을 모아 쏘아올린 축제였습니다.

보릿고개 시절에 우리국민의 ‘생명’이었던 보리가 작금에는 ‘건강’ 이라는 옷을 갈아입었고 여전히 그때 그 ‘희망’으로 우리에게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타오른 희망의 불꽃은 “꽁당보리축제”가 되었고 군산찰보리가 “대한민국 지리적표시등록 제49호”의 마중물이 된 것입니다.

 

“해마다 5월이면, 농업인들은 새색시같은 얼굴을 한 채 축제를 엽니다. 이때는 한겨울부터 이어진 몸살기운도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마치 신명난 어린애처럼 닷새동안 보리밭에서 신명이 납니다.”

 

이처럼 꽁당보리축제에는 BC 3~4세기 이 땅의 마한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노래와 춤으로 농사의 애환을 달래던 그런 역사의 울림이 있습니다.

“마한사람들이.......해마다 5월에 씨뿌리기를 마치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며 떼를 지어 모여서 밤낮으로 노래와 춤을 즐기는데 그들의 춤은 수십명이 일어나 뒤를 따라가며 땅을 밟고 구부렸다 치켜들었다하면서 손과 발로 서로 장단을 맞추는데 10월에도 이렇게 한다.” - 삼국지 위지 동이전

 

이제 여섯살이 되는 “꽁당보리”는 흥겨움의 마당이고 도시와 농촌을 연결하는 희망이고 소통의 장이 되고 있습니다./전북연합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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