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足)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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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足)아, 고맙다
  • 백 승 록/시인ㆍ수필가
  • 승인 2013.01.23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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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몸에서 발(足)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우선 우리를 이동할 수 있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또 서 있을 때는 몸의 주춧돌역할을 해 넘어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뿐만 아니라 발은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도와주는 또 하나의 심장이기도 하다. 심장에서 출발해 발끝까지 내려온 혈액을 혈관의 수축과 팽창을 통해 심장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육체의 제일 아래에서 각종 궂은일을 해결해주며 이동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게 발이다.

  사람이 일생동안 발을 땅에 부딪히는 횟수는 1억 번 이상이라고 한다. 우리가 발로 걷는 거리는 지구를 4바퀴 반 정도 되는 것과 맞먹는다. 이런 엄청난 중노동을 견디기 위해 발은 경이로울 정도로 복잡한 얼개를 갖고 있다. 발에는 26개의 뼈와 1백14개의 인대 20개의 근육이 있다. 7천2백여 개의 신경이 뼈와 인대, 근육을 거미줄처럼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복잡한 장치와 균형을 이뤄 무릎과 허리, 뇌에 전달되는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발은 우리 신체에서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발이 편해야 몸이 편하다는 말이 있다. 발이 아프면 일상생활이 힘들어진다. 또 발이 아파 제대로 걷지 못하면 허리와 무릎에 악영향을 줘 척추ㆍ관절에 각종 질환을 초래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다수 사람들은 발의 고마움을 잘 모른다. 아프고 나서야 묵묵히 체중을 받쳐주며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발의 진가를 깨닫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 발 관리를 잘 해야 한다.

  발은 태어난 지 1년 안팎이 지나 걷기 시작한 이후 죽을 때까지 쉴 틈 없이 혹사를 당한다. 항상 양말이나 신발 속 어두운 곳에 갇혀 제대로 쉬지도 못한다. 신발 안에서 온갖 충격을 겪어야 하고 공기가 차단된 상태에서 땀에 절게 된다. 한 마리로 어두운 곳에서 평생 봉사만 하는 게 발이다.

  우리가 마라톤대회에서 우승한 선수의 머리에 월계관을 씌워주는 건 대단히 잘못 된 의식이다. 머리는 그저 발 따라가는 대로 몸에 얹혀 편하게 있었던 반면, 발은 물집 잡혀가며 발바닥 땀나게 뛰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마라톤 시상식 때 월계관은 발에 씌워져야 옳다고 본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안타까운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시력이 상실된 앞 못 보는 맹인이라고 말하고 싶다. 왜냐면 사물을 손과 발을 이용해서 살아가야 하는 불편함 때문이다. 다음으론 양손 없는 사람이다. 손은 몸 전체를 관리해주는 도구이다. 손이 일을 해줘야 생존의 법칙을 지킬 수 있다. 손이 관리해주지 못한다면 걸음의 대명사인 발도 노화현상에 시달리게 되어 신체의 안전성도 보장받지 못한다.

  그 다음이 허리와 무릎이다. 몸의 기둥인 허리가 무너지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하나 신체의 중요성에서 무릎을 빠뜨릴 수는 없다. 무릎이 무너지면 발은 허울 좋은 개살구다. 무릎이 명하는 대로 따라 움직이어야 하는 것이 발이기 때문이다. 발이 무너지면 그 역할을 손과 무릎이 대신할 수 있으나, 무릎이 망가지면 발이 무릎대신 해 줄 수는 없다. 즉, 걸음이란 척추가 몸을 받쳐주고 양손이 흔들면서 넘어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아주어야 한다. 무릎이 자유로울 때 발은 자기 기능을 발휘하여 몸을 이동시켜 준다.
   설레임에 가슴조이며 사랑하는 임 기다리는 초조함을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그리움을 해결해주는 게 발이다. 기쁠 땐 뛰어주고 안타까울 땐 동동 굴러주며, 사색에 졸리는 마음을 서성이는 발걸음으로 달래준다. 나는 유년시절부터 오늘날까지 내 인생을 발걸음에 담아왔기에 발의 고마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대들은 달빛 흐르는 적막강산에서, 쌓인 낙엽 밟으며 양팔 겹치고 사색에 젖어 홀로 걸어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당시 추억을 꺼내어 잠시 명상에 잠겨보자. 발걸음이 표현해주는 자연과 낭만의 서정이 흐르는 감수성을….

   발아, 오늘도 먼 길 걷고 가파른 계단 오르느라 고생 많았다. 발아, 고맙고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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