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사회규범도 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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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성 없는 사회규범도 폭행이다
  • 조병현
  • 승인 2013.10.2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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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유명 연예인이 방송 중에 영어를 잘 못 발음해서 실수한 적이 있다. 이 연예인이 노래곡목을 소개하면서 'Cyber Lover'를 ‘사이버 러버’라고 발음하지 않고 “시버 러버”라고 발음한 것이다.  ‘cy’로 시작하는 단어의 대부분은 ‘사이’로 발음되지만, 환경에 따라서 ‘시’라고 발음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Cybele[sib?liː]’, Cyclo '[si?(ː)klou, sa?i~]', 'cyclopousse[siːkloupu?ːs]', 'Cynic [sinik]', 'Cyrillic [sirilik]' 등 여러 경우가 그렇다.(한컴사전) 즉,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음되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영단어의 발음을 외워두지 않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확하게 발음할 수 없다. 그러면 모든 영어의 발음을 안다는 게 가능할 까? 아니다. 물론 살면서 모든 단어를 알 수도 없거니와 알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살면서 명확하지 않은 기준 때문에 실수를 범하면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거리로 회자된다. 언어학적인 입장에서 보면 영어가 모음의 부족이라는 한계에서 발생하는 단편적 단점일 수 있겠다. 이와 달리 한글의 경우엔 모음이 비교적 많고 음가(音價)가 명확한 편이어서 영어에 비해 모음의 예외가 많지 않다. 따라서 자음에서 몇몇 경우를 빼곤 모음을 잘 못 발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처럼 음가가 명확하다는 것 즉, 기준이 명확하다는 것은 사람들을 혼란에 빠지지 않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방법인 것이다. 개인이나 사회나 국가나 할 것 없이 모두가 무엇에든지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우리는 명확하지 않은 게 너무나 많다.

 ■모호함 하나 - 자동차 분실의 일부책임을 차주에게도 묻는다
 최소한 필자가 아는 상식은 어떠한 이유로든 도둑질은 안 된다. 그런데 어떤 도둑질은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는다. 도둑맞은 것도 억울한데 책임까지 묻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차를 시동이 걸린 채 잠시 자리를 비우거나 키를 꽂아 놓거나, 또는 문을 열어 놓거나 해서 차량을 잃어버렸다면 현행법에서 이 사람에게 과실의 책임이 있을까?  대법원 판례(86다카2747, 2001다23201 등)에 따르면 이 차주에게도 책임이 있다. 판결의 주요지는 이렇다. “자동차의 열쇠를 뽑지 아니하고 출입문도 잠그지 아니한 채 노상에 주차시킨 행위와 그 차량을 절취한 제3자가 일으킨 이 사건 사고로 인한 손해와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불법행위에 있어서 과실상계는 공평 내지 신의칙의 견지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함에 있어 피해자의 과실을 참작하는 것으로서”...,“과실상계에 있어서 과실이란 사회통념상, 신의성실의 원칙상, 공동생활상 요구되는 약한 부주의까지를 가리키는 것이다(대법원 2001. 3. 23. 선고 99다33397 판결 참조)”.라고 주장한다. 요약하면, ‘부주의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이다. 나름 해석해 보면 피해자도 도둑에게 견물생심(見物生心)을 일으키게 한 죄가 있으므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모호함 둘 - 성(性)관련 범죄 모든 책임은 가해자에게만 묻는다

 최소한 필자가 아는 상식 또 하나는 어떠한 이유로든 성범죄는 안 된다. 이 부분에서는 국민 모두가 동의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성(性)에 관련된 범죄들은 예나 지금이나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해 우리 모두가 노력하고 있음에도 범죄는 끊이지 않는다. 이를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최근 일부대학가에서는 교수들이 일으킨 성추행범죄와 관련해서 교수들을 상대로 성교육을 실시하면서 여학생이나 여직원들에게도 '품행을 단정히 하라',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니지 말아라', '남자교수 앞에서는 품행을 조신하게 할 것', 이라는 식의 주의를 주었다고 한다. 이 같은 처사에 대해 여학생들과 한국여성단체연합관계자는 "성추행의 원인을 여성에게 돌리는 것 같아 놀라울 따름이다", “성추행의 원인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후진적 인식을 갖고 있어 당황스럽다", "기업에서도 성추문이 발생하면 여직원들을 대상으로 마치 원인제공자인 양 매도하는 식의 주의를 주는 사례가 많다", "올바른 교육을 담당해야 할 대학교에서마저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문화일보-‘性추행 교수' 놔두고 '女학생 품행' 탓하는 대학) 당연한 반응이다.
 자동차에 키를 꽂아두거나 시동을 걸어둔 채 잠시 비운사이 잃어버리면 관리를 잘 못한 피해자에게도 책임을 묻고, 성추행을 당하면 피해자가 어떤 상황에 있었거나 어떤 행동을 했든지 상관없이 가해자에게만 책임을 묻는다. 필자의 상식으론 이건 자동차 도둑에 대한 처벌과  비교해 상반이다. 견물생심은 물건에도 사람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건강한 남성이 이성을 보고 음욕을 품음까지라면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행동으로 옮겼을 때가 문제다. 따라서 어떤 성범죄도 안 되듯이 어떤 도둑질도 용납할 수 없어야 한다.
 흔들리는 것은 갈대만이 아닌 듯하다. 규범도 가치관도 기준도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면, 이와 함께 우리의 미래도 방향을 잃고 흔들릴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심각한 폭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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