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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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 차덕호
  • 승인 2014.04.2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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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온 국민이 세월호 참사의 트라우마(정신적충격)에 빠져 있다고 한다.
  필자만 해도 그저께 저녁 “엄마 엄마 사랑해” “ 나도 사랑해 갑자기 왜 이러니” “어떻게 해 엄마 사랑해...” “아들아 아들아...”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이 후덜덜 떨리는 이 대화 차라리 그 때 TV 안 보았더라면. 불 앞에 앉아 있으면서 가스레인지에 올려놓았던 냄비가 타는 줄도 모르고 ‘난 많이 살았으니...’라는 생각까지 하면서 한동안 눈시울 적셨다.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에게는 해 드릴 위로의 말도 찾지 못 하겠다.
  생각만 해도 숨이 막히고 가슴 찢어질 듯 비통한 사건이다.
  모두가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 와져 있고 사고에 따른 긴박하고 어려운 일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상호 충돌하여 발생하면서 구조 과정의 혼선과 어지러운 통계 수치가 국민들을 분통과 불신으로 내몰고 있다고 한다.
  이번 초대형 참사에서 통계 수치는 오히려 사고 수습과정에서 극히 지엽적 문제라고 할 수도 있다. 현시점에서도 우리의 궁극적인 바람은 첫째도 둘째도 실종자의 구조인데 통계의 정확성이 사람 죽이고 살리지는 않으니까 라는 말이다. 오락가락 하는 수치는 비웃음을 싸고도 남을 일이지만 분통과 불신의 감정을 통계의 결과에서만 읽지 말고 그 원인에서도 찾아보아야 함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구조 과정의 혼선과 통계 오류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철저히 밝히고 책임 소재를 찾아내어 엄정히 그 책임을 묻고 통렬한 반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사고의 일차적 책임은 물론 선장에게 있지만 배가 기울어져 있어도 두 시간여 떠있었던 동안 구조되지 않은 기가 막히는 책임은 당국이 져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범이 되었다.
  다음으로 재난 구조 시스템의 문제인데 지면 관계상 거두절미하고 우리 국민들이 뽑은 오합지졸의 정치권과 국회, 어떻게든 책임 지워야 한다. 스스로 연금 만들고, 세비나 올리고, 외유에 되지도 않은 말장난이나 하면서 해난사고에 관한 법률은 잠재우고 있었다.
  이 일들 조차도 실종자 구조가 먼저임은 말 할 것도 없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오래 자주 사용되는 말이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나만의 동물, 자기라는 틀에 갇혀 자신이 쳐놓은 울타리에 받히고 튕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배려란 “여러 가지로 마음을 써서 보살피고 도와줌”이 사전적 의미다.
  언뜻 생각하면 아름답고 좋은 의미의 말로 들리고 배려하지 않아도 ‘그저 그렇다’는  개개인의 재량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해도 안 해도 그만이라는 선택이 아니고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의 개념이다.
  “배려”에는 남을 ‘보살피고’만이 아니고 ‘살피고’의 뜻도 있다. 상대방은,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살피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다른 나라에서 보는 시선은 어떤가.
  20년 전의 서해 훼리로 사건의 교훈을 잊었다고 질타하는 외신도 있가. 부끄럽다. 아주 많이 창피하다. 아는 외국인들의 얼굴이 번갈아 떠오른다.
  세월호 선실을 증축했다는 얘기 듣고 70년대 초 고속버스 도입 당시 독일의 고속버스 제조 회사에 좌석수를 늘려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던 수치의 아픈 기억을 반세기 가까이 지나 되살아나게 하는 이 나라, 병자호란 임진왜란에 셀 수 없이 많았던 왜구의 약탈과 살인에도 정신 차리지 못 하고 결국엔 나라를 잃기 까지 하여 징용과 치가 떨리는 관동지진대학살 고통의 일생을 살아온 위안부 할머니의 슬픔이 아직도 풀리지 않는 내 조국 어디로 가고 있나. 
  우리는 언제 부터인가 남의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고 내목소리만 크게 내는 사람이 부쩍 많아진 것 같다.
  일분일초라도 어서 생존자를 찾아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지만 잠수사를 비롯한 구조원들의 안위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우선 구조원이 사고를 당하면 구조하지 못 하지 않는가,
  파도가 높아도 물살이 아무리 빨라도 물속에 들어가라고 하는 사람은 없겠지 - 당신은 죽어도 좋으니 ?라고. 거친 풍랑의 날씨에 자기의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구조 활동에 헌신하고 있는 고마운 분들께 경의를 표한다.
  내가 누구이건 남도 생각해야 한다. 배려는 놓치거나 빠뜨리기 쉽다.
  어린 학생들을 비롯하여 모두 살아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 차덕호 : 논설위원, 우석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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