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집행 안하는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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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집행 안하는 대한민국
  • 안상현
  • 승인 2014.10.05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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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전주교도소 주무관 안상현

20대 여성을 성폭행하려다 실패하자 살해하고 시신을 358조각으로 훼손한 죄로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오원춘이 항소심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피해자 유가족들은 법정에서 울부짖고 또 울부짖었지만 결국 공허한 울림으로 끝나버렸다. 담당 재판부는 무기징역으로도 재범 차단이 가능하다는 것을 판결이유로 내세웠지만 교도관으로서 교정업무에 몸담고 있는 나로서는 심히 안타까움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물론, 무기징역으로 재범의 가능성은 없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실현과 진정한 교화의 가능성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사형폐지론자들은 무기징역으로도 얼마든지 범죄자가 죄를 참회하고 교화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사형집행이 교화의 가능성을 아예 없애 버린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지극히 이상론적인 접근법이다. 살인, 강간 등의 강력범죄로 무기형을 받은 수형자들을 다년간 지켜본 바에 따르면 하루하루를 반성과 뉘우침으로 보내는 이들은 극소수였으며 죽을 때까지 피해자를 저주하며 사회를 원망하는 것으로 보내는 이들이 대다수였다. 심지어는 교도관을 괴롭혀 남은 수감생활을 편하게 영위하려는 시도도 수없이 목도되었다. 이런 행태를 보고 듣고 경험하면서 무기징역이 교화 가능성을 끌어올리는 법적 장치가 현실적으로 되지 못함을 개탄하게 되었으며 지금이야말로 사형 찬반 논쟁이 다시 치열하게 전개되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그간 우리 사회의 사형 찬반 논쟁은 단순논리와 이분법론으로 전개되어 왔다. 특히 사형 반대론은 더더욱 그렇다. 암울했던 일제시대와 독재시대를 통해 무고한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가는 것을 목격하면서 사형은 곧 사법살인으로 받아들여졌으며 사형찬성론자보다는 사형폐지론자가 도덕적으로 우월하고 인권의식이 높다는 인식이 형성되었다. 또한 많은 선진국이 사형집행을 하고 있지 않는 것을 이유로 사형폐지를 하지 않으면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논리도 팽배하게 되었다. 이 외에 가장 경계해야 할 단순논리는 앞서 말했듯이 사형은 교화의 가능성을 0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평생을 교정교화 업무에 매진하다 얼마 전 퇴직한 선배 교도관의 일침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과거 사형집행을 받기 전 장기기증을 약속하고 피해자의 명복을 빈다는 말을 처음으로 내뱉는 사형수를 보면서 진정한 교화가 어떤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죄송하다는 말을 듣기 힘들다.”마지막으로 그간의 사형 찬반토론은 형사사법체계의 마지막 단계로서 법집행과 교정을 담당하고 있는 일선 교도관들의 참여를 배제한 채 학자와 종교인 중심의 탁상논쟁 중심으로 전개되어 왔다. 아무쪼록 앞으로 있을 사형찬반 토론회에는 필히 교도관을 참여시켜 현장의 목소리를 다양하게 담아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 또한 기꺼이 생산적인 토론에 기여할 수 있다면 경험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할 것이다.

 

 사형 찬성론자로서 사형제도가 존치하여야 할 논리는 다음과 같다. 지면 제약 상 몇 가지만 들겠다. 첫째, 현행 형법상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죄는 내란죄,여적죄, 살인죄 등으로 한정되어 있으며 이마저도 여적죄만 절대적 법정형이며 나머지는 법관의 재량에 맡기는 상대적 법정형이어서 사형을 남발할 수 없다. 다만 특별법인 국가보안법의 일부 범죄에 대하여 사형을 과할 수 있어 자칫 잘못하면 정치적 견해를 달리하는 세력을 탄압하는 도구로 활용할 수도 있으므로 국가보안법 범죄의 최고형은 무기징역으로 변경해야 한다. 둘째, 사형을 선고받아도 항소심과 상고심을 거쳐 최종심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아야만 확정되며 과학수사기법이 발달하고 법정 증거주의가 보장되어 있으므로 오판의 가능성이 거의 없어졌다. 셋째, 사형집행이 전체 범죄율을 떨어트리는 데 있어서는 큰 역할을 못한다는 반론이 있지만 적어도 살인,강도치사 등의 강력범죄는 현격히 감소시킨다는 연구결과와 통계가 전 세계적으로 나오고 있다. 넷째, 선량한 시민들의 인권과 법익을 최대한으로 보장해주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사형제가 있어야 한다는 찬성여론이 전 국민의 70%에 달한다.

 

 정의실현과 피해자의 인권존중 및 효과적인 범죄예방을 위하여 사형제는 필히 유지되어야 한다. 사형제도는 있지만 집행을 하지 않은 지 벌써 18년째다. 정치적 견해와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무고한 죄를 뒤집어 씌어 사형을 남발하던 아픈 과거는 절대 잊어서도 다시 있어서도 안 되지만 기우(杞憂)를 키워 제대로 된 처벌도 하지 못하는 작금의 대한민국을 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씁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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