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안 천반산에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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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 천반산에 가다
  • 조민상 기자
  • 승인 2014.10.13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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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의 동북쪽 산간 지방 무진장(무주-진안-장수)은 전라북도의 지붕이다. 그 지붕은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처럼 위풍당당하거나 한국의 지붕 개마고원처럼 광활하지는 못하다. 그저 전라북도의 지붕인 만큼 가장 전라북도다울 뿐이다. 첩첩산중이었기에 조선시대에는 천하의 은신처였다. 진안군 동향면에 있는 천반산은 '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 정여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정여립의 자취를 찾아 천반산을 찾았다. /편집자주


정여립은 동래 정씨의 후손으로 전주 남문 밖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살빛이 검붉고 기골이 장대하여 힘이 세었다. 자라면서 체격도 늠름한 장부가 되었으며 통솔력 있고 두뇌가 명석하여 경사와 제자백가에 통달했다.

명종 22년(1567) 진사가 되었고, 선조 3년(1570) 대과에 급제했다. 율곡을 존중하여 그의 문하에 드나들었고, 율곡도 그의 학문과 인물됨을 사랑했다.

우계 성혼 역시 그의 재주를 아껴 칭찬해마지 않았다. 이 두 사람의 각별한 후원과 촉망으로 일세의 이목을 끌었다. 말하자면 서인의 선두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것이다.

하지만 ‘천하의 주인이 따로 없다’는, 왕권체제하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던 언사를 서슴지 않았던 반체제 인물. 금시 폭발할 폭약처럼 위험한 사상으로 장전돼 ‘대동세상’을 꿈꾸던 인물. 끝내 그 꿈이 스러진 뒤 제 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그의 이야기가 진안에 있다.

정여립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역심을 품었다' '모함이었다' 등 학계의 의견도 엇갈린다.

진안에서 정여립의 자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은 해발 627m의 천반산과 그 산자락 아래 구량천과 연평천이 합수해 태극형 물굽이로 흘러가는 내륙의 섬 죽도다.

천반산은 성산리와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 경계에 위치해 있다. 동향면 성산리 장전마을 쪽에서 천반산을 오른다.

깎아지른 경사진 산길을 넘어 아찔할 정도로 깊은 오지로 내려서는 산행길이다. 정상의 깃대봉을 향해 차고 오르는 오르막에서 숨이 가쁘다. 다리 쉼을 할 때마다 정여립의 행적이 불쑥불쑥 끼어든다.

까마득한 직벽으로 둘러친 천반산은 여간해서 인적을 만날 수 없는 호젓한 산이다. 줄곧 가파른 사면을 치고 올라 정상 깃대봉까지는 1.2㎞ 남짓. 죽도 쪽으로 내려서는 길은 훨씬 더 길어 2.8㎞쯤 된다.

정상을 넘어 우묵한 말바위를 지나면 곧 천반산성 터와 만난다. 성 안은 4만㎡(1만2000여평)의 부드러운 구릉이다. 농경지로 삼을 만한 땅도 있고 우물의 자취도 있다. 정여립은 여기서 전주, 금구, 태인 등 이웃 고을의 무사들과 노비 등 계급의 상하를 가리지 않고 받아들인 대동계원과 함께 무술을 연마했다.

그러나 사대부가의 낙향한 벼슬아치 출신이 천민들과 어울린 것도, 유사시에 병력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적인 모임을 만든 것도, 모두 건드리면 터질 수 있는 위태로운 폭약에 다름 아니었다. 게다가 그는 주변 인물들과 밀담을 나누며 왕위 세습을 거부하거나 충군(忠君)의 이념을 부인하는 아슬아슬한 이야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정여립의 역모를 고발하는 황해도 관찰사의 비밀장계가 조정에 올라갔고, 곧 토벌과 함께 피비린내 나는 살육이 시작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여립의 시신은 조정으로 옮겨져 다시 목이 베어졌고, 그와 교유했던 선비들은 모조리 죽음을 면치 못했다.

더러는 용서를 빌기도 했고, 더러는 상소를 올리기도 했지만 누구도 죽음을 면할 수는 없었다.

산행은 내륙의 섬 죽도 앞에서 끝난다. 한때 정여립이 은거하던 죽도서당이 있었다는 곳. 토벌대가 급습한 서당에는 쌀과 잡곡이 무려 300석이나 보관돼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인가 하나 없는 벽지였던 곳이니 서당이라기보다는 아마도 유사시에 천반산성에 조달할 식량을 보관하는 창고였지 싶다.

죽도를 가려면 산행을 하지 않고도 장전마을에서 강변을 걸어 당도할 수 있다. 죽도는 깍아 세운 듯 한 바위산 절벽을 맑디 맑은 물이 한 바퀴 휘돌아 흐르고 있기에 마치 섬과 같았던 곳이다. 산죽이 많아서 죽도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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