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가 커트당하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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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가 커트당하는 세상
  • 장세진
  • 승인 2014.12.08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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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삼례공고 교사·문학평론가

  명필름은 1995년 설립된 영화사이다. 이 땅에서 영화사로 20년 세월을 버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심재명 대표의 인지도도 높다. 명필름이 20년 동안 제작한 영화는 ‘공동경비구역 JSA’(2000년),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2008년), ‘건축학개론’(2013년) 등  36편에 이른다. 그중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은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후 개봉 대기중이다.

  ‘카트’(감독 부지영) 개봉(2014년 11월 13일)과 함께 여기저기 신문에서 제작사 명필름도 소개하고 있다. 그중 특기할 것이 ‘명필름 영화학교’이다. 2015년 2월 개교할 명필름영화학교는 무상교육으로 이뤄진다. 10명 선발에 300명 지원자가 몰려 30대 1의 경쟁률이었단다.

  심재명 대표는 스포츠서울(2014.10.28)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영화에 의미가 있는 일들을 하고 싶다. 지속성을 갖고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일단 ‘카트’도 “한국영화에 의미가 있는 일들”중 하나로 보인다. 비정규직 노동자 이야기를 정면으로 다룬 첫 상업영화이기 때문이다.

  ‘카트’는 제작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두 차례의 크라우드펀딩으로 5000여 명이 1억 6천여 만 원의 종잣돈을 모아서다. 제작비 30억 원에 비하면 미미한 액수지만,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가 큰 힘이 되었겠지 싶다. 첫선을 보인 제19회부산국제영화제 야외상영관은 아이돌 그룹 엑소의 도경수(디오 태영 역) 출연으로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단다.

  ‘카트’는 일반 개봉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및 의원 20여 명과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인 국회 비정규직차별개선포럼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단체로 영화를 관람해서다. 국회 비정규직 청소 근로자 200여 명이 국회의원들과 함께 영화를 관람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일반 관객은 아직 유동적이긴 하지만 상영 3주 동안 관객 수는 78만 8626명에 그친 것으로 집계되었다. 상영 끝물에 영화를 본 것도 그래서다. 수 개월 후 출시될 DVD를 동네 대여점에서 구해보기 힘들 것 같은 판단과 함께였다.
   ‘카트’는, 우선 비정규직 양산의 원조가 어느 정권인지를 떠올리게 한다. 현재 우리나라 비정규직은, 한겨레(2014.10.29)에 따르면 약 900만 명이다. 그런데 이 수치가 제각각이다. 세계일보 823만 명, 조선일보 608만 명하는 식이다. 영화관련 기사라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자료로 한 것이길래 그런 차이가 나는지 의아하다.

  어쨌거나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 노동자 대비 많게는 절반에 이른다. 그들의 현실적 삶의 열악한 환경을 이렇듯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게 그려낸 ‘카트’인데, 대중일반의 관심이 뜸한 것 역시 의아스러운 일이다. 그렇다. ‘카트’는 을인 노동자들뿐 아니라 갑들까지도 봐야 할, 영화의 또 다른 힘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다.

  ‘카트’는 없는 자들의 고단한 일상 이야기이기에 기본적으로 울컥한 내용의 영화이다. 곳곳에서 콧등이 시큰해진다. 가령 계산대 대체인력 쓰는 것이 불법이라 외치며 달려드는 혜미(문정희), 마트점거시 가수 박상철 노래 ‘무조건’을 합창할 때, 카트로 진압 경찰을 밀어 부치는 장면 등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동력은 무엇보다도 배우들이다.

  염정아(선희 역), 문정희(혜미 역), 김영애(순례 역), 천우희(미진 역) 등은 이름깨나 날린 스타들이 아니다. 민낯 그대로의 아줌마들이고, 할머니이고, 대졸후 면접만 50번 넘게 본 88만 원 세대이다. 그중 압권은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비정규직들의 무게중심을 잡아주는 김영애의 연기다.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카트’지만, 좀 아쉬운 점이 있다. 경찰서 유치장에 있던 선희네가 바로 이어 순례 병문안을 하고 있는 점이 그것이다. 리얼리티나 균제미 살린 그런 영화라면 그들이 유치장에서 어떻게 풀려났는지 보여줘야 했다. 촬영은 해놓고 편집과정에서 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정작 아쉬운 건 따로 있다. 바로 대중일반의 ‘카트’에 대한 크지 않은 관심이다. ‘카트’는 마트를 이용할 때 살 물건이나 영수증 따위만 챙기던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어때 당신, 살만해? ‘카트’가 커트당하는 세상, 참 우울해지는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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