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알리는 미지의 시간을 향해
상태바
봄을 알리는 미지의 시간을 향해
  • 허성배
  • 승인 2015.03.09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허성배 / 논설위원

봄이다. 창문의 커튼을 젖히면 아직도 밝지 않은 새벽길을 힘차게 달리는 트럭과 버스의 헤드라이트가 기다란 빛의 꼬리를 남기며 지나간다.

어디론가 오늘의 목적을 향해 출발하고 있다. 출발은 언제나 기대와 희망을 안겨 준다. 그리고 봄은 그 출발과 함께 온다.

자연의 모든 것이 이 봄과 함께 또 다시 새 삶 의 출발을 시작한다. 얼었던 강물이 녹아 굽이치고 죽은 듯 땅속에 그 숨결을 묻었던 풀잎들이 푸른색 생명의 색채를 뿜으며 솟아난다.

새 학기를 맞은 학생들은 모두 개학을 하고 학교를 갓 나온 신입 사원들도 캠퍼스를 떠나 이제 사회라는 생소한 곳을 향해 출발을 시작할 것이다.

나도 오늘의 출발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난다. 출발은 생명이 또 다시 이어지는 봄과 함께 온다. 그러나 출발이란 또한 매양 새로우면서도 두렵고 불안한 시작이기도 하다. 우리는 제각기 그 출발의 핸들을 왼쪽으로도 틀 수 있고 오른쪽으로도 틀 수 있다. 그것은 각자의 완전한 자유인 동시에 지혜이기도 하다.

핸들을 잡은 다음 그 출발이 도착하는 종착역을 우리는 종종 운명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변명하려 든다. 나는 많은 학덕 높은 사람들이 곧잘 자기의 운명을 남에게 점치러 다니는 것을 흥미롭게 바라볼 때가 있다. 그들은 그 결과에 따라 들뜨기도 하고 더러는 공연한 좌절에 주저앉기도 한다. 과연 한 사람의 운명이란 낯선 어떤 사람에게 판단을 받을 만큼 그렇게 안이한 것일까?

나는 주어진 운명이라는 것을 믿기 보다는 그 운명에 도전하는 용기 있는 삶이고자 한다. 오르고 또 오르면 산정(山頂)에 이르고야 마는 인내와 용기를 바위라도 뚫고야 마는 의지와 집념을 겨울 얼음을 뚫고 되살아나는 생명의 신비로운 힘을 나는 믿고 싶다. 또 가지고 싶다. 출발은 얼마나 가슴 부푼 삶의 기쁨인가!

어린 날의 수학여행의 아침을 생각해 보았는가! 그 터질듯하던 기대와 흥분을 시집가는 날, 장가가는 날의 결혼 행진곡의 감격을 생각해 보았는가!

청운의 뜻을 품고 해외 여행길에 오르던 날의 유난히도 요란하던 프로펠러 소리를 기억하는가!

출발은 정녕 우리들의 신선한 꿈과 설계를 싣고 떠난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또 다시 그 출발의 시점에 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출발에는 먼저 장비의 준비와 방향의 설정이 필요하다.

산에 오르려는 등산객들이 미리 준비해야 할 모든 장비. 새벽 낚시를 떠나려는 사람들의 필수 장비들 그리고 그것들을 싣고 우리는 제각기 어디를 향해 떠나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하러 어디로 갈 것인가.

판단과 결정의 지혜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출발”은 또 하나의 “삶”의 기회이다. 이 봄 또 다시 출발에 앞서 우리는 마음의 장비와 방향의 설정을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리라. 그리고 바람보다도 더 세찬 힘과 자신으로 미지의 시간을 향해 달려 보리라. 옛사람들은 마음은 가을의 정신으로 하되 행동은 봄의 정신으로 하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중국의 어떤 문사(文士)는 꽃과 달과 미인이 없으면 이 세상에 태어날 생각은 아예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큰소리를 했다지만 꽃피는 봄은 어떻든 우리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 넣어 주고 희망을 안겨주는 생동의 계절임이 틀림 없다.

맹호연(孟浩然)은 춘안불각효(春眼不覺曉)라고 봄을 읊었다. 봄에는 밤이 짧아 잠이 곤해서 날이 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뜻이다. 호구지책에 여념이 없는 서민 일지라도 단조로운 생활의 권태로움이나 애환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피어나는 꽃을 보고 푸른 자연을 감상하며 춘광(春光)을 느껴 보는 것도 어떠할는지…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