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과 “을”의 대한민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정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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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 “을”의 대한민국, 근본적인 해결책은 가정으로부터.
  • 안효은
  • 승인 2015.03.24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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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은/남원경찰서 운봉파출소

대한민국의 2014년 하반기에 이어 2015년을 뜨겁게 달구는 키워드는 단연 ‘갑’과‘을’이 아닐까 싶다.
각종 매스컴에서는 연일 ‘갑’의 횡포로 인한 갖가지 사건들이 헤드라인을 차지하였으며, ‘을’의 피해를 담은 경험담은 경쟁하듯 SNS에 공유되어 대한민국이 함께 분노하고 동정하였다.

모 코미디 프로의 ‘갑과을’이라는 코너는 갑을관계의 본질적 속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갑’의 횡포에 ‘을’을 동정하던 관객들, 그러나 아까의 ‘갑’이 ‘을’이 되어 괴롭힘을 당할 때 관객은 그 어느 때보다 크게 웃는다.
본질은 그러하다. 누구나 ‘갑’이 될 수 있고, 또 ‘을’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내가 ‘을’이 되었을 때 분노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을’이 되었을 때는 그 상처를 외면한다. ‘나와 우리’가 아닌 타인의 문제는 외면하고,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갑’이 되는 경쟁과 갈등이 중심이 된 세상. 2015년 대한민국의 단면이다. 그러나 갑을관계의 험난한 세상 속에서도 단 한 곳만큼은 동등한 협력관계이길 바라는 곳이 있다. 경쟁이 아닌 사랑으로 이루어진, 신뢰와 상호 존중의 관계맺음이 있는 공간. 바로 가정이다. 하지만 가족관계에서도 ‘갑’과 ‘을’의 횡포가 지속되고 있다. 어쩌면 가정에서 만들어진 ‘갑’과 ‘을’의 관계는 학교로, 사회로 나아가 또 다른 ‘갑을관계’를 생산해 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경찰청 자료에 의하면 최근 2년 명절연휴기간 가정 폭력 신고건수는 하루에 700~900건에 달한다고 한다. 또한 2014년 설 명절기간동안 여성긴급전화 1366에 접수된 여성인권침해 관련 사건도 2163건으로 전년도 대비 42.9% 증가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멀어졌다고 하나, 아직도 가정폭력은 우리 주변에 만연해 있다. 대부분의 가정폭력은 가장인 남편이 ‘갑’이 되어 상대적 약자인 자녀나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른다.
폭력의 원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먼저 폭력을 휘두르는 가정 내 ‘갑’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 하려한다. 가장의 권위가 가족을 풍족하게 하는 경제력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지는 요즘의 세태에서 경제적으로 약해진 가장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서 폭력은 불가피한 것이라는 비합리적 논리를 내세운다.
또한, 예전부터 사람들은 가정 내 폭력은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로 바라봐 왔다. 폭력이 이루어지는 가정에서도, 폭력을 바라보는 제3자의 입장에서도 가정폭력은 원인도 가정에 있고, 해결 또한 가정에서만 오로지 이루어져야 생각하고 도외시하였다.
하지만, 가정 폭력을 행하는 ‘갑’들은 사회에서 ‘을’인 경우가 더러 있어 사회에서 받은 상처를 가정 내에서의 갑질을 통해 해소하기도 한다. 반대로 가정 내에서 ‘을’인 자녀들이 역으로 학교폭력과 같은 갑질을 하기도 하고, 이러한 피해가 잠재되어 향후 자신이 가정의 또 다른 ‘갑’이 되기도 한다.
가장 안락해야 할 가정에서조차 우리는 이러한 갑을관계의 폭력을 마주한다. 이제는 가정폭력을 남의 문제가 아닌 ‘우리’의 문제로 바라보고 해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폭력을 쉬쉬하고 덮어두며, 단순히 피해자를 격리하기만 하는 것은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에 지나지 않는다. 실제로 가정폭력 문제의 심각성을 현장에서 가까이 느끼고 있는 경찰에서는 가정폭력 해결을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가정 폭력 발생 시 여성청소년 수사팀과 가정폭력전담경찰관이 즉시 현장에 출동하여 피해자의 심리상태 등을 파악하고, 피해자를 관련시설과 연계하는 보호업무를 우선으로 한다. 더불어 시급한 고위험군 피해자를 선정해서 가정폭력 솔루션팀(민관경 합동 지원활동)을 통해 의료, 재정, 치료, 법률 등의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경찰은 사건이 일어난 후에 2차적 피해 예방밖에 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가정폭력을 혼자 해결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 가정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문제를 상담하고 지원해줄 필요가 있다. 하지만 경찰에서 운영하는 긴급전화나 상담센터가 있음에도 홍보나 관심의 부족으로 인해 필요한 사람들이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혹은 알면서도 가정 내 해결이라는 인식에 갇혀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폭력이 가정과 지역사회, 관련 기관이 함께 해결해 가야한다는 인식의 개선이 우선 필요하다. 더불어 지역사회와 관련 기관의 긴밀한 협조를 바탕으로 가정폭력의 위험이 있는 가정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지원 인프라를 구성해야한다.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가정만의 문제가 아니다. 가정 내의 갑을관계는 사회로 확장되고, 대물림 될 위험이 있다. 가정폭력의 해결을 통해 가정에서부터 우리사회의 갑을관계 청산을 위한 노력을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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