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소시지 먹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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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소시지 먹어도 될까?
  • 박설
  • 승인 2016.02.24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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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건강관리협회 전북지부 내과과장 박설

세계보건기구 산하 IARC(국제암연구소)가 햄이나 소시지 같은 가공육과 적색육을 각각 1등급 발암물질과 2등급 발암물질로 발표한 뒤, 국내 축산업계는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가공육이나 적색육이 갑자기 담배나 석면 같은 발암물질로 분류된 것을 보고 소비자들은 울상이다. 특히 자녀가 있는 집에서는 가공육에 길들어 있는 아이들의 입맛을 대체할 식품을 찾지 못해 애를 먹고 있다. 소중한 우리 아이, 햄·소시지 먹어도 될까?

숨겨진 진실 아니면 과잉 반응?
 ‘가공육과 적색육은 발암물질’이라는 발표를 두고 업계와 소비자들의 반응이 예상보다 심각하자 식품의약품안전처가 ‘한국인의 섭취량은 우려할만한 수준이 아니다’라고 발표하며 진정에 나섰다. 하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식탁에 자주 오르는 햄과 돼지고기를 먹어도 되는지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도대체 어떤 성분이 문제이기에 지난 몇 십 년 동안 잘 먹어왔던 가공육과 적색육이 하루아침에 발암물질로 전락한 것일까? 진짜로 암을 유발하는 성분이 포함돼 있었는데 그동안 소비자가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과잉반응에 따른 침소봉대의 소산일까? 그 이유에 대해서 한 번 알아보자.

아질산나트륨이 발암물질을 유발한다?

 IARC가 현재 발암 유발 물질로 지목한 물질은 적색육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화학물질과 가공육에 들어있는 화학첨가물이다. 이 중 적색육을 조리할 때 발생하는 ‘N-니트로소 화합물(NOC)’과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가 가장 의심을 받는 화학물질이다. 이들은 절임이나 훈제 같은 가공육 공정에서 만들어지는 유해물질로 알려졌지만, 부치기와 그릴, 바비큐와 같이 육류를 고온으로 조리하는 과정에서도 대거 생성된다.
 가공육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가공육도 처음 만드는 과정은 적색육을 조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앞에서 언급한 물질 외에도 ‘헤테로사이클릭아민(HCAs)’이 제조 과정에서 생성되는데, 이 성분 또한 발암 유발 물질로 추정되고 있다. 이런 화학물질 중 일부는 이미 암을 유발하는 성분을 가진 것으로 강력한 의심을 받고 있거나, 이미 확인된 물질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결과에도 불구하고 적색육이나 가공육으로 인해 어떻게 암 위험이 증가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화학첨가물로는 가공육에 들어가는 아질산나트륨(sodium nitrite)이 논란의 주인공이다. 가공육은 고기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각종 첨가물을 넣게 되는데, 이 중에서 아질산나트륨은 붉은빛을 돌게 하는 발색제의 역할과 맹독성 식중독균인 보툴리누스균(clostridium botulinum)의 번식을 막는 보존제 역할을 한다.
 아질산나트륨에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는 높은 온도에서 육류의 아민(amine)과 결합해 발암물질은 니트로사민(nitrosamine)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국내 식품안전 전문 검사기관들은 15세 미만의 어린이와 임산부가 아질산나트륨을 많이 먹지 않도록 주의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질산나트륨 등 각종 첨가물을 뺀 천연가공육은 발암 가능성으로부터 안전할까? 이에 대해서도 아직 명확한 결론이 나있지 않은 상황인데, 사실 결론이 나있지 않다기보다는 ‘모른다’는 것이 정답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아질산나트륨과 같은 첨가물을 뺀 햄이나 소시지가 국내에서도 판매되고 있으나, IARC의 이번 발표가 가공육의 특정 첨가물이 발암 요인이라는 것을 밝힌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유해성과 위해성 혼동 말아야
 이처럼 모든 것이 불명확한 상황에서, 소비자들은 과연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현명할까? 이에 대해 국내 암 전문가들은 ‘발암물질과 접촉해도 발암 위험이 없는 적정량과 안전한 조리방법을 택해 이를 생활에 적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하고 있다.
 여기서 적정량이란 발암 여부를 평가할 때, 발암 성분의 존재 여부와 함께  성분의 용량까지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예를 들면 옥수수나 콩의 썩은 부분에서 검출되는 아플라톡신(aflatoxin)은 니코틴(nicotine)보다 독성은 훨씬 높지만, 인체 노출량은 니코틴의 백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독성은 강하지만 양이 적은 아플라톡신보다는, 독성은 낮지만 훨씬 많은 양이 인체에 노출되는 니코틴이 더 해롭다는 의미이다. 이 같은 비유를 든 이유는 적색육이나 가공육 섭취량이 서양인에 못 미치는 동양인에게 서양인과 같은 잣대를 댈 수 없다는 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다. 특히 먹거리와 같은 생활습관 요인은 인종이나 지역, 문화 등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IARC의 발표를 우리 식탁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는 몇 가지 문제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앞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많은 규명 작업이 이뤄지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소비자들이 알아야 할 분명한 사항은 육류의 유해성과 위해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해로운 점은 있지만, 얼마만큼 먹어야 위험한지에 대해서는 IARC 조차도 답변이 궁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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