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입 월평균 80만원, 애라도 없으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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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입 월평균 80만원, 애라도 없으니 다행”
  • 윤상언
  • 승인 2010.06.0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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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모대학 시간강사 A씨의 넋두리

시간강사 A씨. 6월이 되면 계절적 실업자로 전락한다. 1년에 두 차례씩 방학 때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실업의 계절을 맞은 지도 벌써 17년째. 세월과 함께 어느덧 나이는 중년에 접어들었고 저소득 하층계급으로 고착된 채 꿈도 미련도 모두 버린 '주변 인생'으로 전락했다.

내일이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 없는 인생이란 얼마나 암담한가. 게다가 백짓장 한 장에 불과한 경계를 사이에 두고 1등 시민과 3류 인생의 명암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최고 학력의 소유자들이 느끼는 좌절감의 부피는 본인 아닌 타인의 입장에선 절대 이해할 수 없다.

불과 한 발짝을 더 내딛지 못해 휘황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동료들을 어둠 속에서 응시해야만 하는 엑스트라 박사 인생들의 비애는 이처럼 우리 사회 심연에서 모든 비정규직의 속울음을 대변한다.

“실수입 월평균 80만원, 애라도 없으니 다행”

▲ 지난 5월 14일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교육과학기술부 후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정규직 천대하는 교과부 장관 각성하라”며 “비정규직 착취 제도의 원형인 대학시간강사제도를 철폐하라”고 촉구했다. 
ⓒ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지인의 소개로 우연히 알게 된 전북의 한 대학 시간강사 A씨의 생활은 참으로 암담하다. 인생의 설계도, 노후에 대한 불안도 이제 사치에 불과하다.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그저 부유하는 무중력 상태의 물체처럼 내일 없는 오늘을 살 뿐이다.

A씨의 인생이 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한계생활비에도 못 미치는 저소득 구조가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8년간 A씨가 뛰는 주당 '시간'은 20시간 안팎. 전라북도 전주와 군산에 소재한 3~4개 대학을 분주히 오가며 발품을 팔아도 손에 쥐는 실제 수입은 최저생계비를 밑돈다. 시간당 강의료가 박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A씨의 주당 평균 소득은 60~80만원. 언뜻 생각하면 월 200만원 안팎에 달해 '먹고 살 형편'은 되지 않느냐는 반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살펴보면 밑바닥 인생임을 자조하는 시간강사들의 실상을 이해하게 된다.

우리나라 대학들의 수업일수는 연간 52주 중 32주. 주당 5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고 가정해도 연간 총 수입은 1600만원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식비와 자가용 운용비를 제외하면 실제 수입은 많아야 연간 1000만원을 넘지 못한다.

부모가 마련해 준 아파트 관리비와 통신료 및 전기료 등 기본 생활비를 지출하고 나면 그야말로 먹고 사는 것이 걱정이다. A씨의 음울한 고백은 절박한 현실을 한마디로 증언한다.

“그래도 자녀를 두지 않아 생계를 꾸릴 수 있는 것이 다행이다.”

장밋빛 꿈에 부풀어 박사까지 마쳤는데

처음 출발은 장밋빛 꿈에 부풀었다. 17년 전, 2년간 조교 과정을 거친 후 시간강사로 나서 처음엔 주당 6시간을 뛰었다. 교수의 꿈을 좇는 사람들이 누구나 그러는 것처럼 '정규'로 가는 코스라고 착각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당시 금액으로 월 10만원도 되지 않는 수입이지만 조만간 꿈은 이뤄지리라는 생각으로 생활고를 감내하며 논문을 활발히 발표하면서 박사 코스를 마쳤다.

하지만 현실은 냉정했고 잡힐 듯 결코 잡히지 않는 꿈을 꾼 대가는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A씨는 당시 시간강사들의 생계가 정말로 막막했다고 말한다. 방학이 되고 10여 일이 지나면 담뱃값이 떨어지고 심지어 지도교수가 만나자고 연락해도 버스비가 없어 나갈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것이다.

학기 중에도 궁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대학에 출강해도 끼니때가 되면 식비가 없어 구내 매점에서 몇 백 원으로 빵과 우유를 사 외진 곳에서 배고픔을 달랬고 귀가 때면 통학버스 시간을 기다려 학생들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무더기 밑바닥 인생을 걷는 시간강사 문제를 보는 시각은 보는 이에 따라서 다를 수 있다. 1차적으로 직업선택을 위한 기회비용을 과다하게 지출한 당사자들의 책임이라고 돌릴 수 있다. 원칙적으로 자유의지에 따라 돌아가는 시장경제에서 본인의 책임론은 타당성을 띠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도 변명할 수 없는 절대적인 진실은 우리나라 시간강사 제도가 싸구려 대학경영 과정에서 나온 변칙이라는 것이다. 이는 고학력 고급인력들의 강단을 향한 열정을 이용해 정부와 학교, 당국이 담합적으로 대규모 낙오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을 근거가 된다.

A씨도 자신을 포함한 시간강사들이 졸속 정책의 희생자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대학이 정규직의 1/10에 불과한 푼돈으로 시간강사들을 땜방식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분노를 토한다.

A씨의 논리는 간단한 셈법으로 증명된다. 대학교수의 기준시수는 9시간. 이 시수를 시간당 3만원 기준으로 시강들의 강의료에 적용하면 일주일에 27만 원, 연간 기준으로 864만 원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이에 반해 전임교수들의 연봉은 4000~4500만 원. 퇴직적립금과 복지후생비 등을 더하면 5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고 호봉과 직책을 고려한 평균 임금은 또 다시 상승한다.

A씨는 교수초빙 심사과정에서 일부 금전거래를 포함한 거대한 커넥션에 대해서도 생생한 경험을 증언한다. A씨는 조교와 시간강사 초창기를 보낸 후 지금까지 5~6회는 정규 교수 직전까지 갔다가 좌절했다고 생각한다.

A씨가 말하는 기회는 최소한 양자택일 후보 중 한 명에 자신이 끼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도제식 인간관계가 심사결과를 좌우하는 현실 때문에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고 확신하며, 그 근거로 모 대학 최종 단계에서 심사교수 중 한 명이 상대방을 합격시키기 위해 자신의 전공영역을 0점 처리하는 일조차 있었다고 끓는 속을 내비친다.

“내 것 아닌 거에 욕심 안 낸다, 건강보험만이라도”

한 번은 5명의 심사교수 중 자신과 상대방의 후원교수가 2대2로 팽팽히 맞선 적이 있었다며 후원은 평소 인간관계의 연장이었다고 토로한다.

A씨의 충격적인 고백은 소문으로만 나돌고 있는 금전거래에 대한 일부 단서를 제공한다. 교육자적 양심과 막대한 액수를 마련할 수 없어 거절했지만 90년대 초기 전북도내 모 대학서 5000만 원, 수도권 대학서 5억 원을 요구하며 은근한 유혹이 있었다고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형식적으로는 교육부가 독려하는 교수 충원율도 현실에선 편법과 부조리를 낳고 있다. 시간강사보다 월 30~40만 원만 더 지급하면 되는 겸임교수와 시강과 같은 임금을 방학 중에도 지급하는 객원교수로 땜질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실제 교수충원율이 예산지원의 주요 잣대로 작용하자 최근 수년 전북도내 사립대의 겸임과 객원 교수는 급속히 늘어났다.

A씨는 지난 2003년 자신의 전공영역이 0점 처리된 후 교수의 꿈을 완전히 접었다. 체념 속에서 문득문득 가냘픈 마지막 미련도 떠오르지만 이내 부질없는 희망이라며 고개를 젓는다. A씨의 현재는 한 마디로 정신적 공황상태로 정의할 수 있다. 될 대로 되라는 아노미 상태에 빠져들어 무계획·무희망·무분노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주관과 의지가 송두리째 빠져 나간 듯 계획도 없고 희망도 없으며 분노도 잊어버렸다고 말하는 총체적 체념의 역설은 오히려 듣는 이를 망연케 한다.

A씨의 체념의 역설은 절절하게 이어진다. 내가 왜 이 길을 왔던가 하는 부질없는 후회도 거둬들인 지 오래다. 이젠 내 것이 아닌 것을 욕심내지 않았다는 자기 부정만이 있을 뿐이다.

지금처럼 실업자가 돼 홀로 방안에서 멍하니 천정만 응시하다 보면 인간으로서 자신에게 무엇인가 원초적 하자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처가는 물론이고 부모를 찾는 발걸음이 시간과 비례해 뜸해졌다. 친구를 만나는 일도 주머니를 생각하면 겁부터 날 수밖에 없다.

졸아든 '박사 A씨'의 꿈은 액면 그대로만 들으면 소박하기 그지없다. 건강보험이 지역에서 직장으로 바뀌는 것이 유일한 바람이다. 자존심을 송두리째 내던진 이 바람은 분노의 역설이면서 낯부끄러운 경험이 녹아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90년대 후반 시강을 본격적인 생계수단으로 받아들이고 2003년 교수 꿈을 완전히 접은 뒤 A씨는 마음이 편해졌다고 자기 최면을 수시로 읊조린다. 다행히 자녀가 없지 않느냐, 먹고 사는 생계는 해결되지 않느냐며 나락으로 떨어지는 마음을 추스린다.

서울대 시간강사 죽은 지 7년, 달라질 거 없는 현실

A씨는 7년 전, 서울대 시간강사가 생활고로 자살한 사건 이후를 소회했다. 당시 우리나라 최고 대학답게 서울대 강사의 자살에 대한 반향은 달랐다. 우리 사회 최고급 인력의 생활고가 그 정도냐는 사회적 관심이 쏟아졌고, 10만여 시간강사들의 절규에 귀를 막던 교육부도 당시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는 것.

대책들이 즉각적으로 발표되기는 했다. 불청객처럼 학과 사무실 한쪽 빈 의자를 꿰차고 강의 시작을 기다리는 시간강사들에게 공동사용이지만 연구공간을 제공하겠다고 말하고, 강의료 현실화와 방학 중 급여 지급, 4대 보험 혜택 제공 등 꿈같은 대책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7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 어느 하나 지켜진 것이 없다. 오직 한가지 고용보험 가입혜택을 줬지만 실상 그것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 시간강사는 형식적으로 엄연히 연중 근로자에 해당한다. 계약서도 없이 관례적으로 운영되지만 경력증명서를 떼어보면 근무기간은 1학기 3월2일~8월 하순, 2학기 8월 하순~2월 28일 등 연중이다. 이 때문에 실질적으로 연간 140일의 계절적 실업을 감수하면서도 실업급여를 탈 수 없다.

실제 A씨는 고용보험 가입 후 첫 방학 때 근로복지공단을 찾아 실업급여를 신청했다가 경력증명서를 들이대는 직원에게 낯을 붉히고 돌아선 민망한 일을 겪었다. 물론 언젠가 시간강사를 완전히 떠난 후엔 최장 8개월의 실업급여를 받겠지만 매년 되풀이되는 계절적 실업에 대한 혜택은 '눈 가리고 아웅'에 다름아닌 것이다.

지역건강보험이 직장보험으로 바뀌는 것이 유일한 꿈이라는 A씨의 웅얼거림은 이런 상황에서 냉소와 자조를 담고 있다. 어쨌든 월 5만원 가까이 지출이 줄어들어 형편이 좋아지지 않겠느냐며 다시금 희멀건 미소를 지어 보인다.

A씨의 좌절은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국가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심각하다. 현재 A씨처럼 기약 없는 내일에 희망을 접은 최고급 인력들은 전북 도내에만 수천 명. 이들이 전북도내 대학 총 강의시간의 거의 절반을 담당한다. 전국적으로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가운데 A씨는 공공연히 강의엔 관심없다고 말한다. 어차피 싸구려 땜방 인생인데 강의도 땜방만 하면 되지 않겠느냐는 반문이다. 시간만 채운 후 학생들이 '휴'하면 '강'하고 보따리를 싸면 그만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교육이 경쟁력이라는 떠들썩한 구호 이면에서 말 그대로 휴강과 진배없는 대규모 부실강의가 제도적 착취 아래 대대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A씨는 시간강사의 일그러진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한다.

“봉건 계급사회로 비교하면 정규 교수는 시민, 시간강사는 노예다.”

계급사회에서 시민과 노예의 신분적 차이는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바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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