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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도서관 길위의 인문학-순창군립도서관과 함께한 역사·문화 탐방
구국의 순창정신, 역사의 현장을 더듬다!
2016년 09월 01일 (목) 12:51:15 이세웅 기자 doosan238@hanmail.net

   
 
“솔찬히 아고똥했던 선비들을 시방 여그로 모셔오면 우짠일이 일어날까 잉!
하이구메 속이 다 씨원허게 짯짯이 헐 말 허지 않을까? 그라제 잉!”

그리웠다.
보고 싶었다.
백성들의 험난한 삶을 안타까워하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고 조곤조곤 할 말은 해야 했던 선비들을 지금 이 시대로 데려오고 싶어 길을 나섰다.

'도서관 길위에 인문학'은 문화체육관광부(주관 한국도서관협회)가 지역사회 인문정신문화를 부흥하고, 독서문화를 진작시키며, 문화·교육의 지속적 거점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자 마련한 행사인데 전국 968개 공공도서관 중 순창군립도서관에서 공모에 2년 연속 선정되었다. 우째 이런 일이! 작년 “순창 여성들이 걸어온 길 답사”를 다니며 행복해했던 사람들의 미소가 떠올랐다.

   
 

전라도로 시집 온 걸 수국꽃 피어나듯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보니 내가 사는 순창의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순박한 양이 창성한다는 뜻으로 순창이지만 섬진강이 흐르고 오선위기혈의 회문산과 수줍은 여인네의 볼그스레한 볼 같은 강천산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 순창에서 살아감에 그윽한 기쁨을 만끽하는데 기쁨이 배가 된다니!

고려말 조선 건국을 반대하며 순창에 은거한 조원길을 비롯 두문동 72현중 4현이 순창 사람일 정도로 옹골찬 절의 정신이 살아있는 곳,  조선 중종시대 신비복위 상소를 올려 사림의 기틀이 된 강천산 삼인대의 선비정신이 있다.

   
 

순창군수 김정과 담양부사 박상, 무안 현감 류옥의 목숨을 건 상소는 그 얼마나 통쾌했던가?  하서 김인후의 절의 정신이 꽃피우던 강학당인 훈몽재가 있고, 녹두 전봉준 장군이 두 눈 부릅뜨고 회문산 고개들을 넘으며 한양으로 압송되며 흘린 피눈물이 있는 곳도 순창이다.

노사 기정진의 위정 척사 정신, 도끼 들고 상소를 올렸다는 면암 최익현이 정읍 태인에서 의병을 일으킨 후 순창읍으로 진격하고 대마도로 끌려가던 곳이기도 하다. 양춘영 장군을 비롯한 항일 의병 투쟁가들이 숨을 고르던 곳, 이름 없는 포수들이, 천민들이 그들의 새로운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총을 들고 낫을 들었던 흔적들이 있는 곳, 순창은 솔찬히 아고똥했던 곳이다. 그 뿐인가? 어려서 항일 운동에 참여하며 민족정신을 기르고 일제강점기때 독립운동가들을 무료로 변론하다 1948년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가 복흥면 출신이다. 

   
 

일단 노사의 고산서원과 하서 김인후의 서원이 고즈넉하게  자리한채 동학농민전쟁과 위정척사의 기운이 감싸는 장성으로 향하였다.


역시 장성은 물이 맑고 산세가 아름다웠다.
기정진이 1878년에 ‘담대헌’이란 정사(精舍)를 건립하여 후학을 양성했는데 외삼문으로 들어가는 걸출한 선비들처럼 당당하게 들어갔다. 아! 조선후기 6대 성리학자인 이분이 바로 순창군 복흥면에서 태어나고 자란 분이시기 때문이리라.

노사의 아버지가 노모의 혈자리를 구하려고 산세를 보고 명혈을 찾아다니던 중 노란 꾀꼬리가 나무를 쪼는 형상인  황앵탁목혈을 보고 바로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풍수지리학적으로 한쪽 눈을 잃은 사람이 나와야 발복하는 곳인지 노사는 애꾸눈이었다. 18세에 양친을 여의고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선대의 고향인 장성으로 이사하게 되어 ‘중국 장안의 만개의 눈이 장성의 한 개의 눈 보다 못하다’는 유명한 말의 주인공이 된다.

먼저 찾아간 ‘담대헌’은 은행나무를 비롯한 여러 나무들이 뛰어 노는 아이들 마냥 생기있게 자리잡고 장판각에는 노사 선생의 문집과 목판이 보관되어 있었다.
‘딸깍발이 선비문화체험학교’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어 안내하시는 사무장님께 여쭤봤더니 “평소에는 학문에 열중 하고 국가가 위기에 처할 때 칼을 들라”고 가르쳤던 노사 기정진이 진정한 조선 마지막 딸깍발이 선비였다고 한다.



그래선지 34세의 나이로  진사과에 장원했지만 죽을 때 까지 모든 관직을 거절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열중했던 노사는 평생 가난속에서도  81세까지 저술활동을 멈추지 않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했기에 600여명의 제자를 길러내며 노사학파를 형성할 수 있었으리라.

바른 것을 지키고 옳지 못한 것은 배척한다는 원래의 뜻을 가지고 있는 위정척사사상은 노사 기정진에 의해 체계화되며 훗날 한말 의병운동의 정신적 주춧돌이 되었으며 제자들과 자손들 중 의병운동의 선봉장이 된 사람들도 많았다고 한다.


고산서원 중앙에 수양버들처럼 늘어진 위성류나무를 보다가 함께 동행한 숲 해설사, 마을 해설사 분들의 우람한 나무들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들으며 공부라는 것은 끝이 없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면암 최익현이 지은 글이 우뚝하고 제자인 정재규가 지은 묘갈명이 새겨진 비가 눈앞에 있다. "하늘이 우리의 도(道)를 도와 선생을 낳으셔, 정기(正氣)를 모아 진실로 대성(大成)하셨네"(天相斯道 正氣之會 展也大成)
구한말 서구열강의 침입 속에서 민족의 자존과 나라 사랑에 바탕을 둔 노사의 정신은 서슬 퍼렇던 권력에 맞서 도끼들고 상소를 올렸던 면암 최익현이 노사를 존경해서 비문까지 썼을 정도이다.



면암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나라를 팔아먹은 외부대신 박제순 등 5적을 처단할 것을 주장하였고 1906년 6월 4일 정읍 태인의 무성서원(武城書院)에서 전국의 유생 및 의병들을 모아서 순창 복흥의 구암사를 거쳐 순창으로 진격하게 된다. 구림면 화암리에서 관군과 대적하나 같은 동포끼리 총을 겨눌 수 없다 하여 의병을 해산시키고 대마도로 끌려가게 된다.

그러나 “쌀 한톨 물 한모금도 왜놈 것은 먹을 수 없다”며 단식으로 절의를 보여준 뒤 대마도에서 숨을 거두게 된다. 면암의 유해가 부산항에 도착한 날 시장상인들 마저 모두 철시하고 면암의 유해 앞에서 통곡하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의병 정신은 순창에서 끈질기게 의병운동을 하는 토대가 되어 회문산의 양춘영장군을 비롯하여 동계 쌍치 복흥을 비롯한 순창 각지에서 활활 타오르게 되었고 가인 김병로도 면암의 의병부대에 포수들과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한사람 한사람의 선비정신이 모이고 모여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이루어 내는 구나라는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길 위의 인문학 강좌'를 통해 “책과 사람과 현장이 만나는 역동적 문화 체험 속에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는 기획의도 만큼  순창정신을 제조명하고 순창사람으로서의 새로운 자부와  긍지를 갖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 길위의 인문학을 통해 ‘나눔 그리고 소통’을 하기 위한 군립도서관이 지역 학습 공동체기반의 거점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면 지역민으로서의 자존감을 드높이는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군민의 문화참여 기회 확대를 통해 독서문화의 가치를 사회 전반에 확산하고 문화융성을 높이려는 도서관의 열정에 적극 동참코자 한다.
 

글: 황호숙 순창문인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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