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성배/논설위원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인용으로 조기 대선일(5월 9일)이 앞으로 49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정치는 물론 안보, 사회 등 모든 면에서 대한민국 운명을 좌우할 중차대한 시기다.
특히 먹고 사는 문제인 경제(經濟) 부문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한국 경제의 향방을 가름할 대내외 중대 변수들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물론 정치권이 그 어느 때보다 정신 차려야 하는 이유다.
‘4월 위기설’의 진원인 대우조선 해양 문제는 위기감을 더 키운다. 위기설의 요체는 대우조선이 주문받은 배를 완성해도 잔금을 제때 못 받는 데다, 신규 수주가 부진해 유동성 위기에 빠지면서 파산할 수도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근거 없는 시나리오”라고 일축하지만 대내외 환경이 심상치 않다는 점에서 곧이곧대로 믿을 수만은 없다. 30년 가까이 6조 원 이상 혈세가 투입되면서 돌려막기 식으로 연명한 대우조선이 툭 하면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불과 49일 간의 ‘경제 시한폭탄’ 기간 국민에게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정부 책임이 막중하다. 각종 악재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하도록 지휘소 역할을 차질없이 해야 한다.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은 지난 15일 대선에 불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정부와 각급 공직자들은 지난 정권들과 같은 구태에서 벗어나 황 대행을 주축으로 공명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헌신 봉사해 줄것을 당부하여 마지않는다.
한편 이번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인용을 판결 하면서 강조한 핵심 사유 중 하나로 ‘기업 경영의 자유(自由)’와, 권력의 침해,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돈 내고 처벌받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할 것이다.
‘재산권 침해’를 적시한 것은 정·경 유착관계 정상화의 중요한 전기가 될 전망이다. 헌재(憲裁)는 박 전 대통령이 법적 근거와 절차 없이 기업들에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강요한 것이나, 이권 사업 및 인사에 개입한 일이 헌법 제15조 및 제23조를 위배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제15조 ‘직업선택의 자유’는 법인의 영업 자유도 포괄한다. 기업들이 ‘대통령 관심사항’을 현실적으로 거부할 수 없었을 것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일각에서 그런 관행이 역대 정권에서도 예외 없이 존재했다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지만, 헌재는 ‘탄핵 사유’임을 적시함으 로써 더 이상은 용납될 수 없음을 천명한 것이다.
헌재의 시각은 두 재단에 774억 원을 낸 기업을 ‘뇌물공여자’로 규정한 박영수 특검과는 다른 접근이다. 정권이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요구하면 기업이 응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인·허가권과 세무조사·검찰 수사·공정위 조사 카드 등을 쥔 정권에 밉보였다가 유무형의 불이익을 받은 것이 경험칙이다. 박근혜 정권은 미르·K스포츠재단 외에 청년희망펀드·창조경제혁신센터 등을 추진하면서 기업에 부담을 떠넘겼다.
이렇게 뜯긴 각종 준조세가 2015년 16조4071억 원, 그해 징수한 법인세의 36%에 해당한다. 정도 차만 있을 뿐 역대 정권의 기업 팔 비틀기는 끈질기게 이어져 왔다. 당장 정치권력의 눈에 벗어나는 것은 피했다 해도, 정치 상황이 바뀌면 사정 기관에 난타당하는 일도 흔하다. 지금도 한국 대표기업 삼성 총수는 구속됐고, SK·롯데 등의 총수는 출국금지 상태다.
헌재가 ‘기업 자유·재산권 침해=위헌’을 명시적으로 밝힌 것은 비정상적 권력-기업 관행을 청산하라는 명령이다. 정치 위험성에 발이 묶이면 투자·고용도 뒷전이 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인 이번 사건을 반면교사 삼아 대선 주자들부터 국민 앞에 국가의 운명이 걸린 진실한 실천만을 약속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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