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때 단골 메뉴 경제 민주화. 노동개혁 실종된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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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때 단골 메뉴 경제 민주화. 노동개혁 실종된 대선
  • 허성배
  • 승인 2017.05.01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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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19대 대선 국면에서 ‘경제민주화. 노동개혁 공약이 자취를 감춘 것은 흥미로운 현상이다. 1987년 헌법에 이른바 경제민주화는 줄곧 대선·총선의 단골 메뉴였고,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문재인 후보는 원조 논쟁까지 벌였다.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실패한 박근혜 정부의 대선 슬로건이었고 그나마 선점당한 기억, 여전히 개념은 모호하고 구체적 성과도 없었다는 평가, 30년 반복된 레퍼토리에 대한 대중의 피로감, 여기에 김종인과 일부 대선 후보의 악연까지…. 대신 대선 후보들은 ‘재벌 개혁’이라는 보다 직접적인 타깃을 세우고 공세를 더 높여왔다. 진보, 보수가 따로 없다.

국회에는 대기업을 겨냥한 공정거래법·상법·유통관련법 개정안이 선거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국정농단 세력의 공범으로 치부된 기업들은 정권 교체가 유력한 판세를 지켜보며 잔뜩 움츠려 있다. 경제민주화는 표면에만 사라졌으되 사라진 건 아니다.
대선 토론에서 실종된 또 하나의 의제가 ‘노동 개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한국의 저성장 탈출을 위해선 노동 개혁이 시급하다고 누누이 강조해왔고, 그 선결 과제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해소를 꼽았다.
노동시장의 전근대성을 내버려 두다간 신기술로 사라지는 일자리는 물론, 새롭게 다가오는 일자리도 눈 뜨고 놓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기에는 노동 개혁 접근법도 달라져야 한다. 차기 지도자라면 20세기 식의 늙은 노사 대립 구도에서 벗어나 역동적인 노동시장을 꾸리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예컨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규직 없는 세상’을 얘기하는 식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신산업이 퍼지면 노사 개념도, 직장이란 공간도, 근로시간 형태도, 평생 고용도 희미해지거나 혼재될 수밖에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만 제대로 세워도 노동 약자의 고통을 줄이고, 고용 유연성을 높여갈 수 있다. 대선후보들은 현란한 일자리 수사(修辭) 대신 국민 실생활이 걸린 노동 개혁 이슈와 정면승부를 펼쳐야 한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결코 내버려 둘 수 없는 핵심 이슈다. 그러나 이해관계와 역학 관계가 뒤얽힌 사안이라 성과를 내기 힘든 대신, 정치적 부담은 크다. 대선 후보들은 4차 산업혁명이란 세련돼 보이는 새 밥상엔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지만, 힘들고 표도 잃을 수 있는 노동개혁이란 설거지에는 흥미가 없다. 노동시장의 과실이 소수에게 치우친 구조를 바꾸자는 게 노동개혁이다.
정규직 노조 중심의 상위 10%만 고임금을 누리고, 일자리까지 세습하는 체제는 정의롭지 않다. 나머지 90% 중소기업·비정규직·청년·고령 근로자에게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소득 격차는 더 벌어지고, 소비 위축과 사회 갈등 같은 후유증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노동 개혁은 한마디로 ‘기득권 노조와의 싸움’이다.
박 정부는 대결도 대화도 아닌 어정쩡한 전술로 임하다 탄핵까지 겹치며 무너졌다. 이번 대선에선 그나마 노동 개혁을 정면으로 거론하는 유력 후보자는 일부를 제외하고 아무도 거론조차 않고 있다. 대신 너도나도 ‘일자리 창출’을 앞세운다. 일자리는 생색나는 일이지만, 노동 개혁은 감내하는 일이다. 노동시장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고용을 늘리겠다는 것은 자기기만이다.
4차 산업혁명은 기술·고용 양 측면에서 기회이자 위기다. 기존 방식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필연이지만, 혁신은 과거에 없던 역동적인 일자리를 만들어 왔다. 신기술·신사업이 창출하는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 각국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시대다. 혁신을 막는 낡은 산업 규제를 없애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이런 일자리를 수용할 그릇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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