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소방서 방호구조과 예방안전팀장 박지모
올해 6월 중순, 전 세계의 이목이 영국 런던에 모두 집중됐다. 이 날 새벽 1시경 수백 명이 입주한 런던 서부의 고층 아파트 ‘그렌펠 타워’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현지 소방 당국은 입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소방인력과 장비가 투입되었지만 거센 불길을 진화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약 120가구가 거주하던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약 80여 명이 사망한 것으로 파악됐다.
런던 화재에서 불길이 쉽게 번진 원인은 건물 외벽에 가연성 외장재를 설치한 탓이었다. 국내의 경우, 2010년 부산 골든 스위트 화재와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 등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이 때문에 2010년 이후 신축 되는 30층 이상의 건물 외벽에는 난연재나 불연재 소재를 쓰도록 하였고, 2015년 말부터는 6층 이상 건물도 외벽에 난연재나 불연재를 쓰도록 법령이 추가로 개정됐다. 하지만 이는 외벽에 불연재 등을 쓰지 않은 2010년 이전의 고층건물과 2015년 이전에 들어선 저층 건물 등 관련 법령의 사각지대가 존재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심히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이러한 사각지대에 있을 기존의 건축물에 대해서도 추가적인 관리나 대책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 건축물의 피난·안전을 위하여 건축물 중간층에 설치하는 대피공간인 ‘피난안전구역’이 있다. 피난안전구역은 화재로부터 방어가 될 수 있도록 구조가 되어 있어 고층건물의 높은 층에서 한 번에 지상으로 나갈 수 없는 피난자가 잠시 머무를 수 있거나 계단으로 구조하러 가야하는 구조대원의 휴식처가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공간이다. 이 공간은 피난 층 또는 지상으로 통하는 직통(비상)계단과 연결되는 구역으로, 건축법 시행령에는 대개 30개 층마다 1개소 이상 설치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맹점’이 존재한다. 건축법 시행령 제2조에 의하면, 층수가 50층 이상이거나 높이가 200m 이상인 건축물을 ‘초고층 건축물’, 층수가 30층 이상 49층 이하이거나 높이가 120m이상 200m미만인 건축물을 ‘준초고층 건축물’로 규정하고 있다. 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피난안전구역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지만, 준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폭 1.5m 이상의 직통계단을 설치하면 피난안전구역 설치를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조항’이 존재한다. 다시 말해, 준초고층 건축물의 경우 피난안전구역이 아예 없을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외 조항을 개정하여, 준초고층 건축물에도 피난안전구역 설치를 의무화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런던 그렌펠 아파트 화재를 계기로 고층건물 화재의 관심이 높아진 지금 법적·시설적인 정비도 필요하지만 고층건물 거주자를 대상으로 화재 시 행동요령과 화재안전시설 사용요령에 대한 매뉴얼을 정비해 교육·홍보를 집중 시행하여 안전의식을 제고해야 한다. 민·관의 관심이 모여야 화려함과 안전함이 공존하는 고층건물이 될 수 있다.
잘 갖춰진 법규정·소방설비·시스템·대책과 함께 우리의 경각심과 관심이 모이면 진정한 화재예방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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