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2차대 전쟁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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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2차대 전쟁의 교훈
  • 허성배
  • 승인 2017.10.18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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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논설위원

1차 세계대전은 8월 3일(1914년), 2차 세계대전은 9월 1일(1939년) 터졌으니 전쟁은 열(熱) 받는 시기에 시작하는가 보다.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위협하자 미국은 “전쟁을 구걸하는 행위”로써 북을 이대로 놔둘 수 없으며 핵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고 강력히 응수했다.
지금 미, 북 간의 일촉즉발 긴장이 고조되는 가운데 1·2차 세계대전 전야와 비교하면 매우 흥미롭다. 진짜 전쟁은 적(敵)에 대한 오판, 근거 없는 낙관, 특히 설마가 현실로 둔갑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1914년 6월 28일 오전 11시, 탕! 탕! 두 방의 총소리에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처가 사라예보에서 세르비아 청년 프린치프(18세)에 의해 암살됐다. 오스트리아가 범인을 넘겨받는 외교로 해결했더라면 전쟁은 없었다. 그런데 소수민족이 합스부르크제국을 얕본다는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세르비아를 뭉개야겠는데 러시아가 개입할까 두려워 오스트리아는 독일의 빌헬름 황제에게 도와줄 거냐고 물었다.
독일은 세계 식민지전쟁에서 영불에 열세라는 열등감으로, 이번엔 약체로 안 보이겠다며 백지수표로 돕겠다고 했다. 독일의 부상에 위협감을 느낀 영국-프랑스는 러시아와 급속히 가까워졌고, 러시아 니콜라이 2세는 “이번에도 독일에 밀리면 끝장”이라며 호응했다. 오스트리아는 세르비아가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조건의 최후통첩을 보내고 마침내 8월 3일 포성은 울렸다.
독일은 벨기에를 우회하여 프랑스를 6주 만에 제압하고, 동쪽으로 돌려 러시아를 치는 슐리렌의 전격작전을 교본으로 했다. 독일은 설마 영국이 참전하랴 오판했고 벨기에를 진압할 때 설마 반항하랴 착각했다. 러일전쟁에서 패한 지 얼마 안 되는 러시아가 설마 한판 붙겠느냐, 탄약도 부족한 프랑스, 세르비아도 전쟁을 못 하리라 봤다.
독일만 5번의 설므로 `낙엽이 지기 전에’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4년여를 끌어 1,000만 명 이상 사상자를 냈다. 허약한 리더십과 열등감에 젖은 황제들은 왜 하는지도 모르는 선전포고를 한 후 장군들의 협박으로 휴양지로 유폐되고 1차 대전은 군사 논리 속에 거대한 참화 속으로 빠져들고 말았다.
그에 비하면 2차 대전은 히틀러가 1차 대전 복수전, 그리고 우월하다고 믿는 7,000만 명 이상 아리안족의 거처를 확장하기 위해 적어도 폴란드, 헝가리, 오스트리아, 심지어 러시아 지역 대부분까지 합병하고야 말겠다는 분명한 야욕으로 시작했다.
1차 대전 후 베르사유조약은 독일에 항공기 잠수함 공격무기를 일절 금지하고 배상금 60억 파운드, 그리고 알자스 로렌, 라인란트, 단치히 등의 땅을 프랑스 폴란드 등에 할양케 했다. 로이드조지는 “너무 가혹하여 반드시 훗날 독일의 복수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히틀러는 1933년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머리카락이 길어진 삼손처럼 광적으로 날뛰며 재무장을 재촉했다.
처칠은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3국 협상으로 뭉쳐 독일의 공군 군함건조를 감시 사찰했으면 2차 대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노벨 문학상을 탄 회고록에서 썼다. 독일은 라인란트, 수데텐, 단치히 등을 차례로 합병하면서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간덩이를 시험했다.
그리고 체코를 합병하진 않겠다는 그 유명한 뮌헨협정(1938년 9월 30일)을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를 불러들여 체결했다. 체임벌린은 히틀러가 사인한 뮌헨협정 문서를 들고 레스턴 공항에서 “평화를 가져왔다”고 흔들어댔으나 이듬해 3월 체코합병으로 역사상 가장 웃기고도 슬픈 총리가 되고 말았다. 한 칸 한 칸 살라미 전법으로 밀리면 그 귀결이 어떻게 된다는 걸 증명한 역사적 교훈이었다.
그리고 이번엔 폴란드 차례가 됐으며 6개월도 안 돼 인류 5,000만여 명이 죽은 2차 대전으로 빠져들었다. 역사는 작은 차이와 큰 닮은꼴로 이뤄져 있다. 2차 대전은 오스만튀르크만 빼면 독일 이탈리아 일본이 한편이고 영국 프랑스 러시아가 연합국을 구축해 싸우다 열세에 봉착할 무렵 미국의 등장으로 청소되는 플롯의 반복이었다.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3차 대전의 게임 체인저로 중국을 꼽았다.
김정은의 핵전략은 히틀러처럼 한 칸씩 밀고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오는 11월초 일본, 한국, 중국을 국빈 방문하는 트럼프의 방한을 계기로 한국은 일, 중 못지않음을 각인시켜 ‘코리아 패싱’이라는 말 사라지도록 해야 한다. 지금 열강의 외교 안보 중심 한계점에 매달리고 있는 한국은 양차 대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3가지다.
슬슬 밀리면 나중에 몽땅 잃는다는 것, 최강자 편에 서지 않은 국가는 망했다는 것, 그리고 설마가 꼭 사람을 잡더라는 뼈아픈 세계대전의 교훈을 대한민국은 반드시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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