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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군, 3절~~ 인물(정신)을 찾아서
의암주논개 · 충복 정경손 · 순의리백씨
2017년 11월 19일 (일) 13:04:42 권남주 기자 kngj5170@daum.net

   
논개 사당
장수에는 장수의 정신인 3절이 있다. 의암 주논개와 충복 정경손, 순의리 백씨이다. 논개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 남강에서 왜적장의 허리를 껴안고 강물에 떨어져 투신했다. 정경손은 장수향교를 불태우려 침입한 왜적을 꾸짖어 감동시켜 향교의 원형을 온전히 보존케 했다. 백씨는 민정을 시찰하다가 장척에서 꿩이 갑작스레 날아가는 소리에 놀라 깊은 소에 빠진 현감의 뒤를 따라 순직했다.
 
▲ 꽃보다 거룩한 이름 주논개여! 

논개사당
장수는 논개가 태어난 고장답게 논개사당(의암사), 논개생가, 주촌민속마을 등 논개와 관련된 유적지가 많다. 논개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인물. 선조 26년(1593) 6월 최경회 장수현감을 따라 2차 진주성 싸움에 참전했다가 성이 함락되자 기생으로 가장하여 왜군 승전연에 참석,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와 진주 남강에 투신, 순국한 겨레의 여인이다.

장수가 고향이자 문학평론가이고 시인이신 하제 김경수선생은

 

바람을 걸러낸 눈빛은 진하다

그 눈빛의 심연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향기롭다

당신을 바라보면 행복한 미소보다 눈물이 난다

세상은 온통 욕심을 찾아 헤매지만

그대 안으로 들어온 무수한 삶의 모습들은 가난하다

슬픔의 모든 뿌리가 선이라는 것도 알아야 하기에

보이는 모든 풍경들이 네 안에 들어오면 슬픈 수초가 된다

그래서 촉촉한 물기로 파문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흔들림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아버지의 모습처럼

생각을 움츠린 채 길 위를 시적詩的 시적詩的 걷기도하지

그는 늘 쉬지 않고 심상心象의 깃을 세우며

뿌리가 간결하게 흔들리도록 춤을 추지

춤추는 저 물기어린 투명한 형체의 리듬을 보아라

빠른 물결과 굽이치는 급물살에 생이 휘감기는 곳

그 곳에 몸을 묶고 상구를 돌려 대는 저 유연함에

어린아이가 넋을 잃고 바라본다

그 숨결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인가를

절박한 꽃으로 피워내는 순간이다

 

                          - 심연(深淵) 부제: 논개 전문-

논개의 충절을  이토록 절박하게 마음으로 표현, 시로 노래했다.

 논개사당(의암사), 주차장에서 잔디밭을 지나면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외삼문인 숭앙문(崇仰門)에 들어서면 전면의 산봉우리 자락에 휘광문(輝光門)이 눈에 들어오고 그 안 충의문(忠義門)에 지방기념물 제46호로 지정된 의암사(義巖祠)가 우뚝 서 있다. 처마엔 1955년에 쓴 함태영 부통령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고, 영정각 안에는 고고한 자태의 논개 영정이 있다. 그 아래 휘광문 자락 북쪽에 논개기념관이 자리하고 있으며 기념관 앞 남쪽으로 10m 거리를 두고 ‘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가 서 있다.
 

 

 주촌민속마을

 주촌마을은 장수군과 경상도 서성군 경계에 위치하고 있으며 덕유산, 장안산, 영취산 자락을 끼고 있고 오동호수가 있어 자연 경관이 수려하다.

 주촌마을은 장계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육십령쪽으로 4km쯤 가다 오동, 대곡의 군도를 따라 3.5km쯤 거슬러 올라가면 깊숙한 산골에 48호 정도의 농가가 있는데 이 마을이 만고의 충열이며 한국여성의 귀감이 되는 의암 주논개 탄생지이다.

 


논개생가

 논개는 선조 7년(1575년 9월 3일)에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태롭자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진하여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와 부군(夫君)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의 정신을 기리고자 논개생가 복원사업을 2000년 9월 완료 후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생가지가 있는 지역은 덕유산, 오동제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장안산 군립공원과 지지계곡, 동화댐을 연계한 등산 코스가 열려 있어 논개생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으며, 연중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장수향교

▲ 원형그대로 보존된 유일한 장수향교 - 정경손

 장수향교는 500여 년의 풍상을 겪으면서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향교 안의 건물로는 대성전(大成殿)을 비롯해 명륜당(明倫堂), 사마재, 진덕재, 경성재, 부강문(扶綱門) 등이 있다. 보물로 지정된 12칸짜리 대성전 건물은 구조가 특이해 역사적으로도 그 가치가 높이 인식되고 있다. 낮은 석축기단 위에 맞배지붕을 세운, 정면 3칸과 측면 4칸의 건축물로 좌우 측면 하단에 석벽을 쌓았다. 향교가 원형 그대로 보존될 수 있었던 것에는 향교지기 정경손이라는 사람의 공이 컸다. 임진왜란 때 정경손은 일개 교지기의 신분이면서 향교를 떠나지 않았다. 왜적의 장수가 목을 겨누어 내리치려 했을 때도 조금의 두려움이나 주저함이 없이 “여기는 성전이니 함부로 들어갈 수 없다. 꼭 들어가려거든 나를 죽이고 들어가라”고 소리를 질렀다. 정경손의 호담한 의기에 감복한 왜장은 “이 성역을 침범하지 말라”는 신표를 써주고 물러갔다. 정경손이 이 신표를 향교 정문에 걸어 놓으니 그 뒤에도 왜적들이 향교에는 발을 들이지 않았다. 향교 앞에 이 분을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타루비

▲ 타루비(墮淚碑) - 순의리백씨

마지막 3절의 한 명인 순의리 백씨의 절개를 기리기 위해 천천면 장판리에 타루비(墮淚碑)가 세워져 있다. 장척 마을 옆 산기슭에 서 있는 이 비석은 자기가 모시던 현감이 비명횡사하자 “이는 주인을 잘못 모시어 죽게 한 것”이라며 주인을 따라 순사한 한 관노의 충정을 기리고 있다. 그는 손가락을 깨물어 절벽에다 꿩과 말의 그림을 그리고 바위에다 ‘타루’ 두 글자를 쓰고 현감이 빠졌던 소에 몸을 던졌다. 그림과 타루 글자는 1967년 도로개설 공사를 하면서 없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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