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역사, 의(義)를 실천한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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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역사, 의(義)를 실천한 기록이다
  • 안동환
  • 승인 2018.04.04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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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환 장수부군수

올해는 무술년(戊戌年) 황금 개의 해이다.
역사적 실존인물 중 생년 생월 생일 생시를 뜻하는 사주(四柱)에 모두 술(戌)이 들어가는 이가 있었다.

주 논개의 사주가 4갑술이고 120년의 세월을 격하여 조선조 최장수 임금이었던 영조대왕과 같았다고 한다.
장수출신 주 논개는 임진왜란 시 예전 장수 현감이었고 호남의병장인 부군   최경회 장군을 쫓아 진주성까지 찾아간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외부의 도움이 없어 결국 성이 함락되고 최경회 장군은 자결하며 진주 남강에 투신하고 만다.
그 시대 조선의 여인에게는 지아비를 따라 자결하는 게 최고의 미덕이었다.
주 논개는 남달랐다.
지아비가 호남에서 영남까지 가서 순국하면서도 그토록 추구하려는 것이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했다.
그것은 조선의 의로움을 지켜내려 한 것임을, 부부애 그 너머의 의(義)를 보고만 것이다.
결국 주 논개는 머나먼 타향 진주의 남강 푸른 물에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껴안고 몸을 던지고 만다.
이를 시인 변영로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아! 강낭 꽃 보다 더 푸른 그 물결위에
양귀비 꽃 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논개의 의로운 죽음이 있은 지 400여년이 지났으나 세월이 흐를수록 그 의미는 우리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장수에서는 사당을 건립하여 논개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사당 앞에는 논개시를 돌에 새겼다.
장수현청이 자리했던 지금의 장수군청 앞에는 의암 주 논개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소나무(의암송)이 천연기념물 397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장수에는 다섯까지 빨간색이 있다.
논개의 붉은 마음인 단심(丹心),
장수사과, 한우, 오미자, 토마토가 그것이다.
논개의 얼을 잇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빨간 먹거리를 발전시켜온 것은 아닐까? 실제로는 장수사람들이 사과를 재배하든 한우를 키우든 성심을 다해야 하는 것이 말 못하는 미물에게도 의(義)를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결과일 것이다.
지금도 장수에서는 점쟁이도 짐작 할 수 없다는 거시기란 말을 종종 사용 한다.
하기사 점쟁이야 길흉화복도 마칠둥 말둥 하는 수준에 장수 사람에게 각인 된 거시기인 그 의(義)까지 어찌 알 것인가?
장수는 귀신도 모를 의(義)의 고장이기에
임진왜란 중 장수향교를 원형대로 지켜냈고, 일제강점기 때 3.1운동 민족대표 백용성 조사와 우리말을 지켜 낸 정인승 박사, 그리고 수 많은 의병장을 배출해 왔다.
중국 당나라 때 어느 황제가 장안성을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옆에   재상에게 대체 하루에 몇 명이나 성 밖을 오고 가는지를 물었다고 한다.
재상은 “황제가 알아야 할 사람은 단 두 명입니다. 황제에게 이(利)가되는 사람과 해(害)가 되는 사람입니다” 라고 아뢰었다고 한다.
만약 누군가 장수와 연고가 없는 당신에게 장수에는 얼마나 많은 성씨가 살고 있느냐고 물어 왔을 때 딱 하나의 성(姓)씨만이 살고 있고 그 성(姓)씨는 의(義)가 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장수의 본질을 제대로 파악 했다 할 것이다.
이러한 분이라면 장수 논개사당에 들러 논개영정 앞에 참배하고 소원을 빈다면 일생에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전설을 경험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장수는 다섯의 빨간 의(義)에 장수 가야를 대표하는 가야 제철의 빨강과 가야 봉수 횃불의 빨강을 더해 7개의 의(義)를 실현해 나아가려 한다.
의로운 자여, 의롭게 살려고 하는 자여 !
자연인으로 회귀를 위해 도시탈출을 꿈꾸는 자여 !
당신의 남은 여생 뿌리내릴 곳은 어디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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