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뜨거워질 지구, 탈원전 아닌 이산화 석탄이 주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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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뜨거워질 지구, 탈원전 아닌 이산화 석탄이 주범
  • 허성배
  • 승인 2018.08.2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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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주필
기온 상승의 자기 강화(self-reinforcing) 피드백으로 지구의 자체 복원력이 무너질 가능성이 있으며 이렇게 되면 인류가 살 수 있는 곳은 극지를 제외하면 거의 없게 된다는 사실이다.
일 스테펀 호주국립대학 교수는 이를 `대가 속(Great Acceleration)’ 현상으로 설명한다. 에너지 사용량이 1950년부터 가파른 상승세로 접어들더니 21세기 현재 폭증세로 치닫고 있는데 이산화탄소 증가와 기온 상승 역시 쌍 궤를 이루며 임계점에 근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뜨거운 지구, 가속페달을 밟은 듯 훨씬 더 뜨거워질 것 같다. 전 세계 16명의 과학자가 `지구 시스템의 궤적`을 주제로 최근 미국과학아카데미(NAS)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지구 기온은 섭씨 1~2도가량 오르는 `온난화’의 차원을 넘어 4~5도까지 올라가는 `과열화’ 문턱(threshold)에 진입한 것으로 분석됐다. 지구가 온실(greenhouse) 정도가 아니라 열 실(熱室), 즉 `뜨거운 하우스(hot house)’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이 연구를 주도한 요한 록스트룀 스톡홀름복원력센터장은 더 무서운 얘기를 한다.
다보스포럼이 8년 연속 세계 최대 글로벌 위험성으로 기후변화를 손꼽으며 국가의 최우선 안보 의제로 이를 다루고 있는 맥락이기도 하다. 요컨대 이번 여름의 이 끈질긴 폭염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더 뜨겁고 더 모진 기후변화를 예고하는 지구 생태계의 신호다. 이런 상태가 방치된다면 우리 인류는 달아오르는 냄비 속 개구리와 다를 바 없게 되리란 경고다.
이런 면에서 전기료 누진세 한시적 완화를 골자로 한 현 정부의 이번 폭염 대책은 너무도 대증적이었고 단편적이었다. 폭염의 원인은 무엇이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본질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아시다시피 현 지구 기온 상승의 주범은 인간이 남용하는 화석연료로, 그중에서도 석탄이 문제다. 발전원별로 이산화탄소 배출계수를 따져보면 1kWh당 석탄은 991g으로 석유(782g), LNG(549g), 원자력(10g)을 압도한다. 따라서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석탄을 최우선으로 줄이고 원전의 역할을 일정 부분 중시하는 가운데 탄소 제로인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확대하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적 권고다. 그런데 현 우리 정부의 에너지 정책은 그 반대로 가고 있다.
애초에는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추진한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탈원전을 최우선시하는 바람에 석탄발전이 거꾸로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2017년 석탄 화력발전량은 전년 대비 11.4% 증가해 역대 최고 증가율을 보였다. 한국의 지난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틀어 네 번째로 많은 것으로 집계되기도 했다. 40%를 밑돌던 석탄발전 비중은 올해 들어 43%를 넘어서는 실정이다. 기본적으로 기저 발전인 원전이 빠져나간 자리를 석탄이 상당 부분 메울 수밖에 없는 구조 때문이다. 특히 탈원전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 인상은 없다는 방침이 석탄 의존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확정된 8차 전력수급계획에서도 석탄 화력발전 설비 용량을 2017년 36.9GW에서 2022년 42GW로 확대하기로 했다. 더구나 이 계획에는 가속하는 기후변화 시나리오가 업데이트되지 않았다. 2011년에 발표된 자료를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은 고사하고 이를 여과 없이 참조했을 뿐이다. 8차 전력수급계획이 예상했던 올 최대전력수요는 8750만㎾였지만 이번 폭염으로 실제 최대전력수요는 9248만㎾에 달해 500만㎾의 차이가 난 점이 이를 방증한다. 결국 이를 벌충하기 위해 석탄발전을 추가 가동할 수밖에 없었다.
세계 최대 석탄 소비국인 중국이 탈석탄을 에너지 정책의 기본 기조로 삼고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가져가는 에너지 전환의 방향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얼마 전 서울에서 개최된 카본 시장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로버트 스태빈스 하버드대 교수는 “탈원전과 탈석탄을 동시에 달성한 국가는 현실 세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면서 “기후변화 시대에 선택해야 할 에너지 정책의 기본 방향은 저탄소이며 그런 면에서 탈석탄이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철도와 더불어 동아시아 에너지 공동체를 제안했다. 2차대전 후 유럽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석탄 철강공동체’를 연상케 하는 구상인데 갈수록 뜨거워지는 지구 시대, 동아시아에 들어서야 할 에너지 공동체는 석탄공동체가 아니라 저탄소공동체라는 점이 강조됐어야 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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