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제도 기업 때리면 경제 일자리 더욱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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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제도 기업 때리면 경제 일자리 더욱 어려워진다
  • 허성배
  • 승인 2018.10.1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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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국정감사 새삼스러울지 모르지만 한국은 국정감사 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국감은 정부 정책에 대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가장 중요한 견제와 감시 기능 중 하나다. 헌법에 의하면 국회는 연간 회기 100일간, 1회의 정기회와 여러 차례의 임시회의를 소집해서 정부 예산안과 법률 및 기타 국정을 심이 의결하게 되어 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국정감사가 지난 10일부터 이달 29일까지 20일간의 열전에 들어갔다. 이번 국감은 14개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734개 피감기관을 대상으로 이뤄진다. 지난해 국감이 문재인 정부 출범 5개월째에 진행돼 박근혜 정부 정책을 주로 도마에 올렸다면 이번 국감은 문재인 정부에 대한 사실상 첫 국감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다르다. 국감은 정부 정책에 대해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가장 중요한 견제와 감시 기능 중 하나다.
국감이 소모적인 정치 공방에 매몰되지 않고, 민생과 경제에 집중하는 정책국감이 돼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은 엄혹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9일 올해 한국의 성장률을 3.0%에서 2.8%로 낮추고, 내년에는 2.6%로 더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저성장 먹구름 속에서 일자리 문제도 암울하다. 신규 취업자는 지난 8월 3000명 증가에 그쳤고, 9월에는 마이너스로 돌아서고 있다. 소상공인과 영세자영업자들은 경기 불황에 소득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으로 생존마저 위태로울 지경이다.
대외적으로는 미·중 무역전쟁 격화에 따른 비상한 대응이 필요하다. 정부가 뒤늦게 소득주도성장을 보완하기 위해 혁신성장을 내세우고 있지만. 규제장벽과 반기업 정서에 막혀 효과가 미미하다.
이런 마당에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얽매여 국감을 정치공방의 장으로 변질시킨다면 고단하고 절박한 삶에 지친 국민의 공분을 살 수밖에 없다. 지금은 여야가 정국 주도권을 쥐려고 `적폐 청산’, `정부 무능’을 내세워 헐뜯기 경쟁을 할 때가 아니다.
경제성장 대책을 비롯해 부동산, 국민연금, 뇌관과도 같은 1500조가 넘는 가계부채·탈원전 등 중요한 민생 현안을 제대로 검증하고 해법을 내놓는 생산적 국감이 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피감기관인 정부도 성실하게 국감을 준비하고 여야 의원들의 질책과 제안에 대해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를 갖기 바란다.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국감을 겨냥한 일부 시민단체와 노조의 무분별한 주장이다. 민주노총이 벌써 `재벌개혁 국감’을 외치며 규탄 집회를 시작했는데 정치권이 맞장구치면서 증인으로 나온 기업 CEO들에게 호통치며 마치 중죄 인 시 하는 구태를 되풀이 해선 안 된다.
선진국과는 달리 열심히 달러를 벌어 들려 국부를 증가하고 있는 기업주들을 대거 출석 시켜 마구잡이로 윽박지르며 군기 잡는 식의 한국국감의 자질부터 개선해야 한다. 국정감사는 국회가 국가기관과 공공기관이 정책과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를 감시·통제하는 제도다. 그런데 국정감사가 시작되면 정부나 공공기관보다 민간 기업인들이 더욱 긴장하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정감사를 빌미로 재계 총수나 기업인들을 마구잡이로 불러 욕보이는 모습이 매년 되풀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17대 국회에서는 연평균 52명 정도였던 기업인 증인이 18대 때는 77명, 19대 때는 124명으로 늘어나더니 20대 국회 첫 국감에서는 기업인을 무려 150명이나 불렀다. 국감의 증인 출석제도는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에 대해 감사를 할 때 제출된 서류나 피감기관의 진술만으로는 명확한 사실을 규명하기 곤란할 때 해당 사항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증인으로 부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회가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필요한 증언이나 진술을 듣기보다는 훈계하듯이 큰소리로 망신 주는 몰아세우기식 질타만 하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왔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분초를 다투는 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을 불러 온종일 대기시켜놓고 한마디도 묻지도 않고 그냥 돌려보내는 이런 국감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은 개탄스럽기만 하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직원도 없이 홀로 영업하는 `1인 자영업자’가 약 400만 명에 이르러 미국·멕시코·터키에 이어 세계 4번째로 많다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가 공개됐다. 인구 대비 `나 홀로 사장’ 숫자를 따지면 세계 최고 수준인 데다 저임금 정책과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청년 실업률은 눈덩이처럼 늘어나고 있는 절박한 실정이며 자영업·소상공인의 비정상적 비대화, 왜곡된 한국 노동시장의 현주소다. 1인 자영업자는 지난 3월 이후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고 있는데 우리 경제의 취약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다.
우리나라 취업자 중 임금근로자 비중은 74%로 미국(93.5%) 독일(89.2%) 일본(88.5%) 등에 비해 크게 낮고 그 대신 자영업자 비중은 다른 나라보다 크게 높은 편이다. 고용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생계를 위해 자영업에 뛰어들기 때문이지만 포화상태인 자영업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자영업자 5명 중 1명은 연 소득이 1,000만 원에 못 미치고 자영업 10곳 중 6곳은 문을 연 지 2년 이내에 폐업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결국 저소득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
난데없이 심리학 이론을 끄집어낸 건 정부의 국정 추진 방식의 두 이론이 설명하는 현상을 빼닮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업 관련 경제정책의 경우 특히 그렇다. 1년 내내 퍼부어대는 ‘반 기업·친노동’ 정책 폭탄으로 대기업은 물론 중견·중소기업, 소상공인까지 아우성친 데도 들은 척, 본 척도 않는다. 경제지표도 보고 싶은 것만 보며 정권이 내세운 정책을 정당화하려 한다. 지지율 하락이 두려워 재벌 대기업을 ‘공공의 적’으로 낙인찍은 뒤 ‘반재벌 연대’를 결집해 자기편으로 만드는 등의 구태를 헌법이 정한 여·야 국회의원의 권한을 이번 국정감사에서 기업만 때릴 것이 아니라 공정하고 과감하게 특히 각급 공직자는 물론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깊이 뿌리 밖인 비리와 부정부패를 혁파 정신으로 파헤쳐 만천하에 공개해 줄 것을 국민은 바라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역대 정권은 ‘재벌·대기업 때리기’를 필승 병기로 애용했다. 양극화의 최대 희생자인 서민을 꾀는데 반부자 정서만한 특효약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재벌 책임도 크다. 정경유착, 황제경영, 불공정 갑질은 반기업 정서를 키우는 숙주다. 그렇더라도 현 정부의 재벌 때리기는 도가 지나쳐 ‘재벌 죽이기’ 수준이다.
요즘 기업 CEO나 임원을 만나면 몇몇 공통점이 발견된다. 우선, 넋이 나가 있다. 말수도 줄었다. 이대로 가도 나라 괜찮나요? 하며 장탄식을 한다. 실적이 좋아도 자랑하려 들지 않는다. 언론 노출도 피한다. 말을 더할라치면 세상이 어지러울 땐 조용히 있는 게 상수다. 괜히 나댔다간 공정위·국세청 표적이 된다고 손사래 친다. 그리고 일어나면서 한마디, 혁신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개혁과 노동 개혁 없이는 기업 못 해 먹겠다.
당연히 기업 자체도 피멍이 들어 있다. ‘뭘 해야 할지’보다 ‘어떻게 막아야 할지’를 궁리하느라 급급하다. 한 분석에 따르면 ‘소득 주도성 장발 위험성’으로 인한 추가 비용이 최대 78조 원이나 된다. 내년 예산의 18%에 달하는 액수다.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통상임금 판결 등이 청구항목이다. 그러잖아도 실적이 급격히 악화하는 터라 충격은 상상 이상이다. 그런데 며칠 전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를 늘리고 실업자 수를 줄이는 방법은 역시 정부가 아닌 기업이라고 실토했다.
최근 5년간 기업의 1인당 매출액 연평균 증가율은 -1.8%다. 1인당 영업익도 연평균 3.0%씩 줄었다. ‘고비용의 역습’은 이미 시작됐다. 지난 8월 청년실업률은 18년 만에 최고다. 실업률에 물가상승률을 더한 ‘경제고통지 수’도 6년 만에 가장 높다. 새 정권의 지지층이면서 정책 수혜자로 꼽힐 서민·청년이 더 힘들어지고 있으니 아이러니다.
최근 기업인 사이에 “노무현 시절이 그립다”는 말이 유행한다. 노 정부 때도 재벌개혁 의지는 분명했다. 하지만 집권 초 ‘카드대란’ 전조에 지정학 위험성까지 겹치자 규제 완화를 통해 정책균형을 잡았다. ‘법인세 인하’도 전격 선언했다. 반면 문 정부는 대내외 여건이 훨씬 나빠졌는데도 강경책 일색이다.
세계 감세 전쟁 속에 한·미 법인세 역전이 코앞인데도 법인세율을 올리려 한다. 친 기업으로 경제를 살려내는 일본과도 정반대 길을 간다. 중국 공산당마저 건국 이후 처음으로 기업가정신을 공식 장려하고 나선 판국이다.
규제개혁과 노동 개혁 없는 혁신성장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여·야가 규제개혁의 상징인 서비스산업발전법과 규제프리존법 만이라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하는 이유다. 지금 야당이 여당 때 찬성했고, 여당이 야당 때 반대한 법안이니 상대방 처지에서 잘 헤아려 문 정부 ‘제1·2호 협치법안’으로 삼으면 어떨까.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경제원리와 진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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