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쌍둥이 극적 출산시켜 대학등록금부터 간호사 채용까지 지원한 길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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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쌍둥이 극적 출산시켜 대학등록금부터 간호사 채용까지 지원한 길병원
  • 허성배
  • 승인 2018.10.3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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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얼마 전 알게 된 화제의 병원은 60년 역사를 자랑하는 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대길병원(회장 이길여(85) 서울대 의과대학 산부 인의학과 전공 후 의학박사 학위 취득)으로 1958년 개원 당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가천길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들은 “내 친부모 형제처럼 모시자”라는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를 내걸고 전 직원이 한마음으로 봉사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부터 28년 전 강원도 삼척에 사는 가난한 광부의 집에서 네 쌍둥이가 인천 가천길병원 이길여 회장(의학박사)의 애정이 어린 도움으로 어렵게 출산하여 화제가 되었던 이 네 자매 모두가 간호대학을 졸업한 후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 한날한시에 자신들이 태어난 인천 가천대 길병원의 간호사로 취업하여 자기들을 보살펴주신 이 회장님과 따뜻한 사회에 보답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봉사 노력하고 있다.
인천 남동구 구월동 가천대 길병원 본관 12층 대강당에서 최근 간호사 국가고시에 합격하여 이 병원에서 첫 근무하게 된 42명을 대표해 단상에 오른 황 슬·설·솔·밀 자매 가운데 맏이 슬이가 가천길재단 이사장이시기도 한 이길여(의학박사) 회장 앞에서 신고식을 겸해 감사 편지를 읽었다. 황설·밀·솔·슬 자매는 이곳 길병원에서 첫울음을 울었었다.
그리고 26년 뒤 태어난 병원에서 간호사로 나란히 사회 첫걸음을 걷게 됐다. 네 쌍둥이와 길병원의 인연은 28년 전으로 거슬러간다. 강원도 삼척에서 광부로 일하던 아버지 황영천(60) 씨와 동갑 부인 이 봉심씨는 결혼 5년째인 1988년 말, 둘째가 임신한 것 같아 병원을 찾았다. 결과는 놀랍게도 70만분의 1 확률이라는 네쌍둥이. 당시 집의 형편은 월세 2만 원 방 한 칸에서 살던 부부에겐 날벼락 같은 소식. 딴 병원에서는 “하나만 낳고 나머지는 포기하라”고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부부는 모두 낳기로 하고 이 씨의 친정이 있는 인천의 한 병원을 찾았다. 그런데 출산 예정일 전에 양수가 터졌다. 당황한 병원에서는 인큐베이터가 있는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이 씨는 가천대 길병원으로 몸을 옮겼다. 출산 2시간여 전인 오전 7시쯤 병원에 도착했지만. 이곳 의료진도 당황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인천에서는 처음인 네 쌍둥이, 게다가 아무 기록도 없이 산모만 급하게 실려 왔기 때문이었다.
“당시 이 회장도 사실 걱정스러웠다. 길병원에서도 네 쌍둥이는 처음 이었으니까요. 산모에 대한 아무 기록도 없는데다, 아기는 당장 나오게 생겼고….” 그때 이 회장은 고심 끝에 제왕절개 출산을 결정하였다. 오전 9시 14분 첫째 슬이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20여 분 만에 나머지 셋이 뒤를 이었다. 한동안 산모의 출혈이 멈추지 않아 의료진 모두가 긴장했지만 긴박한 재수술에 성공하여 무사할 수 있었다. 집도를 한 이 회장은 출산 다음 날 입원실로 찾아와 산모를 위로하고 신생아실 인큐베이터에 누워있는 네 쌍둥이를 둘러보았다. “아이들이 조르르 누워있는 걸 보니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인천에서는 처음 나온 네 쌍둥이였는데 어쩌면 저렇게들 올망졸망하게 생겼나 싶고…그런데 직원들 얘기를 들어보니 산모의 집안 형편이 몹시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산모와 아이들이 퇴원할 때 이 회장은 수술비와 인큐베이터 사용료를 모두 받지 않았다. 대신 강보에 싸인 채 나란히 누워있는 네 아이와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난 후 눈물을 흘리며 고맙다고 인사하는 산모에게 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커서 대학교에 가면 장학금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이길여 회장은 “히포크라테스”(Hippocrates) 규약과 정신에 따라 그동안 의지할 곳 없는 많은 극빈층에게도 남이 알게 모르게 무료봉사와 진료를 베풀어 준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많은 칭송과 사회의 귀감(龜鑑)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부인학과 분야에서는 권위자로 인정받는 의사(p h. d)로 넓이 알려졌다.
그런데 그 뒤 이 회장은 바쁜 생활 속에 이들을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2006년 사진첩을 정리하던 중 네쌍둥이가 퇴원 할 때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하고는 그때 약속이 떠올라 이들 가족을 수소문했다. 황 씨 가족은 경기도 용인에 살고 있었다. 황 씨는 광부를 그만둔 뒤 장사와 노동일 등을 하고 있었고, 집안은 생활보장 대상자로 지정될 만큼 어려웠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쌍둥이 자매들은 중·고등학교 시절 반장을 도맡아 하고 학교 성적도 우수할 뿐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배워 4명 모두 각종 태권도대회에서 상을 받을 정도로 건강하고 우수한 실력을 갖췄다.
어린 시절의 꿈은 다양했지만 4명 모두 ‘백의의 천사’라는 같은 꿈을 이루기 위해 간호학과 진학을 결심했다. ‘슬’과 ‘밀’은 수원여대 간호학과에, ‘설’과 ‘솔’은 강릉영동대 간호학과에 합격, 4명 모두 간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넷 모두 간호학과에 간 것은 가천길병원 퇴원 때 이 회장이 농담처럼 “간호사가 돼 고마움을 사회에 갚게 하시라”고 했던 말을 부부가 가슴에 새겨두었다가 가족회의를 거쳐 결정한 일이었다고 한다.
합격은 했지만 등록금이 없어 2007년 이들의 생일을 하루 앞둔 1월 10일 이 회장은 입학금과 등록금으로 2,300만 원을 전달해 당시 18년 전 약속을 지켰다. 그 자리에서 학비를 계속 대주기로 한 이 회장은 “열심히 공부해 좋은 성적으로 졸업하면 모두 길병원 간호사로 뽑아주겠다”고 두 번째 약속했다. 네 자매는 3년 전 1월에 치러진(2016년 1월) 제50회 간호사 국가고시에 모두 합격했다는 통보를 받았다. 어머니 이 씨는 “4명 중 하나라도 떨어질까 봐 마음을 졸였는데 간호사 국가고시에 모두 합격해 정말 다행이다”라고 말했다. 네 쌍둥이가 간호사 국가고시에 전원 합격하자 이 회장은 약속대로 이들을 모두 이 역사가 깊은 가천대 길병원 간호사로 채용됐다
이 회장은 “전 세계적으로 희귀한 네 쌍둥이를 건강하게 키워낸 엄마가 훌륭하다”며 길병원에서 태어나 간호사로 되돌아온 데 쌍둥이들이 나이팅게일(nightingale) 선서의 가르침대로 훌륭한 간호사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네 쌍둥이가 우리 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면 모르는 사람들은 한 사람이 홍길동처럼 여기저기 병동을 다니면서 환자를 돌보는 줄 알 거야. 이 회장의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네 쌍둥이의 맏이인 황 슬 간호사는 “가천재단 이사장이시며 가천대길병원 이길여 회장님께서 저희와의 약속을 지켰듯이 네 자매들도 이 회장에게 약속드렸던 대로 가난하고 어렵운 아픈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열심히 섬기는 가슴 따뜻한 간호사가 되겠다”라고 다짐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봉사하고 있다. 의사란 의술을 펼처 환자 몸의 상처뿐만 아니라 마음의 상쳐까지 어루만져 줄 수 있는 봉사정신 그것이 바로 인술(仁術)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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