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천(玉川) 사마대제(司馬大祭) 성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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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玉川) 사마대제(司馬大祭) 성료
  • 신인식 기자
  • 승인 2018.12.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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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 사마대제가 지난 14일 순창읍 교성리 사마제(司馬齊)에서 초헌관에 황숙주 순창군수, 아헌관에 정성균 순창군의회 의장, 종헌관에 옥천사마영사회 윤형호 회장 및 순창 유림과 고령신씨 귀래정공파 신태호 회장 및 35성씨 종친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거행됐다. 고려 말에서 조선조 1894(고종31)년까지 순창 지방에 살면서 학문을 연마하고 후진을 교육한 곳이 옥천사마제(玉川司馬齊)로 이곳에서 소과에 입격한 사마(생원 진사)유현이 총 164명이 배출되었으며, 성씨 문중별로는 남원 양(楊)씨, 고령 신(申)씨, 순창 설(薛)씨 등 35성씨와 본관 미상 3성씨의 사마유현(司馬儒賢)들로 이들 중에 문과에 급제한 분이 28賢이나 된다. 순창에 사마제를 세운지는 조선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정유재란 중에 왜군들에 의해 소실되었다. 1621년(광해13년)에 진사 양시익(楊時益)과 옹달행(邕達行)등이 주선하여 희유재(希有齎) 북쪽에 다시 지었다. 이어 1636년(仁祖丙子)에는 진사 양여매(楊汝梅 1601~1655년)가 안(案)의 미목(眉目)을 맑게 하고 옥천사마계를 창설하였는데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1827년(純宗丁亥)에는 사마가문의 후학 양석열, 홍재형 두 분께서 회유제(會儒齊)북쪽에다 사마제를 이건(移建)하여 향풍을 진작하였는데 불행하게도 1909년(純宗乙亥) 일본헌병대의 만행으로 사마제를 빼앗기는 비운을 맞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22년 왜인폭정(倭人暴政)하에서 권현식, 홍헌표 두 진사가 사마가문제유와 더불어 임술안(壬戌案)을 개간(開刊)하였고, 그 후 몇 번의 중간과 재 중간을 거쳐 1993년 옥천사마영사회(玉川司馬永嗣會)라 개칭하고 사마회 복원을 시도하여 후손과 유림들의 각고의 노력 끝에 1998년 사마가문 100년의 숙원이던 사마제(司馬薺)를 순창군 순창읍 교성1길 14-8에 중건하였다. 옥천사마영사회(玉川司馬永嗣會)에 총164현으로 그 들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사마유현들의 후손들이 그 뜻을 기리기 위해 결성된 단체다.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사마제가 전통적으로 규모 있게 유지 되고 있는 곳은 충북 옥천 사마소와 괴산군 청안 사마소, 나주사마소 등 다수가 있으나 도내에는 순창 옥천사마제가 유일하며, 순창군에서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회원은 600여명이 자랑스러운 전통을 오늘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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