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인생
상태바
실패한 인생
  • 장세진
  • 승인 2019.07.09 17: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교단을 떠난지 어느새 3년이 지났다. 돌이켜보면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게 눈썹 휘날리게 산 날들이다. 교원문학회 창립과 함께 동인지 ‘교원문학’, 기관지 ‘교원문학신문’을 내는 일도 그중 하나다. 남들 다하는 문학상 제정ㆍ수여말고 지자체나 도교육청의 예산 지원없이 고교생 문학작품을 현상공모, 시상하기 등 언제 퇴직 3년이 지나갔지 할 정도다.
 “우리 나이면 옛 일 생각하며 살 때 아닌가?”
그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내게 고교때부터 친구 K가 전화에서 말했다. 시골에서 고교 졸업후 줄곧 농사 짓는 친구 B를 만나러 가자며 한 말이다. 내심 지난 4월 딸아이 결혼식때 그냥 지나쳐버린 B라 썩 내키지 않는 제안이었다. 전화에서의 K 말처럼 옛 일이나 생각하며 살 만큼 한가한 몸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K의 거듭되는 제안에 그만 약속을 하고 말았다. 1학년때 생애 최초의 모악산 등반 등 고교시절 추억은 그만두고, 회고해보니 나의 두 번째 출판기념회에 와준 B였다. 이후 나도 그의 모친상 조문을 했지만, 어느때부터인지 연락이 끊기다시피해 B의 딸 결혼식을 모르고 그냥 지나쳤다. 시골로 B를 찾아가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들은 이야기다.
친구나 인간관계를 생각해보면 다소 쓸쓸하게도 실패한 65년 인생이지 싶다. 술을 끊으면서부터였는지 확실하게 기억은 안나지만 친구가 없어서다. 물론 친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예컨대 어느 친구의 경우 사업에 실패한 후 도피성 해외 출국을 했고, 만나본지 10년도 더 되었다. 그가 해외에서 돌아왔다며 전화를 해왔을 때 나는 야멸차게 말했다.
“친구 없이도 잘 살았는데, 이제와서 뭐하러 만나냐?”
6수 끝에 들어간 대학에서 교유한 예비역 친구는 졸업후 만나보긴커녕 전화번호조차 알지 못한다. 대학 시절 친구같이 지낸 후배 역시 한동안 잘 만나다가 어느 날 속세를 떠나 스님이 되어버렸다. 각박한 사회에 내던져지면서 서로 먹고 살기 바빠 옛 친구들을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꼭 그런 것만은 아닌 이별이라 할까.
아무튼 나는 모든 걸 버리고 살기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인지 자세한 기억은 없지만, 주당(酒黨)이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나 할 정도로 술을 끊어버렸다. 술을 마시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동창회 모임이나 직원 회식을 일삼아 나가지 않게 되었다. 그야말로 소설과 수필을 읽고,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쓰기에만 올인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거의 모든 걸 버리고 살았기에 친구가 없는 건 자업자득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교단에서 성심을 다하며 지낸 경우도 예외가 아님은 일견 의아한 일이다. 큰딸 결혼식을 치르면서 그런 생각이 은근히 생기더니 이렇듯 쉽게 떠나지 않고 있다. 특히 부모상, 자녀 결혼식 등을 빠짐없이 직접 찾아가 조문하고 축하한 지인들이 계좌이체로 축하만 해온 경우가 그렇다.
할 일이 없고 심심해서 또는 정치인이나 사업가처럼 낯내기 좋아하는 체질이라 직접 찾아가 조문하고 축하한 것이 아니다. 그들의 애경사를 열 일 제쳐두고 우선순위에 두었기 때문 참석까지 한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내 딸 결혼식이 그들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기에 계좌이체로 땜방한 셈이라 할까. 그것은 나의 그들에 대한 지극정성이 깡그리 무시된 결과이기도 하다.
물론 아프다며 미리 연락해 양해를 구한 경우는 다르다. 퇴직후 토요일에도 근무하는 일을 하는 경우 역시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대부분은 석연치 않은 이유이거나 아예 가타부타 설명조차 없다. 축의금을 보내왔으니 축하가 맞지만, 서운하달까 허전하다고 할까 뭔가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생기더니 이내 가시지 않는다.
사실 나는 무엇이든 잘 먹는 체질이 못된다. 남들이 즐겨하는 집밖 식사가 일상화되지 못한 이유다. 무엇이든 잘 먹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 죽을 지경이다. 가족외식조차 큰맘 먹어야 비로소 하게되는 나로선 그들의 애경사 참석이 자연스럽게 각별한 의미일 수밖에 없는데…. 아마 그들은 그러지 않은 모양이다.
내가 이러려고 그렇듯 풀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그들의 집안 일에 지극정성을 다한 것인가. 내가 이런 대접을 받으려고 그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그들의 애경사를 함께 한 것인지 탄식이 절로 솟구쳐 오른다. 혹 인생이, 세상이 다 그런건데 유난스럽게 호들갑을 떨어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럴망정 실패한 인생이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