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행정의 최고 배분가치는‘양심이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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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행정의 최고 배분가치는‘양심이 으뜸’
  • 엄범희 기자
  • 승인 2009.06.12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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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기 전주교육청 관리국장

장성기 관리국장은 “교육행정은 설정된 교육 활동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행정은 설정된 교육 활동 목표를 달성하는데 필요한 인적?물적 자원을 합리적이고 민주적으로 배분하는 과정입니다. 정직과 겸손으로 만들어지는 양심을 최고의 배분 가치로 삼고 생활해 왔습니다.”

70년대 산업화, 80년대 민주화를 끝으로 시대적 양심은 마감됐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21세기는 개인의 자유와 창의력이 곧 양심이고 그 양심이 행정을 지배할 것으로 생각해 교육행정 철학의 으뜸으로 삼고 있는 장성기 전주교육청 관리국장(61).


그는 1967넌 10월 총무처 재경직에 합격, 정읍서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으면서 40년 넘게 교육계와 인연을 맺고 있다. 그해 11월 봉급날 일할 계산한 10월 봉급 1,352원과 11월 봉급 6,990원을 합한 8,342원의 월정 봉투를 부모님께 드린 것을 그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가세가 기울었던 때였기 때문에 첫 월급봉투를 받은 부모님 입장에서는 무척 대견스러워했다. 1977년 3월 군입대 휴직을 마치고 부안교육청에 복직해 이듬해 자체 승진으로 29세의 나이에 경리계장을 맡았다.


길흉화복은 돌고 도는지 이때 얻은 병마는 89년까지 12년간을 괴롭혀왔고, 결국 세끼 발가락, 오른쪽 발에 의족을 하는 장애인으로 살게 됐다. 1982년 2월 25일 아내 문현숙씨를 만나 결혼했다.하지만 계속되는 지병은 왼손, 오른손 둘째, 넷째 손가락에 의수를 하는 아픔을 겪고서야 병마는 회복기미를 보였다


건강이 회복되자 그는 1991년 사무관 시험에 합격해 전라북도교육청 초등교육과 학사계장으로 발령받은 뒤 서기관으로 승진해 전북도교육청의 중책인 총무과장을 맡았다. 그는 행동 할 때에는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를 먼저 생각했고, 행동과 평가간에는 개인의 가치가 대립되기 때문에 작은 가치와 큰 가치를 구별할 줄 아는 정직함과 겸손함을 갖추는데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그는 공직생활을 하는 동안 기득권도, 후광도 없었다. 모든 것은 세월을 인내하고 혹독한 대가(代價)를 통해 성취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강한 자만이 오래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오래 살아 있는 자가 강한 자라는 점을 일깨우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40여년동안 희노애락(喜怒哀樂)을 교육과 함께 했던 그가 오는 7월 공로연수에 들어간다. 전북 교육행정의 대부로, 선후배 사이에서는 평화주의자로 널리 알려진 장성기 전주교육청 관리국장을 만나 교육과 함께해온 그의 삶을 들여다본다.

-평생 공직자로 외길을 걸어오시면서 힘든 일도 많으셨을 텐데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갑자기 찾아온 병마였습니다.1977년 11월 20일경 첫눈이 많이 내리던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왼쪽 발 종아리 쪽에 쥐가 나는 듯한 저림이 오더니 그게 쉬 낫지 않고 살이 갈라지면서 극심한 통증이 수반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후로 왼쪽 발, 왼쪽 둘째 넷째 손가락, 오른쪽 둘째 넷째 손가락으로 이동하면서 사경을 헤 멜 정도의 통증을 견뎌야 했습니다. 결국은 오른쪽 발은 의지를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극심한 통증이 가져다준 열매는 인생에 있어 ‘인내’에 대한 의미를 일깨워 준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살기위한 인내에서 인내하기 위한 삶으로 인고의 세월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공직생활 자체는 큰 어려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큰 인내 뒤에 오는 작은 갈등은 먼저 상대의 입장에서 판단하고 설득함으로써 스스로 어려움을 자초하지 않음으로써 해결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아픈 기간에 터득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반면, 보람된 일도 많이 있으셨을 텐데요.
“개인적으로 가장 큰 보람은 어려운 신체적 여건(장애 3급)을 극복하고 세상인으로서 당당함을 잃지 않았던 점입니다. 이와함께 교육행정 공무원으로서 긍지와 자존에 상처를 입지 않고 현직을 정리 할 수 있었다는 것이 아닌가 생각 됩니다.”

-교육계에선 평화주의자로 많이 알려졌습니다. 직원상하간 융화를 잘 해 덕장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사물을 바라 볼 때 있는 그대로 최상의 존재 가치를 부여하면 바라보는 상대가 먼저 그것을 진정성이라고 합니다. 제가 직접 경험한 양파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습니다. 시장에 가서 무작위로 양파 2개를 사서 1m 간격으로 유리컵을 놓은 다음 물을 붓고 양파를 길러 보세요. 한개의 양파는 희망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너는 우리의 꿈이다. 무럭무럭 자라다오. 우리 가족들은 너의 자라나는 뿌리를 빨리 보고 싶단다. 하면서 크는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양파에는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양파를 잘라 버리는 생각과 뿌리가 썩는 생각으로 양파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분명히 두 개의 양파 가운데 하나의 양파는 썩어 들어가고 또 하나는 무럭무럭 자랄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이 사물을 바라보는 마음입니다. 모든 후배들을 이러한 눈으로 보아 왔기 때문에 묻어 난 따뜻함의 결과가 아닌가 합니다. 도교육청 총무과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정신적 측면에서는 전라북도교육청의 교육철학을 담은 심볼마크 제작을 추진하라는 교육감의 지시에 따라 현재의 심볼마크를 사용토록 해 3만여 교육가족의 소속감과 자긍심을 갖도록 했습니다. 전북 교육청의 교육이념인 사랑과 교육을 담아냈습니다. 멀리서 보아도 그 뺏지를 차고 있는 교육가족을 보면 식구같은, 동지 같은 마음이 생기는 상징입니다. 또한 물질적으로는 신청사 이전 계획을 확정해 추진했습니다. 2009년이면 신청사가 완공되어 보다 쾌적한 환경에서 명실상부한 교육의 요람에서 전북도민의 염원인 인재 양성을 위한 또 다른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두고 싶습니다.”

-전주교육청 관리국에서 올해 역점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전주교육청은 학생수 기준에서 초등학교는 전북의 30%, 중학교 40%, 고등학교 50%를 점유하면서 교육의 결과를 볼 때는 전주교육이 전북교육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책임이 큰 교육청입니다. 제가 부임하면서 교육행정의 큰 숙제를 교육 여건 개선을 위한 학부모 만족도에 우선 뒀습니다. 첫째, 학생 배정에 있어서 학교 선택권 확대에 중점을 두어 학부모와 학생이 선택하는 학교에 학생이 배정 될 수 있도록 희망지를 존중했습니다. 그래서 희망하지 않는 학교에 대한 학급 감축제도를 도입해 학부모 불만을 최소화했습니다. 연례행사처럼 되어왔던 학교 배정 후 학부모들의 불만은 한건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둘째는 신설학교인 전주 오송초, 문학초, 우림초등학교 3월 1일 개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개교와 동시 정상수업은 물론 급식까지 해결했다는 점이 인상 깊은 감회로 남아 있습니다. 즉 교육을 해야 할 교사, 교육을 받을 학생, 교육을 시켜주는 학부모가 만족하는 교육 여건을 만드는데 전 청원이 합심해 시행착오를 예방함으로써 전주교육이 갖는 상징성을 한 단계 성숙시켰다고 볼수 있습니다.”

-장학재단인 호남중?고동문장학회 이사장으로 계신데요.
“모교인 호남중?고는 60여년의 전통과 졸업생 3만여명을 배출한 정읍지역의 명문 사학으로 지역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지역인재 양성의 산실입니다. 자신의 발전은 물론 지역사회에 기여할 줄 아는 인재를 발굴?육성함으로써 명문고의 전통을 이어가고자하는 인재 육성 방법으로 장학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2007년말 현재 약 5억3천2백만원의 장학금을 보유해 중학교 14명, 고등학교 12명을 학교의 추천을 받아 약2,000만원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성장하면서 이 세상 어딘가에 남을 돕는 누군가가 있다는 마음을 가져 주었으면 하는 바램으로 성장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곧 공로연수에 들어가실 텐데요. 앞으로 계획은?
“2008년 7월부로 공로연수에 들어가 2008년12월31일 정년을 마치면 자연인으로 돌아갑니다. 먼저는 가정의 행복을 위해 그간 못다 한 가족사랑에 대한 노력을 하고 싶습니다. 교육행정 경력을 가진 선배의 입장에서는 교육행정 발전과 교육행정의 자존을 세우는 일이라면 현직 이상으로 열정을 쏟을까 합니다. 지금껏 살아왔던 이결과는 저희 선배들이 쌓아온 공든 탑에 저희들이 잠깐 머무는 순간 이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러한 증거의 탑을 쌓는 동안 보살펴 주신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그 공덕을 돌려 드려야 할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후배 공무원이나 교육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2차 대전 후 신생 독립국 가운데 우리나라같이 발전한 나라는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것은 교육의 힘이었습니다. 하지만 교육의 혜택을 받아 성공한 자들 중 그 고마움을 교육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 국민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 질 때에도 인간의 행복을 위해 미치게 수업하는 선생님들... 그분들에게 한없는 존경을 드리고 싶습니다. 교육행정 후배들에게는 교육활동지원의 1차 상대는 학생임을 명심하고 학생 교육을 위한 지원이라면 때와 사람을 구별하지 말고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 결과에 따른 공은 동료에게, 부족한 것은 자신에게 찾는 겸손 그것을 판단 할 줄 아는 정직이 교육행정의 기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즉, 사람 냄새가 나는 교육행정인이 되어 달라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 과정은 누군가에 의해 기록되어 다음 후배들에게 업보로 대물림 할 것입니다. 기록에 대하여는 다음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신은 인간을 용서하지만 역사는 인간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교원들은 학생을 위해 교육행정인은 학생 교육 지원을 위해 치열하게, 처절하게 투쟁하고 쟁취하십시오. 교육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전북 정읍 출신인 장성기 관리국장은 정읍 호남중?고등학교와 학교방송대학 행정학과, 전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전북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일반사회를 전공(석사)하고, 현재 전북대 대학원에서 교육행정 전공으로 박사 3학기에 재학 중이다.


가족으로는 사랑하며 존경하는 아내 문현숙과 ,의젓한 큰 딸 인영, 깜찍한 막둥이 딸 유정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다. 아마추어 4단의 바둑실력으로 전라북도 교육청 바둑동호회인 반집기우회 회장을 맡아 도교육청 교직원 바둑대회를 매년 개최해 인종의 세월을 배우고 교원과 교육행정직의 화합과 교육발전의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그는 틈나는 데로 고향인 정읍과 고창을 오가면서 학부모 및 지역주민과 대화를 갖고 교육행정의 자존과 신뢰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장성기 국장은 “그동안 큰 은혜를 베풀어준 전북도교육청 조직과 조직구성원인 3만여 교육동지 특히 신뢰와 존중으로 교육행정과 교육행정인을 감싸주신 최규호 전라북도교육감에게 감사드린다”면서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겪고 지배했던 교육행정인 1세대의 막내로써 그동안 아껴주고 보살펴주신 후배 행정인들에게 21세기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인간의 존엄과 가치에 대한 행정인의 숙제를 드린다”고 말했다./엄범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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