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되지 않는 캐릭터 변화 ‘99억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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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되지 않는 캐릭터 변화 ‘99억의 여자’
  • 장세진
  • 승인 2020.01.30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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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설 연휴가 시작되기 전 날 KBS수목드라마 ‘99억의 여자’가 종영했다. 각종 설 특선프로에 치여 결방될 수도 있는 위기를 잘 넘긴 셈의 종영이라 할까. 구랍 4일 첫 방송부터 단 한 차례도 결방 없이 방송된 32부작(옛 16부작) ‘99억의 여자’인데도 시청률은 전작 ‘동백꽃 필 무렵’에 비해 반토막난 수준으로 나타났다.
사실 ‘99억의 여자’는 최고 시청률 23.8%(닐슨코리아, 전국 기준, 이하 같음.)를 찍는 등 워낙 인기 끈 ‘동백꽃 필 무렵’ 후속 드라마여서 기본적 부담감을 안은 채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다를까 ‘99억의 여자’는 7.2%로 시작, 6회 만의 두 자릿 수 돌파에도 불구하고 최종회 시청률은 8.5%를 찍는데 그쳤다. 최고 시청률은 11.6%다.

‘99억의 여자’가 언론의 주목 등 화제를 모은 것은 조여정의 드라마 출연작이기도 해서다. 여주인공 정서연 역의 조여정은 지난 해 5월 칸국제영화제 최고 상인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으로 2019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고아성ㆍ김혜수ㆍ전도연ㆍ임윤아와 경합 끝에 거머쥔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이다.
조여정은 “전작이 많은 사랑을 받은 것은 다음 주자로서 좋은 일”이라 말했지만, 그렇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 결과인 셈이다. 황금종려상 수상작 ‘기생충’에 출연하고, 2019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까지 수상한 조여정으로선 체면을 구긴 셈이 되었다. 그런데도 조여정은 지난 연말 KBS연기대상 시상식에서 여자최우수상을 수상했다.
KBS연기대상에선 서연의 남편 홍인표로 출연한 정웅인도 미니시리즈부문 남자조연상을 수상했다. 그들의 열연과 별도로 이제 딱 절반만 방송된 드라마에서 두 명이나 상을 받는 건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시상식 직후인 1월 1일 방송된 제11회에서 최고 시청률이 반짝 나왔을 뿐 그들의 수상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기도 했다.
 ‘99억의 여자’는 그냥 평범한 주부 서연이 교통사고 현장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대신 99억 원이란 거금을 훔쳐 달아난 후 벌어지는 이야기다. 결국 3년 전 3,000억 원 대형 사기사건에 얽힌 돈임이 밝혀진다. 윤희주와 강태우(김강우) 등 주요 인물이 그 범죄와 연관되어 있음도 드러난다. 그러니까 서연이 가장 늦게 사건의 소용돌이속으로 빨려든 것이다.
꽤 튼실한 극본이 맞지만, 너무 복잡하게 얽혀있어 다소 아쉽기도 하다. 아무튼 99억 원 손에 넣기가 실제로는 거의 일어날 수 없는 황당한 설정이긴 할망정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증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시청을 유인한다는 점에서 일단 대중의 시선을 끌어들이는데 성공한 셈이다.
그러나 서연은 앞에서 말한 대로 그냥 평범한 주부는 아니다. 우선 서연은 친구 윤희주(오나라)의 남편 이재훈(이지훈)과 불륜관계다. 99억 원을 훔치게된 것도 불륜 행각 연장 지점에서 벌어진 일이다. 남편 인표로부터는 폭행을 수시로 당한다. 특히 존대말을 깍듯이 쓰면서 가하는 인표의 폭행은 서연의 범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래서일까. 서연은 극이 진행될수록 사이코 남편으로부터 폭력이나 당하는 주부가 아니다. 가령 돈주인 앞에서 경찰조사 무마 운운하며 사례비를 요구하는 등 당찬 여성 캐릭터다. 다소 얼떨떨하게 느껴질 만큼이다. 글쎄, 그게 돈의 힘일지 몰라도 한편으론 개연성 부족 등 그런 캐릭터 변화에 시청자 공감이 함께하지 않는게 문제다.
문제는 더 있다. 결국 ‘99억의 여자’는 무슨 갱스터 영화도 아니고 일개 사기사건을 다룬 내용인데, 잦은 살인이 그에 부합하는 전개인지 하는 점이다. 총격전도 그렇다. 특히 21회(1월 8일)에서 갑자기 벌어진 총격전은 그간 유지해온 팽팽한 긴장감을 해체하는 동시에 드라마의 질조차 떨어뜨리는 악재라 할만하다.
예컨대 구랍 19일 방송을 보자. 전직 형사 태우가 그들에게 잡힌다. 손발이 묶이고 입에 테이프가 쳐진 채 그를 태운 자동차는 크레인에 짓뭉개진다. 그는 피칠갑이 된 채 겨우 살아난다. 99억 원 손에 넣기의 황당한 설정과 다르게 펼쳐진 리얼한 디테일 묘사로 오싹하기까지 했는데, 느닷없는 총격전이 단숨에 그걸 허물어버린 것이다.
마지막회 레온(임태경)이 3명을 총으로 쏜 것도 그렇다. 그런 레온조차 총맞아 죽는 걸로 나오는데, 인표가 쏜 것인지는 모호하게 그려진다. ‘99억의 여자’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을 말하고자 한 드라마인지 명백하게 드러나지 않은 점이다.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같기도 한데, 서연의 타히티로의 출국이나 태우의 경찰 복귀 등이 다소 뜬금없어 보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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