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계 폭력·성폭행 뿌리 뽑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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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 폭력·성폭행 뿌리 뽑아야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1.01.31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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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웅 전북철인3종협회 회장

수원지법 형사15부는 최근 한국 여자 쇼트트랙 간판스타인 심석희 선수를 상대로 3년여간 상습 성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조재범 전 코치에게 징역 10년 6월을 선고했다.
20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7년간 아동·청소년 관련 기관 및 장애인 복지시설 취업제한 명령도 내렸다. 재판부는 조 씨가 수년간 여러 차례에 걸쳐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이용해 위력으로 성범죄를 저지른 죄책이 무겁다고 판시했다. 지도자라는 우월적 지위를 앞세워 어린 선수에게 성폭행을 저지른 범죄를 엄벌에 처한 것이다.

조 씨는 심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던 2014년 8월부터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 직전인 2017년 12월까지 태릉·진천 선수촌과 한국체육대학 빙상장 등 7곳에서 30차례에 걸쳐 성폭행하거나 강제로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씨는 성범죄와 별개로 심 선수를 상습적으로 폭행해 다치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2019년 1월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형이 확정돼 복역중이었다.
어린 시절 자신이 발탁해 키운 선수에게 위력에 의한 성폭력 범죄를 저지르다니 가증스럽다. 또 그런 범죄가 국가가 직접 관리하는 시설에서 일어났다는 데에 충격적이다. 그런데도 조 씨는 훈육을 위한 폭행·폭언만 했을 뿐 성폭행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으니 체육인의 한 사람으로서 분노를 금할 수 없다.
또한 경주시청 트라이애슬론(철인3종경기)팀 소속 고(故) 최숙현 선수에게 가혹 행위를 한 혐의로 구속기소 된 ‘팀닥터’ 안주현씨에게 지난 달 22일 대구지법이 징역 8년형의 중형을 선고했다. 안 씨는 유사강간, 강제추행, 사기, 폭행, 의료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었다. 
최숙현 선수는 심석희 선수 폭로 두 달 뒤부터 대한철인3종협회, 대한체육회 스포츠인권센터는 물론 경주시청, 경주경찰서 등에 피해 신고를 했지만 적극적 조치를 받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7월 극단적 선택을 했다.
“콜라를 한 잔 먹어 체중이 불었다는 이유로 빵 20만원어치 사와 먹고 토하도록 시켰다”
“휴대폰을 검사하는 등 제3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대해 감시를 받았다”
“감기 몸살이 걸려 몸이 좋지 않았는데 훈련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배를 시켜 각목으로 폭행했다”
고(故) 최숙현 선수가 스스로 생을 마감한 후 그의 동료들이 자신들을 비롯해 최 선수가 받은 가혹 행위에 대해 국회에서 증언한 말이다.
지도자의 선수 폭행과 성추행 등은 한국 체육계의 고질적 병폐 중 하나다. 선수 폭력은 비밀리에 이뤄지고 있다. 폭력사건이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는 원인은 체육 엘리트 시스템에서 비롯된 성적지상주의다. 어릴 때부터 운동만을 해온 선수의 성적은 대학진학과 직결되며 선수의 성적은 코치의 성공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기량이 뛰어난 선수가 나오면 코치도 덩달아 승격한다. 선수가 상비군에 뽑히면 상비군 코치로, 대표팀에 뽑히면 대표팀 코치가 된다. 성적향상을 위한 강압적 행동이 수반될 여지를 만든다.
폐쇄적인 체육계의 제식구 감싸기도 한몫한다. 체육계는 마치 군대조직처럼 상하관계, 사제관계 등 위력에 따른 규율이 엄격해 상습체벌과 성폭행이 드러나도 ‘운동 그만할거냐’와 같은 협박을 하기 일쑤다. 
아직 항소심 등이 남아 있긴 하지만 이 두 판결의 의미는 작지 않다. 수십 년간 쉬쉬해 온 체육계의 악습에 중형을 내린 사실상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체육계의 폭행·성폭력 문화를 뿌리 뽑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아직 멀다.
정부는 체육계 성폭력 가해 시 영구제명을 확대해야 한다. 전·현직 국가대표 선수 피해 사례를 전수조사함은 물론 지도자 권력 중심의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리고 선수들에게 안전한 운동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누구든 폭력·성폭행을 저지르면 사회적으로 매장된다는 사실을 인식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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