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즈넉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장수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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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즈넉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장수향교
  • 신인식 본부장
  • 승인 2022.12.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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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7년 선창리 당곡에 창건
정유재란 때 정경손 목숨 걸고 수호

숙종 7년 지금의 장수리 일대로 이전
1957년 국보→1962년 보물로 변경
육동수 전교 615년 전통 계승 다짐

장수향교는 조선 태종7년(1407년)에 어명(御命)에 의해 장수 선창리 당곡에 창건 됐다. 
장수향교 대성전에는 중앙 맨 뒤에는 오성으로 공자님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그 다음 줄 동쪽에는 복성공 안자, 서쪽에는 종성공 증자, 그 다음 줄 동쪽에는 술성공 자사, 서쪽에는 아성공 맹자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송조 육현중 4현인 도국공 주돈이, 예국공 정명도, 낙국공 정이, 휘국공 주희의 위패가, 한국 18현은 홍유후 설총, 문창후 최치원, 문성공 안향, 문충공 정몽주, 문경공 김굉필, 문헌공 정여창, 문정공 조광조, 문원공 이언적, 문순공 이황, 문정공 김인후, 문성공 이이, 문간공 성혼, 문원공 김장생, 문열공 조현, 문경공 김집, 문정공 송시열, 문정공 송준길, 문순공 박세채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교복 정경손 목숨 걸고 수호

선조 30년(1597년) 정유재란 때 왜구가 침입하자 교복(較僕) 정경손(丁敬孫 )이 오성위패(五聖位牌)을 안아 수풀 속에 모신다음 전복(殿服)을 입고 땅에 엎드려 목슴을 걸고 장수향교를 수호(守護)하니 적장(敵將) 천륭경(川隆景) 부장(安國寺惠瓊)이 그 충절에 감복한 나머지 신표(信標) 『본성역물범』 (本聖力勿犯)를 써주어 후속부대의 화환(火患)을 막을 수 있게 돼 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매년 음력 3월15일에 정경손 제례를 지내고 있다.

■선창리 당곡에서 현 위치로 이건
그러던 중 터가 낮고 좁아 장마가 지면 집이 물에 잠기고 무너져 도저히 성령(聖靈)을 편히 모실 수 없게 되자 숙종 칠년(1681년) 한유일(韓有一) 등 유림이 이건장(移建狀)을 조정에 올려 윤허(允許)를 받아 옛 관아 터에 옮겨 세우니 지금의 장수군 장수읍 장수리 254-1번지 관주산(官主山) 아래에 위치한다.
당시 현감 이선연(李善淵)이 정성을 다해 청봉(淸俸)을 덜어 경리(經理) 하고 1685년 3월에 유림 한익삼(韓益三)을 감역(監役)으로 정해 사업을 착수 했다. 30개월이 지나 대성전을 비릇 명륜당 동서제 방무문 등 을 창건 당시의 원형대로 이건하는 공사를 모두 끝마치니 실로 279년만의 대 역사였다.
대성전 구조를 보면 낮은 석축기단위에 세운 정면 삼간측면 사간의 측좌 건물로 웅장한 맞배지붕은 삼간규모에도 불구하고 장엄함을 보여준다. 내부는 기둥이 없는 통간으로 처리했고 좌우측면은 하반에 석벽을 쌓고 있다. 전면은 퇴간을 두고 가운데 간에는 세 살문의 분각문을 달고, 좌우간에는 같은 형식의 외짝문한매를 달았으며 나머지는 정자창을 달고, 하반은 판벽으로 막았다.
상부 인방위에는 좁은 간격으로 벽환을 세우고 구벽을 쳤다. 기둥은 곧은 완주를 사용했고 가구는 일고주칠량 집으로 기둥을 위에만 공포가 있는데 그 짜임새는 출목을 둔 주심포 계통의 포작을 따랐으며 전면 이출목 후면 일출목을 구성했다.

최서에는 복잡하게 연화문을 새겼고 상부에 봉두를 만들었다. 기둥위에 공포와 공포사이에는 두 개의 화반이 한칸에 둘씩 끼어있다. 처마는 중첨이며 좌우의 박공머리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명륜당의 구조는 정면사간 측면삼간 팔작지붕 중첨, 무고주오량 가구, 초익공계 구조로 평면구성은 좌우로 방 칸과 가운데 대청 두 칸의 간단한 구조이나 전후퇴집인 것이 큰 특징이다. 이 집은 좌우로 대청일 뿐 아니라 전 후로도 대청이라는 것이 색다른 점이다.

■대성전 삼간측면 사간의 측좌 건물로 웅장
뒤편 마당에 동 서제가 있어 실질적으로 뒷면도 정면이 돼야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대청 앞뒤가 모두 분합문을 달아 두 개의 정면을 형성한다. 마루구조에 유의할 점이 있다. 보통은 기둥중간에 마루를 거는 것이지만 이 집은  반대로 마루 머름 위에 기둥이 올라탄 형식이다. 이러한 형식은 적어도 16세기 이전의 중국에서 보기 드문 고식으로 태종7년에 당곡에 창건 됐던 원형이 그 대로 이건 돼 보존된 것을 알 수 있다.
마루 머름은 육중하며 건물 모든 외벽에 둘러쳐져 집 전체가 나무로 된 머름 띠 위에 올라앉은 것 같다. 마루 들보 위에 있는 파련대공이나 합각면의 추녀를 중도리 위에 건 까다로운 수법은 현재 평범한 외관과는 달리 최상의 고급스러운 집임을 의미한다.

■1957년 국보로 지정됐다가 1962년 보물로 변경
그 동안 우리나라의 문화재 관리는 ‘조선 보물 고적 명승 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거 당초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1933년~1962년까지)에서 관리하면서 장수향교는 그 중요성을 인식해 1957년 2월5일 국보 제420호로 지정돼 오다가 1962년 1월10일 문화재보호법제정(법률 제961호)하면서 보물 제272호로 변경 지정됐다.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정충복 수명비는 이미 문화재 자료 38호로 지정돼있고 이밖에 부속 건물로 양사제와 양노당이 있는데 지금은 없고 사마제와 동제(경성제) 서제(진덕제) 내삼문, 외삼문(부강문 : 박정희 대통령 친필) 등이 있다.
사마제는 1999년에 화제로 인해 익년에 재 건립됐다. 그 외 충효당, 관리소, 화장실, 비석군, 하마비, 보일러실 등이 건립되고 이후 학교 부지를 매입 소방도로가 개설 됐다.

육동수 전교
육동수 전교

2022년 3월에 취임한 육동수 전교는 취임인사를 통해 충복 정경손에 의해 지켜져 온 전국유일에 장수향교의 615여년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유교정신함양에도 더욱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향교는 젊은 학생들의 교육기관으로서 전통문화 예술의 교육장으로 적극 활용되도록 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기회에 장수향교를 비룻 전국16개 향교 전교들이 모여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등재 추진을 위한 국회 세미나도 금년 11월9일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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