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시대의 끝이 도래했나? 인문학 챗GP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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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시대의 끝이 도래했나? 인문학 챗GPT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4.0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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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ChatGPT에 대한 전 세계적인 관심이 지속 되고 있다. 
ChatGPT는 ‘GPT 3.5’를 기반으로 하는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로서, GPT 3.5는 GPT-n 시리즈의 3세대 언어 예측 모델이다. 개발사인 OpenAI의 인공지능 개발은 이전부터 이루어진 것이었지만, ChatGPT가 갑자기 대중들에게 큰 호응을 받은 이유는 그 어떤 AI챗봇보다 문맥에 맞는 문장 조어력과 자연스러운 대화 능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분류, 대화, 이모티콘으로 변환, 요약, 완성, Q&A, 텍스트 삽입, 생략된 주어 삽입 등이 가능한 ChatGPT는 지금까지의 검색엔진과 AI챗봇의 기술적 지평을 완전히 바꿔놓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인문학에도 큰 영향을 주고 있다. 2016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4차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제기되었고, 기계학습과 인공지능을 중심에 둔 미래산업에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었다. 그때부터 AI산업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룩했으며 ChatGPT 또한 그런 흐름의 연장선상에서 등장한 대화형 인공지능이라고 할 수 있다. 누가 먼저 기술을 개발하고 확보하느냐에 따라 미래 산업의 헤게모니 장악 여부가 결정된다는 분위기가 보편화 되었고, 이런 상황 속에서 인문학은 상대적으로 점점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인문학에서도 변화하는 시대에 응답하기 위해 2010년대부터 디지털 인문학(DH)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기 시작했다.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 자료의 디지털화, 디지털화된 자료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및 데이터마이닝 기술개발, 인문학 디지털 데이터의 공유 플랫폼 구축 그리고 디지털 인문학의 결과물에 대한 비평 내지 메타 비평 연구라는 새로운 길을 열어놓았다. 디지털 인문학 지원사업도 국가적인 단위에서 꽤 큰 규모로 이루어지고 있고, 인문학 분야 교수 채용 공고 분야를 봐도 디지털 인문학이라는 단어를 어렵지 않게 발견하는 시기가 되었다. 얼마 전에 개최된 고전문학과 관련된 어떤 학회의 학술대회에서 신진연구자가 모두 디지털 인문학과 관련된 주제발표를 하는 것을 보고, 이제 정말 디지털 인문학의 시대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디지털 인문학은 일종의 고육지책(苦肉之策)과 같다. 디지털 인문학의 유행은 인문학의 미래를 위해 오래전부터 기획된 결과물이 아니라 2000년대부터 제기되었던 인문학의 위기 담론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발굴한 선택지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디지털 인문학의 등장은 기존의 인문학 연구 방식을 고루하거나 무용(無用)한 것으로 취급하는 시선을 낳기도 했다. 새로운 연구 경향이나 연구 분야가 등장했을 때 기존의 것이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는 현상은 일반적인 것이지만, 디지털 인문학은 인문학을 기술결정론의 영역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혐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사회나 제도가 기술이라는 변수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으로, 이는 인문학이 새롭게 발명된 기술에 예속되어 존재론적으로 무의미해질 수 있다는 위험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디지털 인문학도 전통적인 방식의 인문학 연구에 근간을 두고 있다. AI는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발전하기 때문에, 얼마나 양질의 학습 데이터를 제공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라진다. 양질의 학습 데이터는 학계에서 점검된 자료나 그런 자료에 대한 주석서와 논문 등을 통해 마련될 수 있다. ChatGPT 또한 아직 학습이 완료된 상태가 아니다. 예컨대, ChatGPT에 “심청전”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하면, 심청의 아버지 심학규가 인당수의 용왕이라는 엉뚱한 답을 제공한다. 잘못된 학습 데이터로 딥러닝을 하다 보니 나타난 현상이다. 디지털 인문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방식의 인문학 연구와 교육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ChatGPT 시대의 인문학은 어떤 모습일까? 전통적인 인문학과 완전히 단절된 새로운 어떤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인문학 관련 교육 정책이나 연구 지원방식, 인재 양성의 방향성은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분야에만 치중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기술 혁명의 흐름에 맞추어 디지털 인문학에 대한 지원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전통적인 인문학에 대한 관심 또한 장기적인 시각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인문학만이 제시할 수 있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연구 및 교육지원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근시안적인 변화는 인문학의 발전을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 기술에 예속된 인문학에는 인간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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