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들을 솎아내는 것만이 나라 지키는 애국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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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어지럽게 하는 자들을 솎아내는 것만이 나라 지키는 애국심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7.0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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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우리는 애국심을 거론하면 국수주의자 취급을 받거나 정치권력 또는 기득권 세력을 옹호하는 것으로 치부되던 우울한 시대를 살고 있다. 
“다른 집단이나 민족에 대해 배타적 우월감을 자랑하는 국수주의적 애국심” 국가에 대한 맹목적· 무비판적 충성을 강요하는 전체주의적 우국심 “정권 유지 수단으로서의 기회주의적 사국심(思國心)”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애국심’은 온통 상처투성이다. 애국심을 얘기하면 고리타분한 보수 꼴통이 되고 이익집단 또는 ‘있는 사람’의 대변자가 되는 세상에서 ‘애국’은 새롭지 못하고 싫증이 난 개념이었다. 하긴 다변화된 세상에서 ‘태어난 땅’에 대한 소속 심과 충성심이 없다고 해서 비난받을 일은 아닌 이상 ‘애국심’은 우파의 머리띠에 쓰인 구호 이상의 대접을 받지 못했음 직하다.
전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데다 나라 경제 마저 휘청거리고 있는 이 어려운 시기에 21대 국회가 연내에 처리해야 할 청년일자리와도 연관이 있는 노동개혁법을 비롯한 세계의 테러전쟁 위협 속에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테러방지법·인권법 등 수많은 민생법안을 뒤로한 채 자기들의 밥그릇인 22대 국회 선거구 획정법만을 우선시 하는 것과 국회 정족수의 7%에 해당하는 20여명의 현역 국회의원이 부정부패 혐의로 사법처리되는 등 사상초유의 20대, 21대 국회 비리사태에 대하여 국회의장의 국민에 대한 직무유기는 아닌지? 입법부 수장으로서의 제왕적 의회주의 주장에 앞서 누구를 위한 국회인가에 대하여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지금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고 우리가 어떤 상황에 부닥쳐 있는가를 직시하는 최소한의 현실 인식과 자아(自我)의식은 있어야 한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표현할지는 견해가 달라도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을 우국심(憂國心) 또는 사국심(思國心)이라고 해도 좋다. 
최근 민주노총 폭력난동과 공권력이 무력화 되고있는 무법천지 같은 광경을 바라보는 국민의 마음은 복통이 터지고 하도 어이가 없어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나라의 경제가 걱정이다. 국가안보, 안전의식, 질서, 법 집행도 걱정거리다. 여기서 나라는 정부도 아니고 집권 세력도, 기득권 사회도 아니다. 나라는 우리가 사는 터전이고 직장이고 함께 사는 공동체고 그것을 감싸주고 보호해주는 울타리다. 나를 태어나게 한 ‘어머니’다. 그것이 나라다. 이 나라 대한민국이 지금 동네북이다. 나라의 관리를 책임진 정부의 잘못도 있고, 세계적 환경 탓도 있다. 주변 나라들의 신(新)제국주의도 사태를 어지럽게 하고 있다.
우리 국민 자신도 나라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나라에 너무 많은 짐을 지우고 있다. 일이 잘못되면 나라 탓이고, 나라가 모든 손해를 물어내야 한다고 한다. 나라 재정이 거덜 나게 됐는데도 내 연금에 손댈 수 없다거나 학교 급식, 보육 등 여기저기서 무상(無償)을 요구하는 소리가 높다. 아기 안 낳는 것도 나라 사정 탓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에게는 이상한 버르장머리(?)가 생겼다. 무슨 사고가 났다 하면 먼저 가슴이 덜컥 내려앉고 그다음 대책위, 보상금 등으로 이어지는 순서에 익숙해졌다. 모두 나라 잘못이고 대통령 탓이다. 작년 11월 어느 날 서울 종로구 세종로와 시청 앞 일대에서 같은 시간에 8건의 데모와 집회가 동시에 진행되고, 전국에는 100여 개의 집회 및 시위가 벌어지는 곳에서 이 나라의 모든 주먹은 나라를 향해 불끈 내질러지는 듯했다.
나라에 많은 것을 요구하려면 그만큼 나라의 권위를 인정해줘야 앞뒤가 맞는다. 우리는 나라와 대통령과 그에 따르는 국가기관의 권위를 존중하고 그에 대해 신뢰를 하고 있는가? 오히려 나라를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대통령 알기를 우습게 아는 풍조가 있다. 이것은 비판과는 다르다. 판사가 대통령을 ‘가카 새끼’라고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게다가 이런 세력의 배후에는 그것을 부추기는 집단들이 있었다.
이래서는 국가적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케네디가 말한 것처럼 ‘나라가 당신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요구하기 전에 당신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라’ 까지 안 가도 좋다. 나라를 위해 개인을 희생하고 목숨을 바치라는 식의 맹목적 애국심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우리가 지금 해야 할 것은 대한민국 구성원 각자 레벨에서 ‘자신을 도울(自助)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얼마 전 발표된 경북 울진의 원전(原電) 추가 건설 합의와 울산의 맞춤형 급식 정착 뉴스가 새삼 우리의 눈과 귀를 열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두 가지 사안의 핵심은 덮어놓고 나라에 모든 짐을 지우거나 조건 없는 반대라는 구태(舊態)에서 벗어나 지방자치단체가 할 수 있는 것과 정부가 할 것을 조정하고 타협하는, ‘자신을 돕는’ 노력에 있다. 그것이 바로 현대적 의미의 애국심이다.
지금 나라 사정은 위태롭기까지 하다. 경제가 나아지리라고 말하는 전문가는 한 사람도 없다. 중국과 일본 사이에 끼어 호전적 북한과 맞서야 하는 데다 미국과의 유대에 잡음이 발생하는 안보 문제는 정말로 난제 중의 난제다. 정치권은 말할 것도 없고 헌법적 사법부 혁신,교육부, 노동계 개혁, 공기업 방만경영 척결, 모든 공직자와 가만히 앉아서 대통령 욕이나해대는 일부 국민의 기강 질서 의식 등 공권력 상실과 법치주의, 이것이야말로 ‘민주 의식 결합과 시민적 우국심’이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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