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데미극장, 허무는 게 능사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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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극장, 허무는 게 능사 아냐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7.18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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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2012년 제65회칸국제영화제에서 단편 ‘써클라인’으로 비평가주간 카날플러스상을 한국영화 최초로 수상한 신수원 감독의 최근 연출작은 ‘오마주’(2022)다. ‘오마주’에는 주인공이 영화관에서 필름 돌리는 걸 보고, 관람석에 앉아 있는 장면이 있다. 그걸 촬영한 장소가 강원도 원주에 있는 아카데미극장이다.
원주 아카데미는 1963년 문을 연 단관극장이다.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는데, 철거 위기에 내몰리고 있단 소식이 전해졌다. 내가 그 소식을 처음으로 접한 것은 한겨레(2023.3.30.) 기사를 통해서다. 이후에도 한겨레는 관련 후속 기사를 꾸준히 내보내고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좀 더 살펴보자.

단관극장은 2005년 원주에 멀티플렉스가 상륙하자 2006년부터 문을 닫기 시작했다. 원주극장과 시공관이 가장 먼저 헐린 데 이어, 800석 규모로 가장 컸던 문화극장마저 2015년 철거되면서 아카데미극장이 유일하게 남은 단관극장이 됐다. 이는 비단 원주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가 수없이 많은 영화를 보러 다녔던 이곳 전주의 삼남·코리아·명보·아카데미·명화·중앙·태평 등 단관극장들도 그렇게 없어져 갔다.
멀티플렉스라는 대세(大勢) 속에서도 전주가 원주와 다른 것은 단관극장들이 헐리지 않고 있는 점이다. 일부 단관극장들은 그 자리에 있었는가 할 정도로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가령 가장 규모가 컸던 삼남극장의 경우 피카디리를 거쳐 CGV·전주조이앤시네마로 거듭났다. 단관극장인 전주시네마타운도 원래 그 자리에서 멀티플렉스화해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아무튼 아카데미극장도 철거될 위기를 맞았다. 3월 22일 아카데미극장의 보존과 재생을 원하는 시민모임인 ‘아카데미의 친구들’이 모여 ‘인간 띠 잇기 챌린지’를 한 것도 그래서다. 어릴 적 단관극장에 얽힌 추억을 간직한 황승룡 시민은 “옛것이라고 헌신짝처럼 버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극장을 헐어버릴 생각을 접고 원주의 랜드마크로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아가 헐리는 걸 안타까워하던 시민들이 중심이 돼 극장 보존을 위한 모금과 성명 발표, 문화활동 등을 시작했다. “시민들이 아카데미극장 보존을 원하는 것은 단지 추억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은 아카데미극장이 ‘옛 극장의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는 사실에 주목”한 것이다.
아카데미극장 건물은 단관극장의 외형을 유지한 채 영사기와 스크린, 관람석, 매표소 등 내부 시설과 설비까지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언제라도 극장 기능을 다시 수행할 수 있다는 게 헐려선 안될 주된 이유다. 이 점은 영화 ‘오마주’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 아카데미극장은 2021년 문화유산 국민신탁·한국내셔널트러스트 주최 ‘이곳만은 지키자’ 캠페인에서 ‘문화재청장상’까지 수상했다.
전국적인 주목을 받기도 한 것인데, 극장을 보존해달라는 시민들의 요구가 6년 가까이 이어지자 마침내 응답이 왔다. 미온적이던 “원주시가 아카데미를 사들인 뒤 시민 소통공간으로 꾸며 극장 역할을 다시 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태도를 바꾼 것이다. 실제 원주시는 2022년 1월 시비 32억 원을 들여 극장 건물과 토지까지 사들였다.
그러나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의힘 소속 원강수 시장이 당선된 이후 원주시의 태도가 급변했다. 원 시장 인수위원회는 “아카데미극장 복원을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는 보고서를 냈다. 이후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 복원을 ‘재검토’ 사업으로 분류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임 시장의 업적을 지우려한 것은 아닌지 의심마저 생긴다.
원강수 원주시장은 4월 11일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야외공연장과 주차장을 조성하겠다. 다양한 의견 수렴과 내부적인 숙의 과정을 거쳐 신중에 신중을 기해 내린 결정이다. 아카데미극장을 복원한다면 사업비 및 운영비 명목의 막대한 예산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공식화했다.
원주시의 아카데미극장 철거 발표에 대해 시민들의 반발이 이어졌다. 나아가 전국 교수와 연구진 233명이 극장 보존을 지지하고 나섰다. 전국 대학교수와 강사, 연구진 233명은 4월 27일 오전 아카데미극장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원주시는 아카데미극장 철거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5월 3일 원주시의회는 아카데미극장 철거 내용을 담은 ‘공유재산 관리계획 변경안’을 의결했다. 6월 27일 ‘아카데미의 친구들 범시민연대’와 녹색당은 오전 강원도청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시의회의 위법한 아카데미극장 철거안의 무효화를 위해 대법원에 기관소송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국 아카데미극장의 보존 여부는 법정에서 가려지게 되고 말았다. 분명한 사실은 아카데미극장을 허무는 게 단순한 낡은 건물 철거가 아니란 점이다. 소중한 가치의 옛것을 지우고 저마다 간직해온 60년 역사를 허무는 것이다. 없어지거나 사라진 것도 복원해내 관광자원화하는 지자체들이 많다. 왜 원주시는 ‘원주 고유의 근대문화유산’을 허물려고만 하는지 안타깝고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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