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먹은 국민, 미래가 짧은 뒷방 늙은이로 취급 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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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먹은 국민, 미래가 짧은 뒷방 늙은이로 취급 받아야 하나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08.08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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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배 주필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청년들과의 간담회에서 이해하기 힘든 발언을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는 중학생이었던 자기 아들과 나눈 이야기를 인용해 남은 수명(여명)에 비례해 투표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으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왜 미래가 짧은 분들이 (청년들과) 1대1 표 대결을 하나”라고 물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의 발언은 지금 민주당에 요구되는 혁신과는 무관할 뿐 아니라 연령차별(ageism), 더 나아가 세대갈등을 부추기는 부적절한 발언이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당명이나 강령과도 배치되는 발언이었다. 이참에 민주당 혁신위원회는 당명에서 ‘더불어’를 빼는 ‘혁신’ 방안을 제안하는 게 어떨까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같은 민주당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상민 의원은 “나이로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게 우리 헌법 정신인데 여명에 따라 투표권을 달리하겠다니, 굉장히 몰상식하다”고 비판했고, 김종민 의원은 “김 위원장 발언이 변명할 여지 없는 백번 잘못한 발언으로 상처받은 국민에게 정중히 사과드려야 마땅하다”고 했다. 나이 좀 먹은 노년층을 별 쓸모없는 뒷방 늙은이 정도로 인식하는 것으로 의심받는 민주당 주류의 태도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일찍이 더불어민주당 전신이었던 열린우리당의 정동영 의장은 2004년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과 비슷하게 다음과 같이 발언한 적이 있다. “미래는 20대, 30대들의 무대라고요. 그런 의미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아요. … 곧 무대에서 퇴장하실 분들이니까 그분들은 집에서 쉬셔도 되고…” 60대 이상 노년층의 민주당 지지율이 그 아래 세대의 지지율보다 낮게 나오기 때문에 민주당이 노년층에 호의를 갖기는 힘들 것이다. 그런데 노년층을 폄하하는 발언이 잇달아 나오는 것은 노년층을 나라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존재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는다. 
김 위원장 발언과 관련하여 양이원영 의원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그런 속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지금 어떤 정치인에게 투표하느냐가 미래를 결정한다. 하지만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는 그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다. 미래에 더 오래 살아있을 청년과 아이들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번 김 위원장 발언은 선거에서 1인 1표 주의라는 헌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노년층이 살아오면서 사회발전에 기여한 바와 그들이 가진 인생의 지혜를 무시하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 1930년대, 40년대, 50년대에 태어난 노년세대들은 이 나라의 근대화에 헌신했고 그 헌신 덕분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의견은 존중받을 만하다. 더구나 노년세대는 젊은 세대보다 정보는 뒤떨어질 수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는 더 나을 수 있다. 그들의 지혜는 젊은 세대의 감각에 못지않게 미래를 결정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대신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노년세대는 노년세대대로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장치를 만들고 북돋워 주는 것이 정치인들이 해야 할 일이다.
지금 우리는 총인구 감소 시대에 살고 있다. 그만큼 갓난아기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 한 사람 다 소중한 존재이다. 특히 오늘날 노년세대는 더 이상 뒷방 늙은이가 아니다. 우리 주위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현직에서 은퇴한 후에도 그동안 쌓은 경험과 지혜를 통해 그들은 얼마든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다. 그들에게 봉사의 기회를 마련해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밝은 미래를 만드는 데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잊을만하면 다시 터지는 정치인 ‘노인폄하’ 몰상식한 망언으로 한국의 노인들을 위로는 못해줄망정 뒷방 늙은이로 취급, 헌법에 보장된 투표권마저 박탈하려는 일부 정치권의 못된 발언을 100만 노인은 총단합 하여 바로 잡을 기회라고 생각한다.
미국의 저명한 정신의학자인 마크 아그로닌은 <지금부터 다르게 나이 들 수 있습니다>라는 책에서 노인의 강점으로 지혜와 회복탄력성, 창의성을 꼽았다. 뇌가 외부 환경에 따라 구조와 기능을 변화시키는 능력인 ‘신경가소성’을 통해 이런 강점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체력은 나이가 들수록 쇠퇴하지만 정신력은 다르다. 때문에 삶에서 축적해 온 경험을 바탕으로 한 지혜는 노년에 더 발달한다는 것이다.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회복탄력성도 더 증진된다. 노년에는 두뇌의 감정 조절 중추인 ‘안와내측 전전두피질’이 두려운 감정을 유발하는 편도체보다 우세해 젊은이보다 충동적인 감정에 노련하게 대처할 수 있다. 지혜와 회복탄력성이 극대화되면 노년에 창의성도 강화된다. 물론 노인 스스로의 유연한 인식을 전제로 한다. 
아그로닌 씨의 결론은 “나이 든다는 것은 늙는게 아니라 성장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캐나다 토론토대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의 판단력은 청년기보다 노년기에 더 성숙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간의 2대 지능 중 하나인 경험 위주의 ‘결정지능’이 노년에 더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영화 ‘인턴’에서 시니어 인턴이 젊은 여성 경영자의 지혜로운 멘토 역할을 해주는 장면을 떠올리면 된다. 노마지지(老馬之智) 등 노인의 지혜에 대한 숱한 고사성어와 속담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또 미국 여성 심리학자 셰리 윌리스와 남편 워너 샤이가 1956년부터 40년간 7년마다 6천 명을 대상으로 뇌 인지능력 검사를 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20세부터 90세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남녀 중 40~65세의 뇌가 ‘언어 기억’, ‘공간 지각 능력’, ‘귀납적 추리’ 등 세 범주에서 최고의 수행 능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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