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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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  
  • 전북연합신문
  • 승인 2023.10.17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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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세진(방송·영화·문학평론가)

 

10월 6일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총투표수 295표 가운데 찬성 118표, 반대 175표, 기권 2표로 이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부결시켰다.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이라는 가결 요건에 미치지 못한 이 대법원장 후보자는 장관들과 달리 낙마하게 됐다.
더불어민주당(총 168명 중 167명 표결 참석)과 정의당(6명 전원 참석)은 본회의 직전 의원총회를 열고 ‘부결’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윤영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사법부 독립을 지키고 고위공직자로서 직무 수행하는 데 능력·자질 면에서 여러 문제가 있다는 의견 수렴을 거쳐 당론 부결을 제안·결정했다”고 기자들에게 말했다.

‘자율투표’가 아닌 ‘당론’으로 부결 표결에 나선 데 대해 당 지도부 관계자는 “이 후보자의 자격없음을 선명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사법부 수장 공백’보다 ‘부적격자 임명 저지’가 우선이라는 분명한 표현”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과 정의당 전원이 부결표를 냈다하더라도 무소속 등 2명이 동조한 결과다.
보도를 종합해보면 대법원장 후보자가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건 1988년 정기승 후보자 이후 35년 만이다. 대법원장 공백으로 치면 1993년 부동산 투기 의혹으로 사퇴했던 김덕주 전 대법원장 이후 30년 만이다. 9월 24일 김명수 전 대법원장 퇴임 뒤 이어져온 대법원장 공백 상태는 당분간 불가피하게 됐다.
새 후보자 지명과 국회 인준 절차 등 최소 1~2개월은 걸려야 새 대법원장 취임을 볼 수 있어서다. 그렇다. 대법원장은 장관처럼 야당이 반대해도 대통령 마음대로 임명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헌법(제104조)이 대법원장과 대법관 임명에 국회 동의를 거치도록 규정해놓고 있어서다. 대통령이 아무런 견제 없이 사법부를 자기 사람으로 채울 수 있다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공화국의 뼈대가 무너질 수 있기에 그런 것이다.
민주당은 부결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인사가 자초한 결과”라고 밝혔다. 윤 원내대변인은 “애초에 국회 동의를 얻을 수 있는 후보를 보냈어야 마땅하다. 윤 대통령은 헌정사상 두 번째 대법원장 임명동의안 부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길 바란다”고 논평했다.
대법원장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박용진 의원은 페이스북에 “사법부 공백의 모든 책임은 엉터리 인사검증과 무책임한 추천을 한 윤 대통령에게 있다”고 적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가결’ 당론을 정해 표결에 임했으나 여소야대 상황에서 역부족이었는데도 “이재명 방탄용 폭거”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은 부결 직후 국회 본회의장을 집단 퇴장해 중앙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었다. 김기현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개인적 사법리스크 방탄을 위한 의회 테러 수준의 폭거”라고 말했다. 이어 “사법부 공백을 장기화시키겠다는 이 대표와 민주당은 정치재판에 기생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며 엉뚱한 트집잡기에 힘을 쏟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실도 야당을 비판했다. 이도운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반듯하고 실력 있는 법관을 부결시켜 초유의 사법부 장기 공백 상태를 초래한 것은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그 피해자는 국민이고, 따라서 이는 국민의 권리를 인질로 잡고 정치투쟁을 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부결 배경에 이재명 대표의 재판 상황이 고려됐다고 보는 것이다.
윤 대통령과 집권여당 국민의힘만 아직도 여소야대 국회임을 모르는 모양이다. 대법원장 후보자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을 얻어야 가결되는 걸 알았다면 그런 사람을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부결에 대해 잘못 추천을 인정하고 사과하긴커녕 ‘방구 뀐 놈이 성낸다’는 속담을 떠올리게 하니 기가 찰 노릇이다.
지난 8월 22일 윤석열 대통령이 ‘친한 친구의 친한 친구’인 이균용 후보자를 지명했을 때부터 논란이 일었다. 아니나다를까 인사청문 과정에서 재산신고 누락, 땅 투기, 농지법 위반, 배우자의 증여세 회피 등 숱한 의혹이 불거졌다. 이 후보자는 “법을 몰랐다”는 황당한 변명을 내놓는 등 결격 사유가 차고 넘쳤다는 게 야당인 민주당과 정의당의 판단이었다.
한겨레 신문 ‘논썰’(2023.10.7.)을 보면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은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할 때 법원 안팎의 신망을 고려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자질을 명분으로 제시했”다. “야당이 반대하면 설득하는 노력도 했”다며 “지난 35년 동안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한번도 부결되지 않았던 배경”을 밝히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야당을 설득하고 협조를 구하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홍익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부에서 이런 얘기도 있어요. 이번은 그냥 희생타고 다음에 보내려고 일부러 이런 사람, 이 후보자를 보냈다. 이런 얘기도 지금 나오는데 … 이런 인물들을 계속 보내면 제2, 제3이라도 저는 부결시킬 생각(앞의 한겨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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